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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 Feb 17. 2020

우아하게 살고 싶었습니다만

구차해도 생색내고, 사과도 부탁도 잘 해야만 하는 이유

나는 아이를 낳은 후에 확실히 좀 변한 것 같다. 아무래도, 모든 엄마가 그렇듯, 인생의 우선순위가 확 뒤바뀌었기 때문일 것이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면, 아이를 포함한 내 가족, 그리고 내 일 외에는 인생에서 그렇게 크게 중요한 것이 별로 없다. 그렇게 가지고 싶은 것도 없고, 잘 보이고 싶은 사람도 없다. 그래서 별로 무서운 것도, 두려운 것도, 눈치 볼 일도 없어졌다. 예전보다 거절도 잘 하게 되었고, 싫어하던 친구들과는 연락을 끊어버렸다. 시어머니가 자꾸 안부 전화에 집착하시길래, 더 이상은 못 하겠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싫어하는 것들을 그럭저럭 참고, 견디던 나의 인내심이, 이제는 남아있지 않은 것 같다.


도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아이를 낳고, 그리고 마흔이 되고나니, '더 이상 참지 못하는' 병이라도 걸린걸까...? 나는 어느새 거칠고 터프한, '아줌마'가 되어버린 것일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후, 나는 갑자기 나의 사회적 신분이 저 아래로 훅 떨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저 '엄마'가 되었을 뿐인데, 내가 '엄마'로서의 직업이 아닌, 다른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 주변 사람 모두에게 항상 미안해하고, 부탁하고, 죄스러워 해야하는 상황을 맞닥뜨린다.


특히 아이가 아프면, 무조건 엄마 책임이다. 아이가 아픈데도 학교를 가고, 공부를 하고, 내 생활을 계속 이어나가면, '엄마가 되서 참 냉정하다'라는 비판을 받는다.


아이가 돌도 안되었을 때, 나도 심하게 아프고 아이도 아팠던 적이 있다. 어쩔 수 없이 남편이 며칠 휴가를 내고 우리를 돌봤는데, 사정을 잘 몰랐던 시어머니에게 다음과 같은 문자를 받았다.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 마음을 편하게 해주어야지, 자꾸 일하는 사람을 불러내면 어떡하니.'


자신의 생활을 일일이 공유하지 않는 무뚝뚝한 아들과, 여자는 아이를 낳고 가정을 써포트하는 존재, 라고 여기는 옛날 사람인 시어머니가 이런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물론 나는 아무런 답변도, 대응도 하지 않았다. 쓸데없는 일을 자꾸 생각하면서 에너지 소모를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언제나 나의 편인 친정 엄마 조차도, 아이가 심한 감기에 걸려 아플 때, 내가 약을 먹이고 아이를 잠깐 들여다 본 후, 다시 밤 늦게까지 과제에만 열중하자, "너는 애 엄마가 참.... 쯧쯧" 이란 핀잔을 하셨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한 가정을 지켜야 하는 엄마이자, 아내인 이상, 꼿꼿하고 우아하게 살기는 이미 글렀다, 라는 생각이 든다. 나 혼자만 우아하게 고상 떨어봤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걸 뒤늦게 깨달았다. ㅎㅎ


구차하지만 한껏 생색내고, 힘들다고 말로 표현하고, 나 힘들다고, 좀 도와달라고 요청하고, 부탁해야만 한다.


대학원 수업을 듣기 위해 왕복 4시간씩 버스타고 오고가는 것도 힘들고, 이틀에 한번꼴로 밤새며 과제하는 것도 힘들고, 밥먹을 시간도 아껴가며 살고 있다고, 구체적으로 말하고 알려야 한다. 육아와 가사까지 완벽히 할 수는 없다고, 좀 도와달라고 요청해야 한다.


사실 이런 부분이 나에겐 가장 힘들었다. 늘 독립적으로,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하는 것에 익숙했기 때문에,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그리고 내면에서 계속 들려오는, 자기 검열의 목소리도 나를 괴롭혔다. '지금 너 잘되겠다고, 너 하고싶은 공부 하겠다고 이러는 거잖아? 너무 이기적인거 아니니? 너만 포기하면 모두가 편한데, 너만 순순히 전업주부를 떠맡으면 모두가 아무 불편 없을텐데...'


나 스스로도 놀랐지만, 이 뿌리깊게 박혀있고 나도 모르게 내면화되어 온 전통적이고 '착한' 여성상의 목소리는 힘이 셌다.


하지만 엄마도 사람이다. 엄마인 내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내 일, 나만의 '어떤 것' 없이는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이다.


이러한 결론을 얻은 후에야, 내 인생이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하는 범위를 이미 넘어섰다는 것을 깨달았다.


