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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 May 08. 2020

'라떼'는 말이야~

90년대 감성이 그리워지는 밤

나는 원래 공부를 하거나 글을 쓸 때는 음악을 별로 듣지 않는 편인데, 머리를 많이 쓰지 않고 몸으로 하는 일을 할 때는 음악을 꼭 틀어놓고 한다.


빨래를 널 때, 설거지나 청소를 할 때 음악을 듣는데, 주로 90년대 가요를 듣는다. 룰라, 쿨, 듀스, 넥스트, 자우림, 전람회, 이적, 이소라...같은 가수들의 노래다.


아이돌이 없었던 시절의 가요란, 정말 멋있고 개성이 넘친다. 진짜로 끼가 넘치고 음악이 하고싶은 사람들만 가수를 하던 시절. 전문적인 트레이닝을 시켜주는 회사도 없고, 성형도 그렇게 대중화되지 않았고, 실시간 차트같은 것도 없으니, 날 것 그대로의 느낌 같은 것이 있었다.


그런 시대에도 전혀 어설프지 않은, 정말 천재같은 가수들이 많았다.


개인적으로, 인터넷이 없던 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때만큼 가요계가 장르도 풍부하게 인기를 얻던 시절이 있었을까.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이 나오기 전, 우리는 주로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가요를 듣고, 라디오를 듣고, 가요 톱텐을 시청하고, 편지지나 엽서에 볼펜을 꾹꾹 눌러쓴 펜레터를 우편으로 보내곤 했다.


인터넷이나 SNS가 없었기 때문에, 정보가 그렇게 넘쳐나지 않았기 때문에, 상상의 영역이라는 것이 있었다. 스타는 신비감에 둘러싸인 존재였고, 음악도 그랬다. 지금처럼 사생활을 심하게 캐내는 문화가 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에, 음악 자체만 더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때는 스트리밍도, MP3도 없으니, 무조건 앨범 하나를 테입으로 사서 들어야 했는데 그것도 매력있었다. 테입에 들어간 종이를 펼쳐서, 작게 쓰여진 가사를 하나 하나 읽어보고, thanks to를 자세히 읽어보고, 거기에 실린 좋아하는 가수의 사진을 뚫어져라 보고 또 보고... 앨범의 색깔과 개성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 있었고, 손으로 만져지는 실체가 있었다.


앨범에 실린 노래 제목대로, 한번에 쭉 순서대로 들을 수 밖에 없는 테이프의 매력이란. 왜 이 노래를 1번으로 넣었는지, 왜 이 노래를 테이프 B면의 1번으로 실었는지, 뭐 이런 것들을 상상하고 친구들과 얘기하고 그랬던 기억이 난다.


특히 여자가수들... 90년대 까지만 해도, 굉장히 독립적이고, 멋있고, 세련된 의상과 메이크업, 도전적인 눈빛으로 노래부르던 가수들이 많았는데.. 그 언니들, 다들 어디로 사라진걸까.


교복같은 옷을 입고, 큰 눈망울과 복숭아 빛깔의 볼터치를 한, 어린애같은 아이들이 줄과 열을 맞추어 군무를 추는, 귀엽고 깜찍한 표정과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나른한 포즈를 취하는, 그런 여자 가수는 그때만 해도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물론 빨간 입술과 짙은 눈화장을 한, 미소년 같은 느낌의 남자 아이돌도 없었다. 90년대의 미소년은, 양준일이나 서지원처럼, 전략적(?)으로 꾸며지고 짜맞춘 듯한 미소년이 아니라, 자기 색깔 그대로의 개성있는 미소년이었다.


중학교 3학년이나 고1 정도에 데뷔했던 가수 박지윤도, 세미 정장같은 옷을 입고,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13살에 데뷔한 보아도, 늘 파워풀한 댄스 실력이라던가, 뛰어난 가창력이라던가, 뭐 이런 부분을 부각시키느라 바빴지, 요즘 나오는 여자 가수들처럼(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미묘한 성적대상화 느낌은 전혀 없었다. 어린 나이로 데뷔하는 가수들도 성숙한 느낌을 풍겼었다.


가사도, 자기만의 스토리 같은 것들이 있었다. 아이돌처럼 여겨지는 쿨의 노래도, 너무 좋은 발라드 곡들이 많다.


'두 눈 가득 베는 여름빛 무작정 나는 차를 몰아 바람 속에 섞인 너의 향길 지워

떠나가 어디든 지도엔 없는 길을 따라

흙바람 불어 두 눈을 가려도

차바퀸 계속 덜컹거리고 난 그때마다 흔들리게 돼

다시 땀은 비오듯 추억되어 흐르지'


쿨의 'One summer drive'라는 노래의 가사이다. 좋은 노래가 너무 많지만,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노래의 가사조차 이렇게 서정적이다.


개인적으로 쿨 노래를 들으면, 중학교 시절이 자동으로 떠오른다. 삐삐 음성사서함 인사말(?) 녹음 부분에 쿨 노래를 많이들 넣었었다. 학원 쉬는 시간이 되면 삐삐 음성메세지를 확인하러 공중전화 앞에 길게 줄을 서던 중학생들. 그 줄 속에 서 있던 단발머리의 나와 친구들. 그 설레이던 여름 밤의 공기. 쉬는 시간이 끝날까봐 조마조마하던 그때의 기분.


