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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 Feb 10. 2020

피할 수 없다면, Just do it.

그냥 하다보면 즐길 수 있는 날도 온다

작년 겨울에 김동률 콘서트를 다녀왔다. 전람회 시절부터, 거의 25년 가까이 꾸준히 그의 팬이었던 나는 공연 내내 정말 행복했다. 라이브를 들을 때만 느낄 수 있는 감동은 정말 다르구나, 새삼 느끼면서.



한 명의 대중가수를 20년 넘게 좋아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앨범을 꾸준히 내고, 변치 않으면서도 조금은 변화하고 진보한 모습으로 음악 활동을 꾸준히 하는 것도 쉽지 않고, 팬으로서 실망하지 않고 꾸준히 누군가의 노래를 좋아하는 일도 그렇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좋아하던 가수의 공연을, 마흔이 다 된 시점에서 보니, 마냥 감동에 젖어 좋아하기만 했던 예전과는 달리,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와, 정말 대단하다.. 어떻게 자기 관리를 저렇게 철저하게 할 수 있을까? 저 이면에 얼마나 많은 노력과 고생이 들어갔을까? 어떻게 20년 넘게 자기 일을 저렇게 프로답게 해올 수 있었을까?


4년 전에도 그의 공연을 간 적이 있었는데, 이번 공연이 훨씬 더 좋았다. 세종문화회관이라는 공간도 좋았고, 대중성보다는 그의 개성과 취향을 더 많이 반영한 공연이라, 평소에 라이브로 듣지 못했던 노래를 들을 수 있어서 오래된 팬으로서는 너무나 좋았다.


저 사람은 정말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그리고 엄청나게 노력하는 사람이구나. 그리고 이제는 이미 어느 경지(!)에 충분히 올라가있구나. 저 깐깐함, 준비성, 치열한 고민의 흔적들.. 너무 멋있다고 생각했다.


본업에 충실한 사람은 세월이 흐를수록 빛을 발하는 것 같다. 별로 tv에 얼굴을 비추지 않아도, 노래가 워낙 좋으니까 이렇게 오랫동안, 목소리로 감동을 주는 그를 공연장에서 볼 수 있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정말 많다. 하지만 자기만의 색깔과 음색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가수가 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다른 모든 분야들도 그렇다.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은 정말 많지만, 나만의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잘 '읽히는' 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얼마 전에 어떤 분이 나에게 정말 좋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이 일을 '밥벌이'로 하려고 마음 먹었다면, 적어도 '비장함'을 가지고 달려들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저 좋아서 취미처럼 하는 거라면 또 모르겠지만, 생계가 걸린 직업으로 임할거라면, 그저 설렁설렁 취미처럼 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우리는 '프로'가 되려고 지금 여기 모여서 이렇게 공부하고, 노력하고 있는거니까. '남다른' 노력과 고생은 필연적이라고. 그걸 먼저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셨다.


프로가 아름다운 이유는, 아무나 프로가 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프로를 보면 놀라움, 부러움, 존경이 어린 감탄이 나오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돈을 지불하고, 프로가 가진 그 전문성을 구입한다.


그런데 프로가 되어 자신의 전문성으로 돈을 벌고, 사람들의 찬사를 받고, 반짝반짝 빛이 나는 순간은 눈에 참 잘 보이는데,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별로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 과정은, 하나도 재밌거나 멋지지 않기 때문이다. 지루하고, 반복적이고, 지난한 과정일 뿐이다. 수많은 실패와 연습과 반복을 거치는 수련의 기간은, 왜 그렇게 길고 고생스럽기만 할까?


내가 지금 그 수련의 기간에 있기 때문에, 요즘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내가 좋아서 선택한 일이지만, 과연 내가 남의 돈을 당당하게 받고 '직업'으로써 이 일을 잘 해낼만한 실력을 갖추었을까? 아직은 자신있게 그렇다, 라고 대답하기 힘들 것 같다. 좀더 노력해야 하고, 좀더 연습해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가 제일 잘 알고 있다.


