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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 Jul 13. 2019

39살 여자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30대 중반을 넘어가며 점점 사라지는 친구, 동료, 언니들에 대하여

어제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첫 직장에서 만났던 친구들로 나 포함 39살 두명, 40살 1명, 41살 1명 이렇게 여자 넷이 반년만에 모였다.


여느 때와 같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실컷 수다를 떨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1년에 한번씩만 만나도 어색하지 않을, 언제봐도 반갑고 좋은 친구들이었다. 20대 후반 첫 직장에서 만나 다들 풋풋하고 어설픈 시기에 좌충우돌하며 시간을 같이 보냈기 때문인지 가식적이거나 있는척 하지 않고, 자신의 단점도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소중한 모임이었다.


좋은 시간을 보낸 후 집으로 돌아오는데, 여느 때와는 달리 마음 한 구석이 조금 씁쓸했다. 즐겁게 웃고 떠들고 재밌게 이야기했는데 왜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한걸까...?


결혼과 육아 이후로, 사는 모습이 너무 달라졌기 때문인것 같기도 하다. 나는 30대 후반까지 외국계 회사를 쭉 다니다가 결혼과 출산 이후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를 조금 키우다가 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내후년에 대학원을 졸업하면, 완전히 다른 분야로 새 커리어를 시작할 계획이다.


다른 친구 두명은 30대 초중반 정도에 출산과 함께 직장을 그만둔 이후로 계속 전업주부로 살고 있다. 나머지 한명은 미혼이고, 직업을 몇번 바꾼 후 지금은 안정적으로 일하고 있다.


사실 이 친구들 뿐만이 아니라, 39살이 된 지금, 내 주변에서 일을 계속 하는 친구들은 대부분 미혼이거나, 기혼이지만 아이가 없거나, 이 두가지 케이스가 가장 많다. 워킹맘인 경우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것 같다. 워킹맘 비스무리(?)하게 바쁜 대학원 생활 중인 나도, 친정엄마 도움을 받으며 겨우 살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얼마나 힘든 현실인지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많던 친구들, 동료들, 언니들, 선배들은 모두.. 어디에 있을까? 30대 중반 까지만 해도, 나는 만나야 될 사람들로 주말마다 약속을 잡았고, 늘 바빴다. 그때는 대부분 일을 하고 있었고, 우리가 얘기하는 주요 주제는 '나' 자신에 관한 것이었다. 이를테면 '나'의 일, 회사 이야기, 내 연봉, 내 남자친구, 내 미래에 대한 이야기...


그런데 결혼과 출산 이후에는 아무래도 '나' 보다는 남편이나 아이, 시댁 이야기를 주로 하게된다. 나 역시 그렇다. 아이를 낳는 순간 인생의 1순위는 아이가 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그리고 '나' 개인 보다는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내가 점점 익숙해져가고 내 정체성이 굳어져 가는 시기이기 때문에 사실 자연스러운 화제 전환이다.


하지만 나는 궁금했다. 왜 하나를 위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할까? 결혼하고 아이를 가지면 갑자기 세상 모두가 '애엄마'라는 타이틀을 나에게 붙이고, 그것이 40대 이후의 기혼 여자가 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최고의 '평생직장'인양 여긴다. 남편도 있고 아이도 있으니 그 외에 하는 일은 자동으로 모두 '부수적'이고 '취미'에 가까운 일이 되어버린다. 조금 놀랐던 점은, 내 또래거나 더 어린 30대 친구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육아와 일을 병행하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만큼 힘들고, 고되기 때문이라는 것은 나도 경험으로 뼈저리게 알고 있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아이를 키워보면 모를 수가 없는 현실이다. 나 역시 2년의 독박육아 후 늙으신 친정 부모님을 끌어들여 겨우 학교다니고 있는 주제에, 당당하게 '애엄마'도 자아를 찾자, 일을 하자, 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사실 이건 당당하고 말고의 문제도 아니다.


