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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 Feb 29. 2020

누가 집안일을 무시할 수 있는가

직접 몸을 움직여 해봐야만 알 수 있는 것들

나는 꽤 오랫동안, 집안일과 요리 실력이 정말 형편없었다. 6년이나 자취했지만, 이 부분만큼은 조금도 늘지 않았다. 결혼을 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아이가 생긴 이후로는 조금씩 이유식도 만들고, 요리도 하면서 가사일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미룰 수도, 아웃소싱할 수도 없는 시점까지 온 것이다.


그래도 남편이 집안일을 많이 분담하는 편이라, 가사일에 대한 스트레스는 없는 편이었다. 남편도 이런 나에게 큰 기대를 하진 않는 눈치였다. 그런데 하루는, 어떤 문제를 갖고 조금 말다툼을 하다가, 갑자기 남편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니나가 집안일이나 요리 못하는건 상관없어. 그런데 내가 서운한건, 니나가 가사일에 대해 너무 무심하다는거야. 아예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잖아?"


솔직히 맞는 말이었다. 그리고 남편의 서운함이 단박에 이해되었다. 깔끔한 성격이라 직접 나서서 집안일을 하는 남편에게 은근슬쩍 미뤄놓고, 못한다는 핑계로 아예 관심 밖에 두었던 것이다. 그 뒤로는 '내 일'이라고 생각하고 집안일을 대하게 되었고, 당연히 가사일에 대한 실력(?)도 늘게 되었다. 어떤 일이든, '내 일'처럼 하는 것과 아닌 것과는 정말 하늘과 땅 차이라는걸 새삼 느꼈다.


남편은 가사와 육아를 많이 해봐서, 시댁이나 친정에 가도 가만히 앉아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항상 일을 돕고 있거나, 부지런히 움직인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유일하게 움직이지 않고 편하게 노는 사람은, 우리 친오빠 뿐이다. ㅎㅎ 솔직히 결혼 전에는 나도 별 다를 바가 없었으니 오빠가 별로 거슬리지 않았는데,  집안일에 눈을 뜨자 무척 거슬리기 시작했다.


우리 부모님은 남녀차별 없이 우리 남매를 키우신 편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동생인 나만 미묘하게 느끼는 차별의 지점은 분명히 존재했다. 게다가 오빠는 타고나길 좀 허약한 편이라 엄마를 늘 애타게 했다. 엄마는 어렸을 때부터 뭐든지 알아서(?) 잘 하고 비교적 독립적이었던 나보다, 항상 오빠를 더 챙기느라 바쁘셨다.


그리고 너무나 헌신적이셨던 탓에, 아들의 손에 물 한방울 안묻히고 키우신 친정 엄마는, 그 결과물(!)을 명절 때마다 여실히 보고 계신다.


나 역시 오빠랑 똑같이, 손에 물 한방울 안 묻히고 컸다. 물 한번 마신 컵을 설거지통에 아무렇지도 않게 놓고 가던, 철없던 딸이었다. 하지만 결혼과 출산 후, 집안일을 직접 해보면서 서서히 바뀌게 되었다. 그리고 많은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게 되면, 집안일의 무서움(?)을 가장 먼저 맞닥뜨리게 된다. 사람 한 명이 살면서 얼마나 많은 쓰레기를 생산해내는지, 얼마나 많은 분리수거와, 설거지와, 빨래와, 해도 해도 티가 안나는 청소를 수도 없이 해야만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의 유지가 가능한지, 정말 깜짝 놀라게 된다.


마법같이 짠, 하고 좋은 냄새가 나는 새 수건과, 여러 개의 반찬이 정갈하게 차려진 따뜻한 밥상과, 깨끗하게 정돈된 공간에서 살던 왕자님과 공주님은, 드디어 그 '마법의 성'에서 나와, 무서운 현실과 마주치게 되는데....


나는 그 '마법'이 오로지 엄마의 일방적인 노동과 희생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걸, 굉장히 늦게 깨달았다.


