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에 똥묻히긴 싫은데, 가만히 있자니 내가 똥이 될 것 같다.
더러운 제목을 붙여서 죄송하다. 하지만 이만큼 착 와닿고 적절한 다른 표현을 찾기가 힘들었다.
살다보면 의도치 않게, 다른 사람이 던진 똥(=진상)을 맞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되도록 피하는게 답이지만, 피하지 못하는 상황이 많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생계가 걸린 직장이라던지, 나에게 너무 중요한 인간관계 그룹의 한 명이 진상이라던지, 어쨌든 피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똥은 대부분 미리 냄새를 풍긴다. 아, 저 사람이 언젠가 나에게 똥을 던질 것 같은 쎄한 느낌. 그것도 내 뒤에서. 무방비의 상태에 있을 때 던질 것 같은.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 온다.
다른 글에서 언급했듯이, 나는 초 예민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걸 특히 잘 감지하는 편이다. 그래서 미리 거리를 둔다. 직장생활 연차가 쌓이고 나이가 마흔이 넘어가면, 나름대로 적립된 데이터가 많아져서 더욱 그 판단이 빨라진다. 나쁘게 말하면 고루한 편견이고, 좋게 말하면 '미리 거리를 두어서 나 자신이 상처받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함이다.
똥을 던진다고 너무 노골적으로 표현해서 좀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선의 표현일 뿐이니 이해해주길 바란다. 나 역시 다른 누군가에겐 똥일 것이 분명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이 세상에, 그 누구에게도 완벽하게 똥이 아닌 사람이 얼마나 많겠는가.
어쨌든 누군가 나를 향해 던진 똥을 정확히 맞았을 때, 나처럼 예민하고 소심한 부류의 사람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상대방이 던진 똥을 그대로 돌려주는 방법도 있을테고, 웃으며 우아하게, 공격인듯 아닌듯 비꼬며 허를 찌르는 방법도 있을 테고, 정색하며 정면 대응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나 개인적으로 가장 좋은 방법은, 그저 '내 일상에 충실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나는 나대로 그저 '잘 살아가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무시하기', 또는 '아무런 대응하지 않기'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내 마음 가짐의 문제이다. 겉으로 보여지는 일면은 어떻게 보면, 아주 부차적인 부분이기 떄문이다.
솔직히 똥을 맞았는데, 그냥 '무시'가 될까? 강철멘탈과 무심함을 가진 사람이라면 가능하겠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일단 그런 일을 무방비로 당하고 나면, 목소리가 떨리고, 손에 땀이 차며, 호흡이 가빠진다. 그리고 한동안은 그 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머리 속에서 계속 재생이 되는 것이다.
나약한 인간일 뿐이니까, 어쩔 수 없다. 자존심은 세서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집에 와서 혼자 눈물을 쏟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죽어도 상대방이 원하는 반응 - 당황하거나, 약해지거나, 놀라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센척(!)하며 버틸 뿐이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부터인데, 그 '똥 맞은' 사건에 계속 매몰되어 있어서는 안된다. 그런 건 내 자존심이 허락할 수 없다, 라는 태도를 갖고, 나에게 중요하고 내 생계가 걸린 일, 내 발전을 위한 일에 평소와 같이 몰두하는 것이 가장 좋다.
물론 평정심을 잃은 상태이기 때문에 쉽지 않지만, 나의 경우 그런 '똥' 같은 일 때문에 나 자신이 평정심을 잃었다는 사실 조차 너무 화가 나고 자존심이 상해서, 일부러 더욱 부지런하고 치열하게 일상을 살아갔다. 육체가 바쁘게 움직이면, 정신도 어느새 그에 동화되어 따라가게 되어 있다.