나는 그저 이렇게 생각했다. 왜 선택해야 하지? 왜 가정과 일을 둘 다 가질 수 없는거지? 난 결혼도 하고싶고 아이도 갖고 싶고 내 공부도 하고 싶고, 일도 하고 싶고, 공부도 하고 싶고, 글도 쓰고 싶다. 그 와중에 틈틈히 취미 생활도 하고 사람들과 교류도 하고 싶다. 물론 어떤 것은 불가능하고, 어떤 것은 가능하지만 거의 불가능할 만큼 힘들 것이다. 하지만 가수 이효리가 말했듯이, 꼭 가능한 것만 꿈꿔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녀의 말이 나는 너무 좋았다) 물론 사회적인 시스템 문제도 있지만, 일단 나에게는 이 모든게 너무 당연한 것이라, 내가 결혼을 했든 엄마가 되든 상관없이 그냥 계속 추진해야 하는 일에 속했다.


그런데 점점 나이들수록, 나와 함께 이런 당연한(!) 고민을 치열하게 함께 하던 동료, 친구들이 하나씩 사라져가는게 조금 서글프다.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좋겠다, 너 정말 대단하다" 류의 반응이 나오는데, 이것도 조금 씁쓸했다. 부러움이나 칭찬을 듣고 싶은게 아니라, 나도 너랑 비슷한 상황이야, 나도 알지, 나도 그런 점 때문에 힘들어, 나도 그랬는데 이렇게 저렇게 그 어려움을 통과하고 있어, 라는 류의 이야기나 동조를 얻고 싶기 때문이다. 즉 아이 엄마로서의 정체성 외에도 '나' 개인의 꿈과 미래를 얘기하는 것이, 그녀들(포함 나와 그녀들의 가족, 이웃, 사회)에게도 너무나 당연한 전제이길 바라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들이 반짝반짝하던 시절들을 마치 어제처럼 생생히 기억한다. 우리는 모두 갓 대학을 졸업하고, 외국계 회사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하며, 연애와 커리어에 대해 고민하던 꿈많던 20대들이었다. 사실 그때는 그 친구들 외에도 주변에 친구들이 넘쳤다. 공부를 더 할까, 이직을 할까, 유학을 할까, 우리는 모두 '나'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었다.


한 30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점점 또래의 동료들이 급격히 줄어드는 것을 느끼게 된다. 회사에서도 대리, 과장급까지는 비슷한 나이의 여자 동료들이 많이 있지만, 더 직급이 올라갈수록, 나이가 먹어갈수록 그녀들은 사라진다. 나도 회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대학원에 갔더니, 그곳도 비슷했다. 회사와 마찬가지로, 20대 후반~30대 초중반까지가 가장 많았고, 40대로 갈수록 드물었고, 애엄마는 더더욱 드물었다. 나는 이제 어느 곳에 가나 주류가 아닌 것이다. 학부모 모임 같은 곳이 아닌 이상, 당연하게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끼리 모이는 자리가 흔치 않아졌다는 것이, 10년의 직장생활을 한 나에게는 꽤 신선한 충격이었다. ㅎㅎ


사실 엄마가 된다는건 정말 굉장한 일이다. 엄청난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와 정성이 들어간다. 엄마로서의 역할만 해도,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바쁘게 지나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엄마이기도 하면서 아내이기도 하면서 그냥 나 자신으로도 살아가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계속 공부하고, 대학원도 가고, 책을 보고, 글도 쓰고, 사람들도 열심히 만난다.


아이가 어느 정도 크면 다시 친구들의 모임이 활발해진다지만, 그 이전에도 나는 동년배의 친구들을 간간히 보며 살고싶다. 그냥 너무 당연하게, 사적인 친구 모임을 위해 남편에게 아이를 편하게 맡기고 나올 수 있는 친구들을 더 많이 보고 싶다. "나 일 시작했어, 나 공부 시작했어, 나 새로운 취미를 시작했어"라는 말을 너무 당연하게 하는 39살, 40살, 41살의 친구들을 더 많이, 자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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