나는 옛날 사람이라서 그런지, 유튜브를 도대체 무슨 재미로 보는지 몰랐었다. 글로 빨리 읽어버리는게 편하고, 어느 세월에 유투브를 시청하고 있는지 너무 갑갑한 기분이었다. 썸네일만 보고 눌렀다가 의외로 부실한 정보에 실망한 적도 많았다.


그런데 90년대 가요무대를 보는 것은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ㅎㅎ 뭔가 그 촌스럽고, 어설프면서도, 날 것 그대로의 지유분방한 춤을 보는 것이 너무 재밌었다. 마흔살 아줌마가 되어서 그때의 무대를 보니, 다시 10대 중학생 시절의 설레던 마음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사실 마냥 재밌다기 보다는... 조금은 슬프고, 조금은 복잡미묘한 감정이었다. 아, 젊음은 정말 찬란한 거구나. 나 뿐만이 아니라, 가수들도 늙는구나. 이 때는 노래하는 목소리마저, 그 얼굴만큼이나 애띠고 청초하다. 그래서 더 애달프게 느껴졌다. 왜 한창 꽃피던 시절은 이렇게도 짧고, 무심히 흘러가 버리는 것인지.


무심코 짓는 표정과, 청아한 노래와 미소 하나에도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던 그 멋졌던 가수들. 아름다웠던 노래들, 환호하던 우리들은, 이제 모두 중년의 나이로 접어들었다. 그 세월의 무게가, 갑자기 내 가슴을 묵직하게 때리는 느낌이었다.


이때는 모두가 젊었고, 이 모든 것들이 영원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젊음의 시간이라는 돈을, 저축할 수도 없는 그 돈을, 너도 나도 아낌없이 펑펑 써버리는 느낌이었다. 귀한 줄도 몰랐고, 그 가치가 얼마나 되는 줄도 몰랐다. 그걸 알면 젊음이 아니니까. 그걸 모르는 것이 젊음의 무모함이고, 그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자 사치이고, 순수함이다.


시간이 너무 안가서 괴로워 했었고, 아무 약속도 없으면서 설레는 마음과 부푼 기대로 길거리를 돌아다니던 시절이었다. 함께 이어폰을 한쪽 씩 나누어 끼고, 카세트 테이프를 늘어지게 듣고, 공테이프에 좋아하는 노래를 녹음해서 선물해주던 시절, 너도 나도 라디오에서 밤마다 '별밤'을 듣던 시절. 핸드폰도, SNS도, 셀카같은 것들도 없고, 기껏해야 손거울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앞머리를 한껏 세우려고 애쓰던 시절. 마스크나 온라인 수업 따위는, 전혀 몰랐던 시절.


그때가 문득 그리워진다. 조금씩 부족한 듯 할때가, 어쩌면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요즘 들어서 생각해보게 된다. 편해지는 것이 과연 좋기만 한 걸까. 더 편해지고, 더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그 이점을 누리고 사는 인간의 감성은, 그만큼의 속도로 변하지 못하고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이 역시 '나 때는 말이야~' 같은 감성이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신비함과 낭만이 남아있었던 시절이 90년대였던 것 같다. 너무 사적인 정보까지도 낱낱이 모든 것을 공유하고 보여주려고 하는 뉴스나 매체들, 유투버들이나, 인스타 같은 것들을 볼 때, 그런 피로감을 많이 느낀다.


더 이상 모르고 싶어도, 알고 싶지 않아도, 알 수 밖에 없는 정보들이 공해처럼 사방에 퍼져있는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는 피로감. 그럴 때마다, 내가 학창시절에 누렸던 90년대가 종종 그리워진다.


조금은 가림막(?)같은 것이 있었던 시절이었고, 조금은 서로에게 '사적인' 공간이 있었던 때였던 것 같다. 그래서 조금은 서로에게 더 조심스러워 하고, 예의를 차리고, 좀더 천천히 친해지고 천천히 멀어졌었던 것 같다. 요즘 시선으로 보면 '쿨'하지 못하고 질척이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핸드폰으로 바로 바로 연락되고, 쉽게 만날 수 있게 되면서, 90년대식 '낭만'은 확실히 사라진 것 같다. 귀찮게 메시지 확인 하나에도 줄서서 기다려야 하고, 바로 바로 약속을 잡지 못하거나, 시간이 어긋나서 길에서 기다려야 하는 것들이, 지나고보니 꼭 불편하고 촌스러웠던 것만은 아니었다. 지나간 과거라 미화된 것일지언정, 더 좋았던 부분도 분명 있었다.


지금의 2020년도, 2040년 쯤에는 이렇게 반추하게 될까? 그래도 뒤돌아보면 그때가 참 좋았다고.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다니고, 집에서 자가격리를 하던, 그렇게 촌스럽고 낭만적이던 시절이 있었다고. 언젠가 그렇게 추억하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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