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늘의 사과 나무만 심으면 된다.
올해 브런치에 올린 글이 딱 한 개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현생을 사느라 바쁘기도 했고, 그동안 쓴 글들이 어느새 약간 오글거리게 느껴져서(그만큼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 선뜻 글을 쓸 용기가 나지 않았었다.
그래도 2025년의 마지막 날, 일기 같은 글이라도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2025년을 아쉬움 없이 떠나보내줄 수 있을 것 같다.
'인생의 비밀을 너무 빨리 알아버린 건에 대하여'라는 제목을 써 놓고 글을 쓰려니, 내 나이가 벌써 (한국 나이로) 마흔다섯인데 '너무 빨리'는 아니지 않은가,라는 머뭇거림이 들었다. 하지만 '너무 늦지 않게'라고 고치면 뭔가 말의 느낌이 살지 않아 그대로 두었다.
2023, 2024, 2025년 - 이 3년은 나에게 무척 중요한 시간이었다. 이제까지 살아보지 않은 방식으로 살아본 3년이기도 했고, 인생을 완전히 바꿔보고자 나 자신에게 직접 실험을 해본 시간들이기도 했다.
3년을 딱 정해놓고 시작한 건 아니었다. 그저 3년 정도 지나면 어떤 유의미한 변화가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시작했고 어느새 3년이 다 된 현시점에, 그동안의 이야길 정리하고 싶었다.
1. 3년간 최선을 다해 책을 읽었다. 남는 시간은 거의 모두 책 읽는데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열심히 읽었다. 한 달 평균 6~7권씩 읽은 것 같다.
2. 내 본업과 관련된 공부를 하루에 2시간씩, 주 5일은 반드시 했다.
3. 유산소 포함 근력 운동을 주 4일씩 꾸준히 했다.
4. 매일 노트에 글을 썼다.
5. 도전하고 싶은 분야에 도전했다. 계속 도전할 예정이다.
3년간 해온 노력이 너무 평범해 보이는가? 내가 봐도 그렇다. 독서하고 운동하고 공부한 게 뭐? 남들도 다 기본으로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나는 왜 이런 평범한 노력을 작심하고 3년간 이어온 걸까? 그리고 내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나는 원래 책을 좋아하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독서량을 확 늘리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그동안 독서에 대한 갈망을 작정하고 풀 수 있어서 행복했다. 힘든 부분이 있다면 책 읽을 시간 자체를 내는 일뿐이었다.
아이 픽업 대기 시간에, 지하철을 타고 오가는 시간에, 미용실이나 치과 대기 시간에, 홀로 점심을 먹을 때, 틈만 나면 책을 읽었다.
그렇게 3년간 독서에 집중하며 얻게 된 부수적인 효과는 참 신기하고 놀라웠다.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들이 꽤 많았기 때문이다.
일단 독서를 통해 자연스럽고 건강하게 '고립'될 수 있었다. 나는 철저히, 그리고 기꺼이 혼자가 되었다.
독서에 푹 빠지다 보니 사람들과 겉도는 대화를 하는 시간이 아까워 견딜 수 없어졌다. 처음에는 꾹 참아보기도 하고, 남은 텐션을 끌어모아 억지로 분위기를 맞춰보려고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기가 빨려서 힘들다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그냥 그 소음을 듣고 있는 것 자체가 너무나 괴로워졌다.
그 사람들이 유난스러워서도 아니고, 내가 특별히 고상하고 지적이어서도 아니다. 그저 내 머릿속 채널이 완전히 다른 곳에 맞춰져 있어, 다른 채널이 들어오면 그냥 잡음으로밖에 수신이 안 된다고 해야 할까?
여러 사람들이 모여듦으로 인해 생겨날 수밖에 없는 부산물들 - 친절을 가장한 떠보기와 공허함을 채우려는 헛된 노력들, 온갖 가십과 불안 야기, 비교와 저울질, 은근한 과시가 견딜 수 없어졌다. 마치 육지로 잘못 내팽개쳐진 물고기가 된 느낌이었다. 산소가 부족해 아가미를 힘껏 펄럭이며 헐떡대는 물고기처럼, 원치 않는 그룹의 사람들로부터 멀어져야 숨을 쉴 수 있겠다는 본능적인 절실함마저 들었다.
의미 없는 인간관계와 멀어지고 나니, 가족과 소중한 친구 몇몇으로 이루어진 작은 인간관계의 질은 더 높아졌다. 더불어 인간관계는 '관리'의 영역이 절대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비슷하게 무리 지어 다니는 동물들처럼, 인간도 자신의 '격'에 맞는 부류들만이 자연스레 남게 된다. 그 격이라는 건 단순한 부의 수준도, 학력의 수준도 아니다. 특히 마흔이 넘어 '젊음'이라는 아름다운 포장지가 하나씩 벗겨지기 시작하면, 사람의 격이 민망할 정도로 낱낱이 드러나게 된다. 그걸 지켜보는 게 때론 슬프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독서, 운동, 공부는 그 과정 자체를 즐겨야만 지속할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1000권을 읽었더니 엄청나게 현명하고 똑똑한 사람이 되었다든지, 살을 10킬로쯤 쫙 빼게 되었다든지, 자격증 수십 개를 땄다는 눈부신 결과를 기대하면 반드시 실망하게 되어 있다.