솔직히 아이를 키우면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다른 덜 중요한 것을 거의 포기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그것도 아이가 건강하고, 남편이 잘 써포트 해주며, 아이를 봐주실 친정 부모님이 아직 건강하시다는 전제 하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가끔은 살얼음 위를 걷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건강한 아이, 자상한 남편, 그리고 아직 아이를 봐주실 수 있는 친정 부모님, 이 세 가지 바퀴 중 어느 것 하나만 삐끗해도, 나는 넘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래서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그 외의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모두 가지 치듯이 쳐내면서, 전쟁처럼 살아가고 있다. 아이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는 이런 생활일 것이다.


남편에게도 아이의 존재는 큰 변화였겠지만, 특히 여자에게 출산과 육아란 - 정말 다시 태어나는 것과 비슷한 정도의 드라마틱한 변화인 것 같다. 아이가 생기는 순간, 사는 모습은 굉장히 비슷비슷하게 평준화된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특히 엄마들에게 더욱 그렇다.


여전히 엄마가 직접 아이를 돌보고, 집안의 온갖 소소한 일들을 케어하는 것만큼 당연하게 여겨지는 미덕은 없다. 그것을 엄마인 내가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순간부터, 온갖 크고 작은 '시달림'에 부딪쳐야 한다.


나는 그것을 얼마나 잘 '견디느냐' 의 여부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회가 결혼한 여자에게 요구하는 어떤 기대치는, 정말로 깜짝 놀랄만큼 구시대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은 엄마의 역할이 무한대로 확장되는 것 같다. '엄마표' 영어를 가르쳐서 아이가 영어도 잘해야 하고, '엄마표' 밥상도 예쁘게 잘 차려서 아이가 골고루 먹게 하고, 그놈의 엄마표, 그놈의 집밥...ㅎㅎ


TV나 블로그를 보면, 아이도 잘 키우면서 가사와 요리도 완벽하고, 날씬하고 예쁜 외모까지 유지하는 슈퍼맘들이 넘쳐난다. 나는 그것들을 그냥 어른들의 '동화책'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현실에서는 매우 어렵지만 모두가 꿈꾸는, 그러나 그 이면의 수많은 노동력과 수고는 감춰둔 채 예쁘고 아름다운 면만 부각시킨 어른들의 동화.


엄마는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것 같다. 솔직히 나는 일찌감치 '이상적인' 엄마의 역할을 내려놓았다. 그렇게 될 수도 없을 뿐더러, 기대치를 높이 잡아서 스트레스 받으며 나 스스로를 괴롭히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다행히 남편은 육아와 집안일에 대한 참여도가 아주 높은 편이라, 그나마 내가 이 시달림을 견디는데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었다. 물론 남편의 가사일 처리 능력(!)이 완전히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을 끝냈다는 것에 의의를 두며 대충 넘어가는 자세도 필요하다.


남편이 가사와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최종적으로 '엄마'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라 가족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아이와 아빠의 유대감도 깊어지고, 특히 아들인 아이에게는 좋은 롤모델이 된다.


대학원 생활도, 처음에는 정말 전쟁에 가까웠다. 대학원 첫 학기 때, 엄마와 떨어지지 않겠다고 우는 아이를 떼놓고 버스를 타러 가며,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아이도 나도, 정말 많이 아팠다. 마음만 아팠던 것이 아니라, 실제로 몸도 아팠다.


친정 부모님을 올라오시게 해서 아이를 맡기는 것은 또 얼마나 마음 불편한 일인지. 늘 죄스럽고, 미안하고, 조바심이 났다. 빨리 이 공부를 끝내서 엄마 아빠에게 다 갚아야지, 이 생각 뿐이었다.


그렇게 힘들게 얻은 시간인데, 어떻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풀타임으로 일하지 않는 대학원에 다니는 것조차 이렇게 힘든데, 워킹맘들은 도대체 어떻게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새삼 존경스럽다는 생각마저 든다.


결국은 가장 중요한 것을 취하고, 나머지는 과감히 내려놓는 수 밖에 없다. 집이 좀 더러워도, 머리는 산발이어도, 종종거리며 완수하지 못한 일에 집착하기 보다는, 아이는 진심으로 자신과 즐겁게 놀아줄 마음의 여유가 있는, 행복한 엄마를 더 원할 것이다.


이 시달림을 견디는 과정 중에, 한명이라도 비슷한 처지의 동료나 친구가 있다면 정말 큰 힘이 된다. 서로 포기하지 말자고, 조금만 더 견디자고 격려하며, 서로를 응원해주고 칭찬해줘야 한다. 그래야 오래 지치지 않고, 꾸준히 갈 수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롤모델이 되어주어야 한다.


완벽해질 수도 없고, 그렇게 될 필요도 없다. 자신의 환경에 맞는 타협점을 잘 찾아낸다면, 비록 '우아하게' 살지는 못해도 '행복'해질 수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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