엄마는 사랑으로 우리를 키우셨지만, 너무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은 되려 자식들에게 독이 되는 것 같다. 우리는 엄마의 가사 노동의 가치를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너무 귀하게 여기지 못하며 성장했다. 엄마와 친오빠를 보면서, 내 아이만큼은 어렸을 때부터 가사일에 적극 참여시키며 키워야 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나의 친오빠는 여전히, '부모님은 언제나 헌신적이고, 희생적으로 자식들에게 베풀어야만 하는 것이 당연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명절 때 잘 차려진 음식을 맛있게 먹고 몸만 싹 빠져나가, 거실에서 tv만 보는 것도 당연하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주를 봐주시는 것도 여전히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여기는 것 같다.


나는 그의 무심함에 깜짝 놀라곤 한다. 한번도 '자신의 일'로 집안일을 대해본 적이 없는 사람 특유의, 그 완벽한 무심함.


나도 한때 그랬기에, 너무나 잘 보인다.


매일 매일 빨래를 돌리고, 설거지를 하고, 밥을 지으면서, 나는 엄마를 생각한다. 엄마의 노동력을 생각한다. 엄마의 그 놀라운 센스, 훌륭한 음식, 집안 곳곳 손 닿는 모든 곳에 엄마 특유의 정갈함과 부지런함이 묻어나는, 그 아담하고 아늑했던 옛날 집을 생각한다.


남편과 자식들을 회사와 학교에 보내놓고 홀로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빨래를 널고, 집안 곳곳을 분주히 다니며 청소하고 정돈하던, 엄마를 생각한다. 엄마는 냉장고 자석에 붙인 메모의 글씨체마저 단정했다.


내가 해보니 너무나 잘 알겠다. 그 손길 하나 하나가, 가족에 대한 사랑이고 책임감이라는 것을. 마트에서 채소 하나를 고를 때조차, 조금이라도 더 좋은 것을 집어들고, 과일을 씻을 때에도 가족 입에 들어가는 거니까 깨끗이 여러 번 씻고, 빨래는 주기적으로 삶는다. 조금이라도 좋은 것, 깨끗한 것을 먹이고 입히고 싶은, 부모님의 진심이 들어가 있는 매일 매일의 가사 노동.


엄마도 처음부터 그 모든 것을 잘하던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엄마도 하나 하나, 서툴고 미숙하게 배워갔을 것이다.


피상적으로 생각할 때는 정말 몰랐다. 그냥 머리 속으로 막연히 감사하다고 여기는 것과, 내가 직접 해보며 느끼는 것은 참 달랐다. 엄마가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이런 느낌이었겠구나.


주말에 남편과 같이 집안일을 하다 보니 그런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가사 노동을 하며 가족간의 팀웍을 다지는 것 같다고.


냉장고에 뭐가 있고, 옷장 구석구석 어디에 뭐가 있고, 창고에는 뭐가 있고, 청소할 때는 어떤 순서로 하고, 아이 장난감은 어떤 식으로 배열해 놓고... 등등 온갖 자잘한 물건들을 들여다보게 되고, 집안 구석 구석을 내 몸처럼 훓게 된다. 내 집에, 내 가정에 애착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나 자신을 사랑할 때 내 몸을 깨끗이 하고 나를 잘 꾸미듯이, 집도 똑같은 것 같다. 우리의 손길이 닿을수록, 우리가 온전히 이 집에 속한 가족의 일원이자, 주인이라는 느낌이 든다. 바로 '가사노동'을 통해.


때때로 귀찮고 힘들 때도 있지만, 집안일은 몸을 움직이게 하고 활력을 주기도 한다. 말 그대로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되는 일 아닌가. 특히 나처럼 잡념이 많고, 머리만 쓰는 일을 주로 하고, 쉽게 무기력과 게으름에 빠지는 사람들에게 집안일은 참 좋은 처방약이다. 적당한 집안일은 활력을 돋게 하고, 마음까지 개운해지게 만든다.


어렸을 때는, 어른이 되면 다 알아서 뚝딱 요리도 하고, 집안일도 잘 하고, 아이도 잘 키우는 진짜 어른이 자동으로 되어 있을줄 알았다. 마흔이 되어서야 새삼 깨닫게 되었다. '자동'으로 되는 것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조금씩 직접 해보면서, 우왕좌왕 하면서, 서서히 어른이 되어가는 것 뿐이다.


그냥 매끼 차려먹고, 치우고, 청소하고, 아이를 키우며 평범하게 살아가는 일만도, 이렇게 벅차다. 사는 것 자체가 참,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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