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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 Apr 18. 2020

불륜, 지겹지만 자극적인 소재

욕하면서도 보게 되는 불륜의 서사

요즘 '부부의 세계'란 드라마가 인기를 끄나보다. 잠잘 시간을 줄여가며 과제에 허덕이는 대학원생 애엄마로서는, 시간이 없는 관계로 직접 보진 못했지만, 안봐도 내용은 대충 알 것 같다.


드라마는 원래 내용보다는, 배우들의 연기나 볼거리, 감정선을 따라가는 재미로 보는 것이기 때문에, 똑같은 불륜을 소재로 한 드라마라고 해도 모두 다르다. 너무 진부하거나 개연성이 없으면, 아무리 자극적인 소재라 해도 인기를 끌지 못한다.


나도 한때는 이런 드라마를 재밌게 보곤 했었는데, 나이가 좀더 들고 애엄마가 되고 나서 보니, 오히려 더 감정 이입이 되지 않았다.


도대체 뭣이 중한디... 남자가 뭐 그리 중한디... 시간도 참 많다, 특히 임자있는 남자 따위, 뭣이 중한디.... 허허.. 하는, 아줌마의 심정이 되고 마는 것이다.


보통 불륜 드라마는 남자 하나를 두고 여자들끼리 적대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자 대 여자의 대결 구도, 악녀 캐릭터, 와 같은 진부함의 극치는 둘째 치고라도.... 너무 쓰레기 같은  쓸데없는 일에 에너지를 쏟고 있는, 미혼 불륜녀의 어리석음이 참 안타까웠다.


도덕적인 잣대를 다 떠나서... 그 아름다운 시절에, 그 중요하고 소중한 젊은 날에, 본인의 자존감을 깎아먹는 경험을 굳이 찾아서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만약 나라면, 나를 '2순위'로 두는 남자와는 연애는 커녕, 썸 비슷한 것도 하지 못할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런 비생산적인 일에 나의 귀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한톨도 쓰고 싶지 않다. 이미 결혼한 남자를 두고 싸운다? 정말 생각만 해도 비참한 일이다. 또래의 젊음과 아름다운 연애만 해도 모자랄 시기에, 그런 시궁창에 들어갈 이유가 없다.


만에 하나, 정말 그  유부남이 영혼의 짝인 것 같고, 너무나 어른스럽고 멋져 보이고, 진정한 사랑같이 느껴진다면, 자기 자신을 진지하게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내 자존감에 어떤 문제가 없는 것인지, 왜 또래의 친구들은 평생 단 한번도 겪지 않는 경험을, 내가 하려고 하는 것인지, 내 마음 속 외로움이 너무 커지진 않았는지.


어릴 때 우러러 보고, 참 멋있고 존경스럽다고 생각했던, 어떤 나이든 남자의 세련되고 어른스러운 모습이, 사실은 꽤 환상에 지나지 않다는 것도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다. 사실 진짜로 멋있고 어른스러운 남자라면, 애초에 기혼인 상태로 미혼에게 손길을 내밀지도 않았을 것이다.


불륜이 생각보다 드라마에서나 있을법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직장생활 초년생 시절에 일찍 깨달았다. 아주 가정적이고 멀쩡한 사람들도 불륜인 경우가 종종 있었고, 불륜과 썸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타고 있는 사람들, 기회만 온다면 언제든 연애할 준비가 되어있는 이상한 기혼 남녀들까지 합하면, 그 수는 더 많았다. (물론 멀쩡하고 가정적인 사람들의 비율이 훨씬 높다)


주변 지인 중에 두 명이 잠깐 유부남과 사랑에 빠졌던 적이 있었다. 그 중 한명은 결혼까지 하는 바람에 연락이 자연스럽게 끊어졌고, 한명은 관계를 힘들게 끝냈다.


둘 다 자기 관리 철저하고, 인기 많고, 똑똑하고 능력있는 여성들이라 깜짝 놀랐었다. 강해보이는 외면에 비해, 내면에는 큰 블랙홀이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계속 사랑에 목말라하는 느낌. 그래서 아닌 줄 알면서도, 자꾸 바닷물을 마셔서 갈증을 해소하려는 느낌.


불륜에 대해 포장하거나, 그 심리를 헤아려보고자 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본인에게는 잠깐의 행복한 경험, 즐거운 연애였을 지 모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피눈물 흘리는 상처와 배신이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본 불륜 커플들의 모습은, 겉으로만 연애의 모습을 했을 뿐, 이기심과 어리광이 뒤섞인 관계로 보였다. 안식처와 같은 가정은 유지하되, 가슴이 두근거리는 '연애'도 하고 싶은 이기적인 욕망과, 또래에게는 없는 무언가를 (경제적 능력이든, 노련하고 세련된 매너와 태도, 사회경험이든) 갖춘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허영심의 등가 교환이다.


우리가 꿈꾸는 사랑은, 꼭 '나'여야만 하고, 꼭 '당신'이어야만 하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사랑일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충족시키는 것이 사랑의 현실적인 면이라고 할지라도, 더 좋아보이는 누군가가 나타났을 때 쉽게 대체되어 버리는, 물건같은 사랑을 꿈꾸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누군가를 속여야만 유지되는 연애, 남들의 시선이 두려운 사랑, 그런 것들을 하기에는 우리 자신이 너무 소중하다. 나를 그런 상황에 몰아넣기에는 우리의 한정된 시간과 인생이, 너무 너무 소중하고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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