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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 Sep 30. 2020

코로나, 그리고 이미 건너버린 강에 대하여

일단 강을 건너고 나면, 모든 것이 달라져버린다. 

올해 초에 코로나가 시작될 때만 해도, 이렇게 장기화될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을 것이다. 코로나가 삶의 많은 부분을 바꾸어 놓았고, 이제 코로나가 없던 시절로 되돌아가기엔 힘들겠다고 느껴지는 부분들도 이미 꽤 많아져 버렸다. 


먼 미래에, 코로나보다 더 최악의 그 무엇인가가 나타나서, '그래도 2020년 그때가 훨씬 더 좋았었지' 라고 생각하는 때가 오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코로나와 비교할 건 아니지만 처음으로 미세먼지라는 단어를 알게 되고, 한창 미세먼지가 심해져서 마스크를 끼고 다닐 때가 차라리 나았었다고 생각하는 현실을 이미 살고 있다. 이런 세상에 아이를 키우는 것이, 참 미안하고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 엄마로서 그런 부분이 많이 걱정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아이를 통해 많이 배운다. '마스크도 못 벗고, 자유롭게 밖에서 뛰어 놀지도 못해서 불쌍하다' 라고 생각하는건 어른들의 시각일 뿐이다. 불쌍하고 안타까운 현실은 맞지만,  자신에 대한 연민과 걱정으로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은 없다. 


어른과는 달리, 상황 때문에 하지 못하는 일들로 괴로워하며 시간을 허비하는 아이는 없다. 잠깐 실망하긴 해도, 금새 잊어버리고 다른 놀꺼리를 찾아 나선다. 아이는 오직 이 순간, 현재만을 살 뿐이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서 놀고, 지금 재밌고 신나면 그저 행복해하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사부작거릴 일들을 부지런히 찾아나선다. 


나는 원래 걱정이 많고 내적인 불안감이 높은 인간이라서 그런지, 내 아이를 보면 종종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는다. 밖에도 못 나가고 얼마나 답답할까, 안됐다, 라고 생각하다가도, 오히려 엄마랑 꼭 붙어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 행복해하는 천진한 아이를 보고 있으면, 나도 마음이 한결 밝아진다. 


어떻게 보면 코로나로 인해, 집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진 것 같기도 하다. 매일 들르던 커피숍을 안가고 집에서 커피를 만들어 먹고, 자주 가던 키즈카페에 못가는 대신 집에서 아이랑 몸으로 놀아주고, 주말마다 외식을 못하는 대신 못하는 솜씨로나마 집밥을 해먹는다. 옷이나 신발을 안사게 되서 돈이 굳으니, 그 돈으로 책을 더 사고, 더 좋은 책상과 의자를 구입해서 서재를 꾸민다. 


코로나가 끝나도 지금의 이 습관들이 없어질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이미 집에서 만들어 먹는 커피가 더 맛있어졌고, 집에서 공부하고 책 읽는 시간이 더 편안해져버렸다. 꼭 필요하지 않아도 오다가다 습관처럼 사 들이던 쓸데없는 옷들도 줄었고, 남들 다 하는데 맨 얼굴은 좀 그렇지, 라는 생각으로 겨우 바르고 다니던 립스틱이나 비비크림 같은 것들도 더 이상 필요없어지니 편하다.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여러 지인 모임들도, 막상 없어지니 속 편한 구석도 있다. 거절하기 미안해서 억지로 참석하던 모임들, 의미없는 대화들, 다녀오면 피곤하고 공허해지던 마음. 그런 것들이 없어지니 마음이 평화롭다.


우리는 우리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어떤 '강'을 건너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면에 집중하는 인생으로, 바깥 활동이나 여행을 줄이고, 가족과 함께 보내는 생활로, 내 '집', 내 '공간'과 더 가까워지고 친해지는 삶의 방식으로 향해가고 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누구나 작고 큰 변화를 겪어가며, 강을 건너고 있다. 