그래도 가끔 지칠 때가 있다. 그래서 갖은 핑계를 대며 숨어버리고 싶다. 몸이 아플 때, 육아로 지칠 때, 생각만큼 내 실력이 오르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을 때, 대체 '전문가'가 되는 날이 오기는 하는걸까, 의구심이 드는 날들도 있다.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느끼는 것은, 나의 경쟁자는 오직 나 자신 뿐이라는 생각이다. 남들과의 비교도 점점 하지 않게 된다. 결국은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것을, 스스로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그저 영어가 좋아서, 취미처럼 영어를 하다가, 외국계 회사를 오래 다니다가, 결국은 통번역대학원까지 왔다. 솔직히 대학원 공부는 정말 재밌지만, 마냥 즐길 수는 없다. 어떤 면이, 얼마나 부족한지 더 자세히 알게 되니, 점점 더 두려운 마음도 든다. 내가 원하는 '전문가'가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여야 할지, 얼마나 현실의 벽에 부딪치고, 실망하고, 고생해야 할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라는 말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정말 말도 안되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거꾸로 된 이야기인 것 같다.  '피할 수 없다는걸 받아들이고, 그냥 해라' 가 좀더 현실적인 얘기일 것이다. 그러다보면 조금씩 즐길 수 있는 날도 온다. 솔직히, 노력하는 과정을 진심으로 즐기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물론 그 과정에서 나름 즐거움과 보람을 느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참 구질구질(?)하고, 있는 힘껏 발버둥치고, 그래도 안되서 좌절하고 막 속상해하다가, 그래도 다시 일어서서 힘을 내보는, 그런 지난한 과정의 연속일 뿐이다. 적어도 난 그랬다. ㅎㅎ


요즘 체력을 위해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노력하는 과정은 운동과 정말 비슷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웨이트 운동을 하는 순간은 참 고통스럽고 힘든데, 하고 나면 정말 뿌듯하다. 이제는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점점 더 즐기게 되서, 운동하고 나서 약간 근육통으로 몸이 뻐근하게 아파오지 않으면, '내가 어제 운동을 열심히 안했나?' 싶어서 찜찜한 기분까지 든다.


반대로 다음날 온몸이 뻐근하게 아파오면, 어제 제대로 운동했구나 싶어서 뿌듯하고 기분이 좋다. 아마도 운동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공부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일단 책상 앞에 앉기까지는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일단 집중하는 상태에 들어가고 나면, 다른 모든 고통과 번뇌(?)는 잊어버리고, 딱 내가 하는 공부에만 몰두하게 된다. 그 순간만큼은 무척 행복하다. 이렇게 해서 실력이 오를까?  내가 하는 방법이 맞을까? 왜 이렇게 더디게 오르는 것 같을까? 하는 성급함과 의구심은 다 사라진다.


웨이트의 중량을 늘리듯, 이런 식으로 공부하는 시간도, 노력하는 시간도 늘려가는 중이다. 몸과 마음이 힘들고 고생스럽다면, '나 지금 제대로 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면 된다. 내가 이렇게 제대로 하고 있다고 자랑하는 글이 아니라, ㅎㅎ 제발 이렇게 좀 계속 하자고, 스스로 다잡기 위해서 쓰는 글에 가깝다.


사실 마음껏 노력할 수 있는 환경과 여건만 갖춰져 있어도 좋은 출발선에 서 있는 것이다. 생업도 해야 하고, 아이도 키워야 하고, 다른 여러가지 일들에 밀리다보면 나 자신을 위해 노력할 시간은 영원히 오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적당히 내려놓는 일도 필요하다. 이 일, 저 일에 마음이 계속 뺏기다 보면, 잡념이 들 수 밖에 없고, 그러다보면 노력할만한 시간도, 체력도 남아나지 않게 된다.


특히 내가 하고 있는 '언어' 공부는 더욱 Just do it, 에 해당되는 일인 것 같다. 많이 노출될수록, 잘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들일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과 노력의 양이 더욱 중요해진다.


웨이트를 통해 내 근육과 체력이 단련되듯이, 언어 감각과 실력도 성큼 성큼 늘어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과정은 어쩔 수 없이 고통스럽고, 힘든 과정이라는 것을 그냥 받아들이고, 꾸역꾸역 느리게 나아가더라도 꾸준히 매달릴 수 있는 마음의 근력을 키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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