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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 Nov 30. 2020

결혼에 대하여  

결혼이 사랑을 박제시켜 줄 수 있을까

연애의 끝은 이별 아니면 결혼이란 말이 있다. 개인적으로 이 말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어쨌든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내 생각엔, 연애는 그냥 연애 그 자체로 완성이 아닐까 싶다. 꼭 결혼으로 이어지지 않아도, 서로 이유없이 좋아하고 사랑했던 경험은 그 자체로 충분히 소중한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이별까지도 연애의 한 과정이다. 그 사람에 대해 쏟았던 내 감정, 내 사랑을 정리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에 대한 마음이 칼로 자르듯 갑자기 깔끔하게 정리될 수는 없기 때문에, 이별 후 마음 아파하고 무기력해지는 시간도 어찌보면 그 연애가 서서히 저물어가는 한 과정인 것 같다.


결혼을 하든 안 하든, 사랑이라는 감정은 변한다. 결혼을 했다고 해서 사랑을 그대로 박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사랑이 결실을 맺지 않은 것도 아니다.


나는 이제 겨우 결혼 5년차 이지만, 부부는 정말 특별한 관계인 것 같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으면서, 평생을 함께할 반려자가 되고, 피가 섞인 가족 보다도 더 가까운 사이가 되기 때문이다.


결혼해서 가장 좋았던 점은, 더 이상 연애에 시간을 소모(?)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었다. 30대 중후반쯤 되니, 남자를 만나고 서로 알아가고 연애를 하고 그런 과정들이 너무 지겨웠다. ㅎㅎ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데, 그렇다고 사랑이 싫어질 정도로 상처를 받았다거나 비혼주의자는 아니었지만, 연애에 들어가는 시간과 감정 소모가 어느 순간 너무 아깝고 버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도 바쁘고 할 일도 너무 많은데, 언제까지 이렇게 연애 놀음(?) 따위를 하고 있어야 하나, 뭐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이젠 다 뻔하고 진부해서,  더 이상 새롭거나 내 마음을 움직이는 사랑은 없을 거라고 생각할 때쯤, 남편을 만났다. 이상하게 너무나 푸근(?)하고 편안했다. 남자로서의 호감과 설레임을 주면서도,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편안했다.


아마도 나 자신을 그대로 내 보여도 이 사람은 좋아해줄 것이다, 라는 느낌을 충분히 받았던 것 같다. 남편은 처음부터 밀당같은 것은 전혀 없었고, 정말 투명하게 진심을 다 내 보이는 사람이었다. 상대방을 안심(!)시키는 사람이었다. 규칙적인 연락과 배려심, 늘 예상 가능한 생활 패턴, 평범하고 상식적이면서도 유머감각이 있었다. 같이 있으면 많이 웃었고, 무엇보다도 대화를 많이 했다.


결혼해서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육아나 집안일 분배 문제로 싸울 때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서로를 배려하고 좋아하는 마음은 여전하다.


결혼 후에 느끼는 '사랑'이란 감정은, 살면서 처음 느끼는 생소한 감정이었다. 이런 것도 사랑일 수 있구나, 싶은 감정이랄까. 서로에 대해 두근거리고 설레이는 감정은 없지만, 이 사람이 영원히 '내 편'이라는 믿음과 신뢰가 있다. 함께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로서 성장하고, 그 모든 행복하고도 힘들었던 시간을 켜켜이 함께 쌓아왔다는 든든한 '동지애'가 그 밑바탕에는 있다. 인생의 '베프'같은 느낌이랄까.


나도 한때는 결혼을 사랑이나 연애의 끝이나 결실 정도로 여겼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완전히 다음 단계로 넘어가서 다시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결혼 자체가 연애 시절의 마음을 그대로, 변함없이 박제해주지는 않았다.


오히려 결혼 생활에서는 연애 때보다 훨씬, 몇 배로 노력해야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것 같다. 오히려 너무 '내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편하게 대하는 일이, 내 사람을 서운하게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도 무언가에 몰두하거나 집중하면 그 외에 일들은 까맣게 잊어버리는 성격이라서, 정작 나에게 소중한 가족, 가까운 사람들을 외롭게 하거나 서운하게 한 적이 많았다. 남편에게도 자주 그랬던 것 같다.


남편은 무던한 편이라 괜찮은 줄 알았는데, 그도 가끔은 힘들어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좀 놀랐고, 나의 무심함을 반성했다. 말을 안해도 그는 다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그런 생각 또한 나의 자만이었다.


그래서 나도 고맙고 미안하다는 표현을 더 많이 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어도, 곧바로 말하지 않고 왠만한 것은 그냥 넘기려고 노력한다.


남편이 설거지를 하고 나면 사방이 물바다가 되어도, 먼지가 풀풀 나는 후리스를 속옷 빨래통에 함께 넣어도, 랩도 씌우지 않은 채 음식을 그대로 냉장고에 넣으려고 해도, 그냥 그러려니 한다. ㅎㅎ 사실 그렇게 큰 일도 아니다.


본인은 열심히 땀 흘려가며 집안일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이러니 저러니 잔소리하면 싫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나도 같이 집안일하고 있을 때가 아니면, 입대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오히려 부부 사이는 너무 가깝기 때문에, 아주 작고 소소한 것에 마음 상하기도 하고, 반대로 그렇게 작고 사소한 것들에 감동 받기도 한다.


나는 남편이 비싼 선물을 해주거나 특별한 이벤트를 해주는 것보다, 마트에 갔을 때 내가 늘 먹는 커피나 과자 브랜드를 보면, "이거 니나가 좋아하는 건데", 하고 자동으로 집어서 카트에 넣는 모습이 더 좋다.


퇴근하고 돌아와 하루종일 아이에게 시달려 지쳐있는 내 얼굴을 보고, 말없이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나 마트로 놀러가 주는 뒷모습을 보며 고마움을 느낀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서로의 모난 부분이 깎여가면서, 둥글 둥글하게 부부로 맞춰 살아가게 되는 것 같다. 그렇게 서로 나이들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조금씩 연인에서 부부로,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 인생의 동반자로, 그렇게 변해간다.


그가 늙어가는 모습을 내가 보고, 내가 늙어가는 모습을 그가 봐준다는 점이 참 좋다. 함께 아이를 키우며 그 모든 순간을 공유하고 함께 나이 들어갈 수 있어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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