그냥 바라는 것 없이 덤덤하게 해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듯 당연히 하는 일상이 되어야 하고, 그 과정 속에서 느껴지는 소소한 뿌듯함 자체가 보상이 되어야 한다.
독서와 더불어 운동과 공부도 나를 자연스럽게 고립시켰다. 사람들뿐만 아니라 소비로부터, 온갖 미디어로부터,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틈틈이 할 수 있는 독서와 달리 운동과 공부는 물리적인 공간과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일부러 마련해야 한다. 매일 최소 2시간 이상을 독서, 운동, 공부에 투자하면 흥미로운 변화가 일어난다. 고립의 시간, 발전의 시간, 그리고 불안으로부터 벗어나는 시간이 차례차례 다가온다.
나는 옛날 사람이라 꼭 종이에 펜으로 줄을 그어가며 공부를 하고, 글을 쓸 때도 온라인 플랫폼 외에는 노트에 직접 손으로 쓰는 걸 선호하는 편이다.
카페에서 글을 쓰다 보면 기분이 참 좋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트북이나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공간 속에서, 나 홀로 펜으로 무언갈 끄적이고 있으면 마치 과거에서 시간 여행을 하러 온 사람인 양 특별해진 기분마저 든다.
직접 손을 움직여 하는 일, 몸을 쓰는 일은 언제나 뿌듯함을 준다. 내 꿈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나는 오늘의 할 일을 모두 했으니 불안하지 않다. 게다가 내 할 일에 집중하느라 남들과 비교할 여력도 없다. 오로지 어제보다 딱 5분 더 러닝을 하며 땀을 흘린 나, 어제보다 영어 단어 하나라도 더 많이 알게 된 오늘의 내가 더 중요하다.
세상이 변해가는 속도는 너무 빠르고, 언제나 예상치를 훨씬 뛰어넘는 일들이 대수롭지 않게 일어난다. 너무 많은 선택지 앞에 오히려 쉽게 무력해져, 어느새 타인들의 삶을 구경하는 소비자로만 남게 된다. 남들의 연애, 남들의 이별, 남들의 여행, 남들의 육아, 남들의 먹고 마시고 바르고 소비하는 모습, 그리고 그 모든 컨텐츠를 생각없이 즐기고 소비하라고 부추기며 이익을 챙기는 회사들...
육아 전문가들은 밥 먹기 전 자꾸 초콜릿을 먹으려는 아이를 탓하기 전에, 초콜릿을 아이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미리 치워두라고 말한다. 우리도 즐길 것이 너무 많은 이 세상을 탓할 게 아니라, 나 자신을 건강하게 고립시킬 기회를 먼저 주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것이 나 자신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친절한 행동이 아닐런지.
꼭 10억, 100억을 벌고, 젊은 나이에 일찍 은퇴하고, 9 to 6 회사에 얽매이지 않은 채 노트북 하나로만 자유롭게 일할 수 있어야만 성공한 삶일까? 주류의 삶으로 보이는 인생을 살아야만 번듯한 인생일까?
타인의 기준에 휘둘리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 이 길로 가세요 저 길로 가세요 떠드는 세상에 Mute 버튼을 누르고, 세상에서 가장 지루하고 곧바로 결과가 나오지 않는 일들(독서, 운동)로 일상을 채우며 나 자신에게 기회를 주자. 시끄러운 세상에서 고립될 기회를, 마음속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도전할 기회를, 실패할 기회를,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지 않는 과정 속에서도 묵묵히 오늘의 할 일을 하며 버틸 기회를.
매일 매일 비슷한 일상일수록, 집요한 루틴의 반복으로 채워진 날들일수록, 묘하게 내면은 안정되고 단단해질 것이다. 작은 일에 화가 나거나 불안하지 않을 것이다. 매일 똑같은 허름한 운동복에, 공부할 책과 노트가 든 책가방을 들고 집을 나서는 누군가의 얼굴이 충만한 하루에 대한 기대감으로 조용히 반짝일 수 있기를. 온 세상이 요란하게 가르키는 방향으로 모두가 휩쓸려 갈 때, 인생의 비밀을 일찍 알아버린 누군가는 일희일비하지 않은 채 고집스레 오늘의 할 일에 몰두하기를. 그런 사람들의 가치가 빛을 발하는 2026년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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