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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 Dec 31. 2020

사소하지 않은 하루

우리의 진짜 일상은 무엇이었을까 

언젠가부터 크리스마스도, 연말이나 새해도, 내 생일 조차도 심드렁하게 느껴진다. 


물론 아이가 있으니 트리도 꾸미고, 특별한 저녁만찬과 선물도 준비하며 분위기를 내보지만, 만약 나 혼자였다면 그냥 좋아하는 와인과 함께 오래된 영화를 보면서 조용히 보냈을 것이다.


크리스마스 자체가 심드렁해져서가 아니라, 반복적이고 평범한 일상의 하루 하루가 더 소중하고, 행복해졌기 때문이다.


'별일 없이' 사는 하루 하루, 매일 반복되는 평범한 하루의 일과를 보내는 일은 정말 소중하다. 규칙적인 생활을 통해 몸과 마음이 건강해질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안정감과 내면의 평화를 준다. 


마치 적금을 붓듯 매일 매일 정성들여 보내는 하루 일과는, 내면에 단단한 중심을 만들어 준다. 그런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하루 하루를 매일 쌓으며 사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특유의 '내공'이 느껴진다. 


어렸을 때는 특별한 이벤트, 어디론가 떠나는 여행이나 휴가를 기다리며 살았는데, 지금은 매일 매일 조금씩 반복하는 일, 조금씩 발전해 나가며 성취감을 느끼는 일이 훨씬 재미있다. 어제 읽다 만 책을 펼쳐서 다시 계속 읽는 일, 어제 잘 풀리지 않던 글을 다시 쓰는 일, 하던 공부를 계속 조금씩 하는 일...


반복은 어렵지만 쉽다. 지루하지만 재밌다. 지루한 반복과 연습 속에서 흐름을 타게 되면, 어느 순간 '반짝' 하는 순간이 온다. 그것은 성취감일 수도 있고, 보람일 수도 있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번뜩 떠오르는 순간일 수도 있다. 그런 게 진짜 재미다. 오래 가고, 진짜 '내 것'으로 남는 재미. 


매일 아침 아이의 아침을 차려주고, 따뜻하고 연한 커피를 한잔 마시고, 과일을 챙겨 먹고,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키며 하루를 시작한다. 맑은 날도 있고, 흐린 날도 있다. 몸이 개운한 날도 있고, 머리가 지끈 아파오는 날도 있다. 


기분이 어떻든 컨디션이 어떻든 간에, 변하지 않는 것은 지금 당장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씻기는 일, 놀아주는 일, 나와 내 가족이 먹고 자고 살기 위해 해야 하는 소소한 일과들이다. 


한결같은 아이의 사랑이 날 살아있게 하고, 움직이게 하고, 현실이라는 땅에 발을 붙이게 만들어 준다. 끝없는 우울과 걱정과 공허한 욕망과 상념 속을 떠돌다가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단단한 힘이다. 


코로나를 겪으며 나의 '진짜' 일상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그동안 열심히 회사를 다니고, 분주하게 사람들을 만나고, 각종 모임에 참석하러 다니느라 정작 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여유는 없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싶은지, 가만히 앉아서 들여다보기 보단, 어느 곳으로 여행을 가면 좋을까, 누구와 언제 만나야 할까에 대한 계획만 빼곡히 세우던 날들이었다. 바쁘고 치열하게 살아야만 잘 사는 것 같이 느껴졌다. 


아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하루 종일 집에서 별 것도 아닌 놀이로도 너무나 신나게 놀 수 있는 아이를 데리고, 자꾸 여기 저기 돌아다녔다. 어른(=엄마, 아빠)들도 심심하고 피곤하고 놀고 싶으니까. 나와 남편이 가고 싶은 카페, 레스토랑, 여행지로 많이도 다녔다. 


물론 아이가 볼만한 박물관이나 공연장, 키즈카페 같은 곳도 많이 다니긴 했지만, 정작 부모인 우리 스스로, 아이와 어떻게 놀아야 할지를 잘 몰랐던 것 같다. 어디가서 돈을 내고 특별한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같은 것이 있었다. 


이제까지 우리가 아이와 놀아준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보면 아이가 나름대로 참아주며(?) 우리와 놀아준 것 같기도 하다. ㅎㅎ 


운동도 헬스클럽에 가야먄 할 수 있는 건줄 알았다. 요리는 영원히 자신없을 테니, 사먹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옷장에 옷이 그득한데도, 계절마다 유행에 맞는 옷을 사고, 미용실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자기관리라고 여겼던 것 같다. 


지금은 집에서 홈트를 하고, 어떻게든 집밥을 해먹고, 매일 입는 제일 편한 옷 몇 벌로 한 계절 내내 입는다. 머리 모양이 어떤지, 피부가 어떤지, 거울을 이렇게 오랫동안 보지 않은 적도, 내 외모에 이토록 관심이 없었던 적도 처음인 것 같다. 


살면서 이렇게 오랜 시간 집 안에서만 머물러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편안한 공간이어야 할 집이, 어느 순간 잠만 자고 서둘러 밖으로 나가기 위해 정신없이 준비하고 휙 나가버리는, '임시 거처'와 같은 공간이 아니었나 싶다. 


내가 이렇게 오래 집에만 있을 수 있는 사람이구나, 라는 사실에 놀랐고, 그렇게 오래 집에만 있으면서도 전혀 답답하지 않다는 사실에는 더 놀랐다. 그 많던 연말 모임을 하나도 하지 않았는데도 전혀 허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에도 놀랐다. 


오히려 연말 모임으로 가득했던 시절, 신나고 즐겁게 떠들다 집에 오면 괜히 공허해지곤 했었다. 가족끼리 함께 여행을 가지 못하는 것은 좀 아쉽지만, 중요한 것은 특별한 '장소'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 그 자체니까. 


코로나로 참 힘든 한 해였지만, 스스로의 내면에 대해서는 더 깊게 들여다볼 수 있었던 한 해이기도 했다. 


나는 생각보다 훨씬 더 집순이 성향이고, 내향적이고, 혼자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구나. 

그동안 참 외향적인 '척' 애쓰며 살아왔구나. 

나의 내면은 정작 돌보지 못했구나. 

그렇지만 올해도 나, 정말 열심히 살았구나. 


정말 애썼다. 고생했다. 나 정말 잘 해왔다. 


나 포함 여러분 모두, 아쉽거나 후회되는 건 잊어버리고, 잘한 것만 기억하시길 바란다. 


그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의 등을, 마음으로 토닥토닥 해주며 한 해를 마무리 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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