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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타임만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면

스마트 기기에게 빼앗긴 내면 아이의 시간 되찾기

by Nina

엄마가 되고 아이를 키우며 '아이의 시간'을 다시 한 번 살고 있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아이가 한 살 한 살 먹어가며 그때의 내 모습도 생생히 떠오르기 때문이다.


아이는 원하는 것을 원하는 즉시 한다. 그리고 모든 걸 잊고 놀라울 정도로 몰입한다. 잘하든 못하든 하고 싶은 일은 일단 저질러 본다. 또래를 만나면 아무 편견없이 대화를 하고, 즐겁게 논다. 2시간 동안 함께 뛰어논 그 친구 이름이 뭐야? 같은 학년이래? 물어보면 몰라, 그런다. 아이는 순수한 자신의 흥미와 재미를 있는 그대로 따라갈 뿐이다.


마흔이 넘고 부모가 되어 성숙한 어른인 척 하지만, 사실 마음 깊숙한 곳에는 그 '아이'가 그대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른으로서의 시간과 나의 내면 속 '아이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30대 중반쯤 막연히 10년 후를 생각했을 때, 나는 더 이상 회사나 돈에 얽매이지 않고 원하는 일을 자유롭게 하는 나를 상상했었다.


그러나 정작 마흔 중반의 내 모습은.. 원하던 대로 집에서 일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며, 돈과 자잘한 일거리에 얽매이며 아등바등 살고 있다. 세련되면서도 뭔가 인생을 달관한 듯한 여유로움을 풍기며 쉰 살이 되어도 청바지가 어울리는 멋진 중년 여성을 꿈꾸었으나...


달관은커녕 매일 종종거려도 지저분한 집에, 매번 안경과 핸드폰을 어디에 두었는지 찾아 헤매며, 이번 달 너무 많이 나온 카드값을 의식하며 마트에서 제일 싼 와인을 고르고, 작년에 산 책을 올해 또 주문하려다 '이미 구입한 책'이라며 친절히 알려주는 온라인 서점 앱에 감사해하며 살고 있다.


그래도 괜찮다. 여전히 나의 내면 속 '아이의 시간'은 흐르고 있으니까. 나의 일부는 여전히 느리지만 꾸준히, 행복한 아이의 시간을 살고 있다.


삶이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는 걸 깨닫는 시점이 오면, 가장 먼저 내려놓게 되는 건 나 자신일 것이다. 책임감이 강한 사람일수록 더 그렇다. 눈 앞에 닥친 일이 산더미인데 날 위한 시간을 어떻게 낼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도, 심리적인 에너지도 남아있지 않은데.


그럼에도 여전히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을 간직한 채 살고 있다면, 매일 조금씩이라도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내면 속 아이를 외면하지 않는 멋진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눈부신 젊음에 가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나이가 들면서 여과 없이, 잔인할 정도로 낱낱이 드러나버리는 걸 보면 참 슬퍼진다.


단순히 노화로 오는 외모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마흔 살, 쉰 살이 넘어서도 젊은 여자들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고, 철없는 20대마냥 돈 자랑을 하고, 온갖 모임에 얼굴을 내밀며 얄팍한 인간관계를 쌓고, 취미라곤 유흥밖에 없고, 누구에게나 있는 과거 전성기 시절 얘기만 되풀이하는 사람을 보면... 그냥 서글퍼진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마흔 이후에는 그때까지 살아온 삶이 특정한 '분위기'로 고착돼버리는 것 같다. 그 사람의 말투나 눈빛, 몸동작이나 인상은 숨길 수도 숨겨지지도 않는다. 인품이 꽃향기처럼 은은히 배어 나오는 온화하고 품위 있는 나의 몇몇 롤 모델들을 보며 나도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고, 지금부터라도 그렇게 살자고 늘 마음을 다잡는다.


가끔 내 스마트폰이 일일 평균 스크린 타임을 알려줄 때가 있다. 지난주 대비 얼마나 많이 혹은 적게 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는지, 친절하고 상세한 퍼센트와 둘러본 앱 및 웹사이트 활동까지 알려준다.


업무상 연락이나 온라인 장보기 등 꼭 필요한 활동 이외에도 멍하니 스마트폰을 들여다본 시간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 그걸 보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나의 내면 속 '아이의 시간'을 이만큼이나 빼앗겼구나, 라는 생각에.


물론 그렇게 한 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확실한 건, 모든 종류의 스크린 타임은 '아이의 시간'과 정반대의 지점에 있다는 것이다. 몇 시간을 스마트폰이나 게임 화면, tv 화면을 들여다본 나 자신에게 뿌듯했던 적이 있었던가. 차라리 햇볕을 쬐며 산책하는 편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


스크린 타임만큼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마음껏 몰입하는 '아이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그건 그 자체로 멋진 인생일 것이다. 사회적인 성공이나 결과에서 벗어나 아이처럼 순수한 기쁨으로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을 단 30분만이라도 매일 가질 수 있다면 --- 나의 하루는 결코 허무하지 않을 것이다.


타인의 삶을 훔쳐 보는 것, 비교하는 것, 사회가 좋다고 말하는 욕망을 내 꿈과 혼동하는 것, 남들의 부러운 시선을 받는 것... 이런 것들에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을 썼다. 그 시간을 온전히 나의 내면 '아이'에 집중할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부터라도 그렇게 살아가려고 한다. 내 마음 속 아이의 시간을 점차 늘려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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