내가 건너본 가장 돌이킬 수 없는, 가장 깊고 큰 '강'은, 역시 출산이었다. 결혼은 강을 건너는 느낌까진 아니었지만,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부터는 확실히 어떤 강을 건너왔다고 느꼈다. 아, 나는 이제 절대로 이 아이를 모르던 시절로는 돌아가고 싶지도 않고, 돌아갈 수도 없겠구나.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넓이와 깊이의 사랑, 그리고 차원이 다른 무거운 책임감에 눈을 뜬 부모가 되고나니, 남편도 나도, 갑자기 '어른'이 되어버렸다. 지켜야할 가장 소중한 존재가 생겨버린 사람들만이 가진, 그런 눈빛과 얼굴과 멘탈이 되어버렸다. 


나 개인적으로는 직장생활과 대학원도, 내가 힘들게 건너 온 하나의 '강'이었다. 나 자신이 태어나서 가장 치열하게 살아본 경험, 경제적으로 완전히 독립해봤던 경험, 치열하게 무언가를 했지만 잘 안되서 좌절해보고, 실패해봤던 경험, 그런 와중에도 소소하게 작은 성취를 이뤄봤던 경험들은, 정말 소중한 자산이다. 그걸 몰랐던 이전의 세계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 


강을 건너기 전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여기에 서서 강 건너편을 바라보았을 때는 참 아름답고 좋아보였는데, 막상 강을 건너보니 생각보다 그렇게 좋은 곳이 아닐 수도 있다. 가까이서 보니 쓰레기도 많고, 악취도 나고, 그렇게 아름다운 곳은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힘들게 강을 건너온 시간이 의미가 없는 시간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이미 강을 건너본 경험을 통해,  다른 강을 건널 수 있는 체력과 용기가 생기기 때문이다. 


대학원 공부도 비슷하다. 난 내가 공부를 상당히 잘하는 줄 알았다. 지금도 잘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내가 어떤 부분이 약한지, 무엇을 모르는지는 아는 정도가 되었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공부의 재미를 느꼈다. 마흔이 되어서야, 공부가 정말 재밌다는 것을 느끼며, 조금씩 강을 건너고 있는 중이다.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는, 대학원 2년 뭐, 그냥 하면 되지, 이렇게 생각했었다. 석사 학위라는 것 하나,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막상 발을 담가보니, 생각보다 공부는 절대적으로 나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이었다. 일정량의 시간 확보도 필요하고, 체력과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했다. 공부 자체가 힘들다기 보다는, 나 자신을 절제하며 일정 수준 이상의 컨디션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생활의 많은 부분들이, 가지치듯이 잘려나갔다. 가끔은 시간이 너무 없고 버겁단 생각이 들어도, 어떤 강을 건너야 하나 고민만 하며 시간만 흘려보낼 때보다는, 몰입의 밀도가 더 높은 지금이 더 행복하단 생각이 든다. 


직장다닐 때 나는 2시간도 책상에 앉아있기 힘들어했다. 30분에 한번씩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집중하기 힘들어 했었다. 그랬던 나에게도, 스마트폰보다 공부가 훨씬 더 재미있게 느껴지는 날이 오기도 한다. 와,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건 절대로 못하겠다 싶은 과목이나 분야도, 막상 해야하는 상황이 오니 어느새 하고 있다. 심지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재밌고, 흥미롭기까지 하다. 


지금 하는 이 일이, 이 공부가 나를 어떤 곳으로 이끌지는 나 자신도 잘 모르겠다. 코로나로 인해 앞으로의 시대가 어떻게 변할지, 앞으로 또 어떤 무서운 바이러스가 또 올지 아무도 모르는 것처럼. 어쨌든 우리는 크고 작은 강에 이미 발을 담그고 있고, 그 강을 건너고 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현재에,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다. 오늘 내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어쨌든 그냥 해버리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힘들게 건너던 그 강이, 내 뒤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또 다른 강을 볼 수 있는 지점에 도달해 있겠지. 


인생이라는 여정 속에서, 강가에 편히 앉아 이미 강 건너편에 있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쳐다볼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그 강에 뛰어드는 사람이고 싶다. 남들보다 느려도, 한발 한발, 나만의 속도대로 건너가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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