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 쪽도 아깝지 않은 이유
친한 친구에게 남자친구, 또는 여자친구가 생겼을 때, 누구나 한번 쯤은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아, 여자(혹은 남자)가 아깝네...' '도대체 왜 저런 사람이랑 사귀지?' '내가 모르는 어떤 매력이 있는건가...?'
조금 덜 친하다면 그런 생각을 속으로만 할테고, 정말 친한 친구라면 넌지시 물어보기도 할 것이다. 나도 그런 질문을 해보기도 했고, 받아보기도 했다.
그런데 30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부터는, 아무리 친해도 입 밖으로 누가 아깝네 안 아깝네 같은 말은 잘 꺼내지 않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며 내가 내린 결론은, "사귈만 하니까 사귀더라" 였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감정은, 정말이지 그 사람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모른다. 너무나 어울리지 않아도, 내게 고통을 주는 상대라도, 심지어 가시밭길을 걸을 것이 빤히 보여도, 쉽게 이성의 눈을 감아버리게 만든다. 일단 "꽂히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니까.
그런데 우리는 왜 이렇게 가끔씩, '이상한' 연애에 빠지게 되는 걸까?
나는 아무리 친한 친구여도, 그 친구의 '연애에서의 인격'까지는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친구라는 대등한 대인관계 속에서의 인격과, 연애라는 내밀한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인격의 차이가 굉장히 큰 사람들이 있다.
'친구'란 존재는 어떻게 보면, 사회적인 완장을 다 빼놓고 만나는 관계이다. 인간으로서의 호감, 케미, 그 자체로만 이루어지는 관계이기 때문에, 나와 결이 다르다거나, 서로 충분한 인간적 호감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굳이 시간과 돈을 들여가며 만날 이유가 전혀 없는 인간 관계이다.
그런데 남녀관계는 조금 다르다. 나의 모든 신경세포가 쏠리는 감정, 인간의 가장 강렬한 감정(과 때로는 몸까지) 섞이는 것이 사랑 아닌가. 그래서 연애 관계 속에서 우리는 때때로 숨겨왔던 자신의 민낯을 드러낸다. '여자'로서의 나. '남자'로서의 나는, 회사에서 일할 때의 내 모습이나 친구들과 있을 때의 모습과는 또 다를 수 있다.
나는 그런 것들이 항상 궁금했다. 연애를 하고 있지 않을 때의 내 친구 A는 누구보다도 똑똑하고, 반짝이고, 야무진 커리어 우먼인데다 스마트하고 이해심 많은, 주로 '맏언니'같은 역할을 하는 친구인데, 왜 연애 관계 속에서는 늘 맥없이 헌신하다 헌신짝되듯 차이는, 그런 연애만 지속하는 걸까?
또 다른 친구 B는 대학교를 졸업하자 마자 화려한 커리어를 쌓으며 친구들 중 가장 높은 연봉을 받는 친구인데, 이상하게도 유부남이나 이미 애인이 있는 남자, 혹은 나이가 아주 많은 남자만 좋아한다.
친구 C 역시 자기 분야에서는 똑소리 나는 전문가이자, 친구로서도 너무나 의리있고 어른스럽고 쿨한 친구인데, 이상하게 늘 집착하는 연애를 한다. 몇 시간만 연락이 안되도 패닉 상태에 빠지고, 상대방을 의심하고 몰아붙여서 결국 지치게 만들어 버린다.
왜 일까? 왜 멋지고 어른스러운 사람이라고 해서 항상 '멋진' 연애만 하는 건 아닌걸까?
나의 경우를 돌아보면, 직장에서나 친구들 사이에서의 내 모습은 어느 정도 포장된 모습에 가까웠던 것 같다. 내 모습 중에서도 되도록이면 최상의 모습을 끌어내려고 노력했다. 그러다보니 주로 책임감 있고, 어른스럽고, 차분한 모습으로 발현되어 나타났다.
하지만 내밀한 연애 관계로 가면 조금 달라지곤 했다. 나의 취약한 부분, '민낯'이 드러나는 것이다. 사회에서 스트레스 받으며 긴장한 상태로 지키고 있었던 가면을 내려놓으면, 어린애같은 민낯이 드러나고 만다. 일방적으로 배려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고, 나에게만 관심을 쏟아줬으면 좋겠는 마음. '넌 내 애인이니까 다 받아줘' 라며 마냥 기대고 싶은, 어리광에 가까운 심리.
