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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 Apr 03. 2020

귀하게 자라지 않아서 다행이다

때로는 결핍이 필요한 이유

나에게는 오빠가 한명 있다. '아들 + 첫째 + 몸이 약함' 이라는 세 가지 조건을 다 갖춘 오빠 덕분에, 나는 부모님의 관심을 상대적으로 덜(?) 받고 자랐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워낙 자상하고 헌신적인 분들이셔서, 사랑을 덜 받았거나 그런건 전혀 없었다. 오히려 넘치는 사랑을 받고 컸다. 다만 부모님이 늘 오빠에게 가지는 어떤 애잔함, 안타까움, 안쓰러움, 아픈 손가락..같은 느낌들이, 나는 항상 부럽고 질투가 났었다.


오빠와 내가 둘 다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40대에 접어든 지금도, 그 포지션은 변함이 없다. 오빠는 늘 안쓰럽고 하나라도 더 도와주고 싶은 자식. 나는 뭐든지 알아서 잘 하는 기특한 자식.


사실 그 '뭐든지 알아서 잘 하는 야무진' 자식이라는 포지션은, 왠지 좀 억울한 부분이 있다. 나도 부모님께 관심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어서 더 열심히 노력한건데, 아무리 노력해도 '선천적으로 허약하고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는' 오빠보다 더 관심을 받을 도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은, 오빠가 그런 부모님의 희생과 헌신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누리는 것을 볼 때였다. 오빠는 워낙 어렸을 때부터 그런 '밀착 케어'를 받고 커서인지, 뭐든지 당연하게 받았고, 그런 것에 마음의 짐을 느끼지도 않았다.


그런 부모님과 오빠를 볼 때면, 감정이 좀 복잡해진다. 이미 연세가 많이 드신 부모님의 모습을 볼 때, 더 이상 그런 케어가 물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가능하지 않은데도, 여전히 아이 대하듯 오빠를 대하는 부모님을 볼 때의 안쓰러움. 그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는데, 모두가 서로에게 미안해지는 이상한 상황.


부모님이 차별하지 않고 우릴 키웠다는 말씀은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원래, 차별은 받은 사람에게만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도 무조건 딱 한 명만 낳겠다고 결심했고, 지금도 둘째를 고민해본 적은 없다.


그리고 외동인 내 아이를 키우다보니...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부모님 생각도 나고, 나의 어릴 적 생각도 난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일들을, 엄마가 되고 나서야 이해하게 된 적도 많다.


어른이 되어서야,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았고, 귀하게 자라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일찍 독립할 수 있었고, 나름대로 '내 살길'을 더 열심히 모색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자의 반, 타의 반, 독립성과 자립성을 일찍 갖추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부모님이 날 방치(?)하신 것은 절대 아니었다. 오빠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덜했다 뿐이지, 아낌없는 지원과 사랑을 받으며 컸다. 그리고 부모님처럼 그렇게, 무조건적인 신뢰를 갖고 지켜봐주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내가 아이를 키워보니 그렇다.


아이가 하는 일에 간섭하고, 잔소리 하고, 뭔가를 대신 해주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다. 오히려, 관심을 일부러라도 '덜' 갖고, 끈기있게 지켜봐주고, 믿음을 갖고 기다려주는 것이 더 어렵다. 아이가 실패하고, 좌절하고, 눈물 흘리는 것을 옆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이 더 힘든 일이다.


아이와 부모와의 관계도, 역시 '대인관계'의 하나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깊고 일방적인 내리 사랑(!)의 관계이긴 하지만, 내 자식이라도 엄연한 '타인'임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래야만 그 아이에게, 자기 인생은 자기가 '알아서' 책임지는 법을 가르쳐 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내 아이도 조금씩 자라면서, 자기 나름대로의 결핍을 가지게 되고, 그로 인한 실패와 좌절도 맛보게 될 것이다. 세상의 아름답고, 행복한 것만 느끼며 살았으면 하는 것이 모든 부모의 마음일 테지만... 인생의 달고, 쓰고, 시고, 매운 맛까지 모두 느껴봐야, 더욱다채롭고 깊은 맛을 가진, 자기만의 요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맛을 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아이였으면 좋겠다. 때론 너무 이상한 맛을 만나도, 두려워서 아예 맛보는 것을 포기해버리는 사람이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맛이 어떤 것인지, 흥미를 느끼는 맛이 어떤 것인지, 스스로 찾아내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스스로의 결핍에 대해, 불평하고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결핍을 원동력으로 삼을 줄 아는,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실패할까봐 조심스러워 하기 보다는, 마음이 가는 방향을 따라 과감히 도전할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알아서 하라면서, 바라는건 엄청 많은 엄마네!)


그저 건강하게만 자라준다면, 더 이상 바랄게 없다. 모든 부모의 마음이 그렇지 않을까. 모든 아이들이 건강하게, 그리고 모든 어른들로부터 보호받고 사랑 받으며 자랄 수 있는 세상이길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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