그 사람이 던진 그 공격 자체 때문이 아니라, 내 인생에 별 중요하지도 않은 이의 그 시덥지 않은 공격(?) 때문에, 나의 귀중한 하루 하루의 일과가 지장받고 있다는 사실에 불쾌해 하고 분노해야 한다. 언제 어느 상황에서든, 나에게 가장 소중한 건 나 자신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직장이라면, 날 괴롭히는 소수의 사람들 때문에 나에게 더 중요한 커리어라든지, 돈(가장 중요한!)이라던지, 직장에서의 평판 등에 소홀해져선 안된다. 그들은 짖고 까불도록 내버려 두고, 나는 나대로 열심히 업무에 몰두하고 자기계발도 열심히 하며, 그들과 비슷한 레벨에서 벗어날 궁리를 해야한다.
'잘 사는 것이 가장 큰 복수'라는 말은 진리이다. 사실 내가 누군가의 똥 때문에 괴로워할 때는, 그 사람과 비슷한 수준에 머물 때이다. 내가 월등히 잘 되고, 목표한 바를 이루고, 너무나 만족하며 잘 살고 있으면, 누가 나에게 똥을 던진 것 조차 모르고 지나갈 것이다.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에는 다른 사람의 아주 조그만 말 한마디에도 부르르 화가 나고, 꼬아서 듣고, 괜히 의미를 곱씹어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남이 던진 똥이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실은 내 마음 상태가 너무나 불안정하고 자신감이 없어지고, 조바심내고 있는 상태는 아닌지, 그걸 먼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어쨌든 그런 일을 당했을 때, 당장은 너무 불쾌하고, 억울하고, 욕을 한 바가지 되돌려주고 싶어도, 내 손에 똥을 묻히진 말자. 똑같은 사람이 될 뿐이다.
어차피 그 똥은, 아주 높은 확률로 다른 곳에서도 똥일 가능성이 크다. 모두가 은연 중에 알고는 있지만, 모른척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저 사람이 똥이라고, 굳이 내가 나서서 욕할 필요도 없다. 머지 않아 다른 사람의 입에서 욕이 터져나올 때, 미소지으며 그저 들어주면 된다.
내가 똑같이 대응하면, 제 3자의 눈에는 같은 똥덩어리들(?)이 싸우는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남들은 내 일에 그다지 큰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가십거리로, '대박 ㅋㅋㅋ'거리며 오르내릴 뿐이다.
남들은 자신들이 평소에 겪었던 그 사람의 인상만을 기억할 것이다. '아 그 사람, 좀 차갑고 사무적이긴 해도 업무는 깔끔하게 하던데... 내가 알기론 약속 안지킬 사람이 아닌데... 그럴 사람이 아닌데... ' 등등의 평가를 받을 정도로 내가 신뢰를 쌓아놓은 상태라면, 문제될 것이 아무것도 없다.
나도 어렸을 때는, 똑같이 맞대응하지 않으면 날 무시하지 않을까? 호구로 보고 더 공격하지 않을까? 라는 걱정을 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행동하는 것 역시 상대방의 인성이 나쁜 것이지, 내 문제는 아니다. 나는 나대로, 누구에게든 똑같이 공평하게 친절하고, 사무적이고, 예의바른 사람으로 나 자신을 포지셔닝하면 된다.
만약 우아하게 무대응했는데 상대방이 더 심하게 공격해온다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대신 나서서 욕해줄 것이다. 만약 아무도 당신의 편에 동조해주지 않는다면, 본인의 평판을 먼저 되돌아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여자들은 보통 너무나 착하고 공감능력이 높아서, 누군가 뭐라고 하면 꼭 그에 대한 대답을 해줘야만 한다는 강박같은 것이 있다. 대답을 안해주면 상대방이 무안해할까봐 더 그렇다. 하지만 모든 질문에 답해줄 필요는 없다. 때로는 침묵이나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편이 훨씬 좋다. 나의 인격에 상처를 주고, 흠집을 내려고 작정한 사람들의 질문에는 더더욱 그렇다. 사무적인 친절함. 그리고 단호함. 딱 거기까지만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