지금 돌이켜보면, 사회생활의 스트레스가 심해질수록 포장된 내 모습과 진짜 내 모습의 간극이 점점 더 벌어졌고, 그럴수록 연애에 더욱 매달리며 관계가 악화되는 패턴을 반복했던 것 같다. 연애도 사회생활만큼 '노오력'해야 하는 관계인데, 연애를 마치 사막 속의 '오아시스'인 양 생각하며 마냥 쉬어가기만을 바랬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그런 모습 또한, 나의 일부라는 사실을 서서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연애의 좋은 점이기도 하다. 나도 몰랐던 나 자신의 모습을 알게 된다는 것.
나는 연애관계에 있어 어느 정도의 기댐이 꼭 필요한 사람이구나, 라고 나의 취약한 부분을 순순히 인정하고 나니, 오히려 나에게 맞는 상대를 찾기가 더 쉬웠다. 내가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을 받아들이고, 그 대신 별로 중요하지 않은 다른 부분은 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장점은 반드시 단점을 동반한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책임감과 어른스러움은 바로 옆에 있는 누군가를 서운하게 만들 수 있고, 차분하고 신중한 면은 때때로 답답하고 속터지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자기관리 끝판왕에, 철저하고 열정적인 모습에 반해 연애를 시작한다면, 그 사람이 자기관리 하느라 투자하는 시간 동안 종종 나를 외롭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또한 나의 흐트러진 모습을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린애같은 순수함과 귀여움(?)이 좋아서 그 사람과 연애를 시작한다면, 그 귀여움만큼의 어린애같은 이기적임과 천진함에 질려버릴 지도 모른다.
위에 언급했던 친구 A와도 이런 얘기를 해본 적이 있는데, 제발 헌신 좀 그만하라는 나의 조언에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그 사람을 위해 내가 뭔가 해줄 때가 제일 즐거워. 내가 해줄 수 있는게 없으면 남자로 느껴지지가 않아."
친구 A와 나는 우리가 남녀 관계로 만났다면 최상의 합이었을 것이라며 웃었는데, 결국 A는 나와 성격이 비슷한 남자와, 나는 A와 비슷한 성격의 남자와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 ㅎㅎ
한번은 일로 어떤 남자 분을 알게 되었는데, 30대 후반이었던 그는 준수한 외모와 능력, 성격까지 괜찮아서 여자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나도 지인을 소개팅 해주고 싶어서 넌지시 운을 띄웠는데, 지인의 나이(그 당시 30대 초반)를 듣더니, 괜찮다고 정중히 거절했다.
나중에 다른 사람이 내 얘길 듣고는, 혹시 그분이 예전에 만나던 분을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아마 놀랄 것이라고 했다. 도대체 얼마나 멋진 여성분이시기에 그러냐고 했더니, 그 분은 언제나 엄마처럼 푸근한 연상만을 사귄다는 것이다. 나이는 최소 다섯 살 이상 연상이어야 할 뿐만 아니라, 외모까지도 '푸근'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남자는 분명 자기와 비슷한 나이대의 예쁜 여자만을 좋아할 것이라는 나의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물론 흔한 케이스가 아니긴 했지만, 또한 그분의 이상형이 푸근한 외모만이 전부는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그 남자 분이 '여자'로 느끼는 최소한의 외모적인 기준은 굉장히 분명한 편이었고, 온전히 자신만의 것이었다.
그렇게 분명한 기준을 가진 것이 부러웠다고 해야할까. 뭔가 막연하게, '대화가 잘 통하고 웃는 모습이 예뻤으면 좋겠어요' 식의 이상형 보다는, 훨씬 더 자신의 짝을 찾기가 수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선남선녀의 연애 스토리를 좋아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남들에게 좋아보일 연애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연애 관계 속에서의 나의 인격을 잘 모른다면, 내 이상형은 그 어디에도 없는 '유니콘'같은 인물이 되어버릴 지도 모른다. 직장에서 옆 부서 동료로 보았을 때는 상당히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막상 같이 일해보니 생각보다 '진상'이더라 하는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사람은 겪어보기 전에는 모른다. 내가 가장 잘 알 것 같은 나 자신도, 직접 연애를 해 보기 전엔 모른다. 나의 어떤 '인격'이 연애 관계 속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발현되는지.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사랑을 하고 싶은지.
그렇기 때문에 내가 그 연애 관계 속에 들어가 있지 않은 이상, 남의 연애에 입 댈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불륜이 아닌 이상, 남의 애인을 뺏은 것이 아닌 이상 그냥 진심어린 축하를 보내면 된다. 어차피 그 속은 당사자가 아닌 이상 아무도 이해할 수 없으니까. 그저 재미있고 행복한 연애를 하길, 아름답고 즐거운 추억을 많이 만들길 마음으로 축복하는 일이 전부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