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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 Jul 13. 2019

엄마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24시간이 모자란 세살 아이의 엄마이자 대학원생의 하루하루

30대의 끝자락, 아이가 두돌 무렵, 어렵게 입학한 대학원 첫 학기 성적표가 나왔다. 모든 과목이 A였다. 솔직히 너무너무 기뻤다.


이건 그냥 성적표가 아니었다. 내 눈물과 아이의 눈물이 어린 성적표였다. (ㅠㅠ) 아이와 나, 우리 둘이 난생 처음으로 떨어지면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고, 또 아팠는지... 마음만 아픈게 아니라, 실제로 몸이 엄청 아팠다. 첫학기가 시작된 3월과 4월, 두 달간을 꼬박 심하게 앓았다. 아이도, 나도 그랬다. 서로 적응하느라 전쟁같은 시간을 보냈다.


아이를 낳고 나니, 시간은 완전히 다르게 흘렀다. 사실 결혼 후에도 내 생활은 큰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출산은, 정말이지, 어마무시한 변화를 몰고왔다. 거의 다시 태어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가장 큰 이유는, 최 우선 순위가 완전히 바뀌기 때문이다. 나는 그동안 나 자신을 가장 사랑하며 살아왔는데, 갑자기 나 자신보다 더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나타난 것이다. 사실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이것을 '직접' 경험해보니 이건.... 상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너무나 어마무시한, 엄청나게 크고 깊은 감정이었다. 나는 이런 사랑을 살면서 경험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아이에게 느끼는 사랑의 감정도 그렇지만, 아이가 나에게 주는 사랑의 크기도 그렇다. 그 사랑이 너무 크고 순수하고 감격스러워서, 나는 내 아이에게 홀딱 빠져버리고 말았다. 다른 것은 솔직히 아무것도 중요치 않았다.


이렇게 되고나니 인생의 많은 것이 자연스레 바뀌었다. 왜 아줌마가 억척스러워지는 것인지 알게 되었다. 내 아이 외에는 중요한게 없기 때문이다. 남의 시선이나 내 자존심 같은 것들도, 아이 앞에서는 그렇게 큰 가치가 아니다.


나는 사실 출산 전에는 굉장히 개인적인 사람이라, 친구들 표현에 의하면 '겉으로만' 너무 도도하고 새침한 스타일이라,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거나, 여러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하거나, 하는 일들을 극도로 꺼려했다. 소심하고 내향적인 성격 탓이기도 했다.


그런데 엄마가 되고나니 그런 것도 많이 바뀌게 되었다. 아무한테나 말도 잘 걸고, 누가 말 걸어와도 자연스레 대답하게 되었다. 이런 것이 '애엄마' 포스인가, 생각해보게 된다. ㅎㅎ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간을 귀하게 쓰게 되었다.


대학원에 다니니 시간이 너무나,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거기에 나는 육아와 살림까지 병행하고 있으니, 시작부터 무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덜 중요한 것부터 하나씩, 자연스럽게 포기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학교 생활의 소소한 즐거움 같은 것은 나에게 사치였다. 동기들과 잡담을 한다던지, 같이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며 우애를 다진다던지, 학교 캠퍼스를 거닐어본다던지, 같은 일들이다. 그냥 혼자가 편했다. 왜냐하면 수업이 끝나자마자 나가야 하고,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어서 과제를 하고, 남는 시간에는 조금이라도 아이 얼굴을 더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외모에 대해서도 내려놓게 되었다. 그래도 한때는 외국계 회사 비서직으로 근무하며, 하이힐에멋진 오피스룩을 차려입고, 늘 메이크업과 네일을 하며 꾸미고 다녔던 세월이 10년이었는데, 이제는 다 부질없었다. 외모에 신경쓰기는 커녕, 먹는 시간과 자는 시간을 아껴가며 과제를 하다보니 건강에 무리가 올 정도였다. 로션과 선크림만 겨우 바르고 다녔다. 머리도 귀찮아서 단발로 잘라버렸다. 옷은 맨날 같은 티셔츠만 입고 다니고, 더럽지만 않을 정도로 하고 다녔다. 책가방을 메고 다니며 온갖 물건을 넣고 다녔다. 언제 어디서든 앉기만 하면 책이나 노트북을 펼쳐 공부할 수 있도록...


그렇게 밀도있게 보냈던 4개월의 시간이 괴롭기만 했을까? 솔직히, 39년을 살아오면서,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고 느꼈다.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느꼈다. 목표가 확실했고, 그것을 향해 집중해서 질주만 했던 시간이었기 때문에, 몸은 힘들어도 머리는 맑았다. 어떤 잡념도 들어갈 틈이 없었다. 어떻게든 시간을 남겨서 아이와 5분이라도 더 놀기 위해,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해서 과제를 끝냈다. 아이가 없었더라면 천천히 봤을 책도, 짧은 시간에 집중해서 빠르게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아이 얼굴이 너무나 어른거려서, 다른 생각은 할 틈이 없었다.


내 생애 이렇게 몰두하고 집중하며 보낸 시간이 있었나 싶다. 고3 때에도 이렇게 열심히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이라는 동력이, 사랑이라는 감정이, 나도 몰랐던 내 잠재력을 일깨워주었다. 참 감사하다고 느꼈다. 학기 중 느꼈던 소소한 불만들, 소외감, 나만 불리하다는 초조감이, 자연스레 잠재워지는 순간들이었다. 닥치면 다 할 수 있구나. 불만과 핑게를 찾는 시간에, 그냥 묵묵히 열심히 하다보면, 어떻게든 나만의 길을 찾게 되는구나, 라는 깨달음이 왔던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더불어 이 성적표는, 내 욕심 차리자고 아이에게 소홀한게 아닌가 하는 죄책감에 늘상 시달리던 나에게, '잘하고 있다고, 지금처럼 하면 된다고, 이것이 너의 인생에서 가치가 없는 일이 아니라고, 아이를 희생시키고 있는게 아니라고' 격려해주는 편지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참 감사했다. 써포트해준 남편에게, 친정 엄마에게,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의 부재를 씩씩하고 쾌활하게 잘 버텨준 우리 아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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