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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 Mar 11. 2020

우정이란 뭘까

친구 사이에도 '케미'가 있다

어느 정도의 친분을 '친구'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 속에 자신만의 카테고리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만나면 정말 편하고 별별 이야기도 다 할 수 있는 친구, 완전히 편하지는 않지만 호감이 가는 친구, 1년에 한번 볼까말까 하지만 계속 좋은 인연을 유지하고 싶은 친구, 별로 친하지는 않지만 어영부영 안부 정도 묻고 사는 친구 등등...


나의 경우 '베프'라고 할 수 있는 친구는 한 3명 정도 되는 것 같다. 베프이지만 1년에 한번 만날까 말까, 하는 상태이고, 연락도 아~주 가끔 한다. 각자 아이 키우고, 일하고, 공부하느라 너무 정신없고 바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만난 것처럼 편하고 좋은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 자주 연락하지 않아도 잘 지내겠거니,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지냈으면, 하고 마음 속으로 바라게 되는 친구들이다. 만약 서로에게 기쁜 일이 있으면, 아무런 질투나 시기심 없이, 진심으로 함께 기뻐해줄 수 있는 친구들이다.


마흔 살 정도 되니, 그동안 서서히 자연스럽게, 혹은 의도적으로, 인간관계가 꽤 많이 정리되었다. 베프라고 칭한 위 세 명의 친구들과도 갈등을 겪은 적이 당연히 있었다. 사소하게 서운할 때도 있었고, 오해할 때도 있었다.


그래도 서로가 늘 짠하고, 잘 지냈으면 좋겠고, 만나서 얘기하고 싶고, 가끔 생각나고 보고 싶은 '좋은' 마음은 변함이 없었던 것 같다. 뭔가 '케미'가 맞는 느낌이랄까? 인생의 가치관이나 관심사 같은 것들이, 완전히 똑같지는 않아도 크게 어긋나지 않고, 나와 비슷한 결이라는 느낌이 있으니, 오랜 시간 베프로 지내왔던 것 같다.


한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늘 주변에 사람들이 넘쳐날 때라, 우정의 소중함을 잘 몰랐었다.


특히 기쁘고 좋은 소식을 친구에게 이야기 했을 때, '순간 굳은 표정을 짓지 않고 진심으로 함께 기뻐해주고 축하해 줄' 친구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나이가 들수록 더 그런 것 같다. 친구의 고통을 가십 거리로 얘기하지 않고, 친구의 성취를 깎아 내리지 않고, 친구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는 농담을 던질 수 있는 친구는 점점 더 희귀해지고, 소중해진다.


어렸을 때야 너도 나도 대학 다니고, 직장 다니고, 적당히 연애하면서, 사는 모습이 다들 비슷 비슷해 보이니 서로 할 얘기도 많고 공통 주제도 많다. 그래서 쉽게 친해지고, 솔직한 모습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다 함께 어울릴 시간도 줄어들고, 사는 모습도 제각각이 되면서, 몸도 마음도 금새 멀어져버리는 것 같다.


사실 친구가 한명도 없어도 외롭지 않을 수도 있고, 수많은 친구들과 자주 만나고 연락하며 지내도 철저히 외로울 수도 있다. 어렸을 때부터 수십년 간 친구로 지내왔다고 해서 서로 잘 아는 것도 아니며, 비밀을 털어놓거나 시시콜콜 수많은 얘기를 공유한다고 해서 친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이유없이 호감이 가는 사람,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 이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반대로 나에게 정말 잘 해주는데도, 이상하게 쎄한 느낌이 드는 사람도 있다. 말로 표현은 안되는 어떤 느낌. 정말 '케미'라고 밖에는 설명이 안되는 그 묘한 느낌.


전 직장에서 만났던 한 친구는 입사 동기라 금방 가까워졌는데, 끝끝내 그 케미가 맞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뭔가 부자연스러운 느낌. 너무 착하고 배려심이 깊은 친구인데도, 일정한 선 이상 더 친해지기 어려운 느낌이 있었다.


아마도 그녀보다는 내 탓이 더 컸을 것이다. 나는 그녀의 '자기 자신을 깍아내리며 상대방을 추켜올리는' 식의 대화법이나 농담에 끝내 적응하지 못했다. "남자 사귀면 뭐해, 또 헤어지겠지 뭐."  "에휴, 승진하면 뭐해, 일만 많지. 너가 진정한 위너지." ....


객관적으로 보아도 나보다 훨씬 훌륭한 외모와 능력, 직장 내 높은 인기를 가진 그녀가 자꾸 그런 식으로 얘기를 하니, 처음에는 좀 어리둥절한 느낌이었다가, 점점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그런 화법이 그 친구의 스타일이었을 수도 있고, 내가 그렇게 친한 친구라고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에 예의를 차린 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로서는 본심을 숨기는 듯한 느낌, 솔직하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녀에게 편해질 수가 없었고, 우리는 그렇게 평행선만 달리다가 끝내 친해지지 못한 채 멀어져 버렸다.


'솔직함'은 친해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도 어려운 부분인 것 같다. 너무 솔직해서 멀어지기도 하고, 너무 솔직하지 않아서 멀어지기도 하니까.


하지만 돌이켜보면, 만나서 항상 유쾌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친구들은, 대부분 서로에게 자신의 '민낯'을 보여줄 수 있는, 솔직한 친구들이다.


그것은 자신감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고, 상대방이 날 있는 그대로 받아줄거라는 믿음과 신뢰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다.


마흔이 넘어가니 이런 '민낯'을 스스럼없이 보여줄 수 있는 친구가 몇명 없다. 그래서 더 소중해지고, 감사해진다.


서로를 판단하지 않고, 비판하지 않고, 비교하지 않을 수 있는 사이. 애정어린 장난과 놀림을 마음껏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 마음 속 깊이,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단단한 느낌이 드는 사이.


그런 친구들의 존재가, 새삼 참 소중하고 고맙다. 나도 그들에게 그런 친구가 되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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