brunch

더 이상 동기부여와 '갓생' 살기가 필요 없어진 이유

진정한 갓생은 '나 자신'으로 사는 것.

by Nina

공자는 나이 마흔을 불혹(不惑), 즉 미혹됨이 없는 나이라고 했다. 하지만 인간의 수명이 늘어난 현대 사회에도 마흔을 '불혹'의 나이라고 할 수 있을까?


굳이 인간의 수명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확실히 예전 세대가 지금보다 더 '으른스러운' 느낌은 있다. 대부분 20대 중후반에 가정을 꾸리고 부모가 되어 누군가를 책임져야 했던 부모님 세대와는 달리 '나 자신' 하나도 온전히 책임지기 어려워지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실 '미혹되지 않을 수 있는' 시점은 꼭 생물학적인 나이로 오지는 않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서른에도 미혹되지 않는 시점을 맞이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예순이 넘어서도 계속 살아오던 관성을 버리지 못한다.


나도 내년에 마흔다섯이 된다. 40대의 절반이 되기 전까지 무수히 많은 새해 계획을 세웠더랬다. 새해 계획 뿐이랴. 분기별로, 월별로 또는 데일리로, 많은 계획과 to do list를 갖고 살아왔다.


정확히 말하면 2023년부터 지금까지 2년간 내 나름의 '갓생 살기' 프로젝트를 시행했고 인생의 큰 전환점이 있었다. 그 전환점이란 게 어떤 한 순간의 사건이나 계기 때문이 아니라, 2년에 걸쳐 서서히 의심이 확신으로 변모해가는 과정 속에 찾아왔다.


2년이 지난 지금 눈에 보이는 변화가 있다면 아주 소소한 것들 뿐이다. 늘어난 것은 운동하고 독서하고 글 쓰는 시간, 혼자 있는 시간,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 줄어든 것은 의미없는 인간 관계, 멍하니 핸드폰을 보는 시간,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애쓰는 것, 자기 과시, 쓸데없는 소비 등.


지난 2년간 내가 했던 시도들은 이렇다. --- 미라클 모닝, 주 4회 운동, 1년에 책 100권 읽기(2년간 200권 완독), 커리어 방면의 새로운 도전, 경제 공부 시작하기 등등. 이중에는 실패한 일도, 성공한 일도 있고, 하다보니 의미가 없어져서 그만둔 일도 있다.


결국 내가 자기계발을 통해 그토록 애타게 다다르고자 했던 곳은 완전히 달라진 나 자신도, 엄청나게 성공한 내 모습도 아닌, '진정한 나 자신'이었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그리고 진정한 나 자신을 되찾고 나서야 '미혹되지 않는다'는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 자신을 알고 나답게 살아가는 방법을 알게된 이후로는 더 이상 거창한 새해 계획도, 수많은 자기계발서와 동기부여 영상도 필요가 없어졌다. 다른 사람의 기준이 아닌 나의 기준에서 행복한, 내 방식대로 살아가는 삶이 무엇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참고 노력하면 마침내 꿈에 그리던 이상적인 삶이 내게 오리라 믿었지만 과연 그런 순간이 다가왔던가. 그 이상적인 삶조차 내 마음이 진정으로 바랬던 것이 아니라 세상이 부추기던 고정관념이었다는 걸 안 순간, 나는 참으로 허망했다.


사회적인 성공과 부는 부산물로 따라오는 것이지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없다는 걸 이해한 후, 더 이상 내 꿈이 이루어지지 않을까봐 조바심내지 않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미 그 꿈대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파랑새'를 찾아 그토록 온세상을 헤맸지만, 결국 우리집에 있더라는 진부한 이야기. 결국 '답'은 내 안에 있었다. 날 구원할 수 있는 이는 결국 나 자신 뿐이다.


사람이기 때문에 매일 매일 빠짐없이 갓생을 살 수는 없다. 때로는 아픈 날도 있고, 아이도 키워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하고, 하기 싫은 집안일도 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나 자신일 수 있는 아주 가느다란 끈이라도, 그 끈을 놓치지 않고 붙잡고 있는 것이다. 그 끈은 연속성이 있을 때에만 내 손 안에 만져진다. 연속성이 끊어진 순간, 우리는 다시 힘들게 허리를 숙여 그 끈을 주워야 한다. 너무 오래 그 끈을 놓쳤을 때는, 무릎을 꿇고 바닥을 더듬으며 놓쳐버린 끈의 조각을 찾아야 한다.


내게 지난 2년은 무릎을 꿇은 채 바닥을 더듬던 시간이었다. 내게 꼭 맞는 그 끈을 바닥에 버려둔 채, 나는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끈만 붙잡으려고 노력했었다. 그 시간들이 헛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른 끈들을 잡아보았지만 내게 맞지 않는다는 걸, 그렇게 성공한다 한들 부질없다는 걸 알았으니까.


낡고 희미해진 그 끈을 이제 조금씩 다시 이어가려고 한다. 원래 내 것이었던 끈이었기에 더 이상의 동기 부여도, 갓생 살기도 필요 없다. 하루 하루 이미 꿈꾸던 삶을 '지금 여기서' 이미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축제처럼 매일 즐겁고 가슴 뛰는 일은 허상이다. 진짜 즐거움은 언뜻 지루하고 별 거 없어 보이는 매일 매일의 반복과 몰입에서 온다. 지금 내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때, 하기 싫은 일도 내 인생의 과업인 양 집중해서 할 때, 오래 지속되는 진짜 즐거움과 만족감이 온다.


다시는 이 끈을 놓치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그래서 2025년 새해 계획은 없다. 그저 모두가 덜 고통스러웠으면, 슬픈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기도를 올리며 조용히 새해를 맞이하고 싶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사람은 과연 변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