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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 Feb 28. 2021

나이가 든다는 것은

하나씩 내려놓는 과정 

지금도 생각하면 이불킥 하고 싶은 신입사원 시절의 기억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신입사원 장기자랑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그 이름, 장기자랑. 


도대체 왜 모든 사람들이 '장기'를 가져야 하며, 그것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랑'해야 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가? 왜 그것이 '신입'의 통과 의례일까? 아무튼 나도 그 장기자랑의 관문을 피할 수는 없었다. 


국내 모 기업의 신입사원 시절에는, 떨리는 목소리로 '곰 세마리'를 불렀고, 그걸 듣는 과장님과 부장님들의 표정은 매우 안좋았다. ㅎㅎ 다행히 단체 장기자랑에서는 동기들과 다같이 치어리딩을 죽어라 연습해서 개인 장기자랑의 수모(?)를 만회할 수 있었다. 모 외국계 기업의 신입 때는, 부서 전체가 무대에 올라가 춤을 춰야 했는데, 한번은 화장실로 미리 도망가서 겨우 피할 수 있었고, 한번은 뒤에 숨어 어색하게 박수만 치다가 내려와서 혼이 났다. 


동기 중에는 특히 이런 것에 특화된 친구들이 꼭 한 두명은 있다. 그들은 늘 눈부신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임원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난 항상 그 친구들이 부러웠다. 왜 난 저렇게 못할까? 어쩜 저렇게 춤도 잘 추고, 발랄하며, 무대에 올라가서도 떨지 않을 수 있을까? 


시간이 흘러 나도 연차가 쌓이자 새로 들어오는 신입사원들의 장기자랑을 즐겁게 관전만 하면 되는 때가 왔다. 더 이상 외향적이고, 화려하게 놀 줄 아는 동기들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어졌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어느 정도 외향적인 이미지로 포장해야 할 때가 종종 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좋은 기회를 잡기 위해, 부당한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 내향성을 숨기고 최대한 외향성을 부각시키곤 했다. 


그렇다고 해서 진짜로 외향적인 사람 마냥 '오바'할 필요는 없다. 나는 여전히 남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이 너무 싫고, 목소리가 떨리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긴장되고 두렵다. 하지만 준비할 시간만 충분히 준다면, 자신있는 모습으로 나설 수 있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도 편안하고 즐겁게 어울릴 수 있다. 


다만 '한시적으로, 필요할 때' 라는 전제가 붙는다는 점이 다르다. 그렇게 '온 힘을 끌어올려' 사람들과 어울리고 나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충전할 시간이 필요하다. 아마 내향적인 사람들은 모두 공감할 것이다. 


20대~30대까지는 내가 좋아하는 일이나 직업을 찾아가고, 한창 나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에 놓여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밖에 없다. 학교나 직장은 싫어하는 사람들과도 '적당히 잘' 어울려야 하는 곳이기 때문에, 더더욱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사회에서 요구하고 주변 사람들이 기대하는 내 모습에 맞추기 보다는, 나 자신의 본연의 모습에 집중하게 되는 시기가 반드시 오는 것 같다. 나이듦의 가장 큰 장점이자, 또 단점일 수도 있겠다. 나의 한계를 알게 되는 것. 그래서 하나씩 내려놓게 되는 것. 약간은 서글프지만 담담하게, 나 자신을 직시하게 되는 것.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예전에는 빠르게 승진하는 친구들을 무척 부러워했었다.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 연봉을 보며, 그 친구들의 능력과 부단한 노력, 영리한 처세가 무척 부러웠었다. 단순히 운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는, 말 그대로 그 친구들의 반짝반짝 빛나는 재능을 눈 앞에서 확인할 때마다, 한없이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런데 세월히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각자의 재능이 다를 뿐이라는 것을. 인간을 무지개로 비유한다면, 왜 나는 저렇게 화려한 빨강이 아니라 이렇게 칙칙하기만한 남색이냐고, 불평하는 꼴이었다. 


서서히 나는 어두운 남색의 색깔을 받아들이고, 편안하게 여기게 되었다. 그리고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었다. 나 자신을 긍정하고 나니, 더 이상 억지스러운 노력은 하지 않게 되었다. 나를 공격하는 사람을 맞받아 치기 보다는, 침묵을 지키거나 피하는 편을 택한다. 예전에는 이런 선택이 비겁하고 겁쟁이처럼 느껴졌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우아하게 나 자신을 보호하는 방식이라고 (나 좋은대로) 생각한다. 


다양하고 많았던 각종 지인 모임에도, 종종 참석하지 않는 선택을 한다. 예전에는 나만 소외되는 느낌에 안달했지만, 지금은 왜 진작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모임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모임에 참여하느라 소모시킨 에너지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지 스스로 잘 알기에, 나의 소중하고 평온한 일상의 루틴을 (그리고 체력의 한계를) 깨뜨리지 않기 위해 미리 포기하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로 가다 보니 내가 화려한 빨강이 아니라, 어두운 남색에 가까운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내게 꼭 맞는 옷을 입고 나니, 단순하고 편안해졌다. 


물론 좋은 것만은 아니다. 편견도 많아지고, 아무래도 모험같은 건 하지 않게 된다. 좀더 보수적인 인간이 된다. 마음의 장벽도 높아진다. 새로운 사람을 잘 사귀지 않게 된다. 


좋은 점은 이런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 하나, 큰 것만 가져간다. 그 외에 것은 조금씩 가지치기 하듯, 어느 정도 내려놓는다. 주변의 모두가 날 좋아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타인의 마음에 들기 위해 더 이상 노력하지 않는 나 자신도 받아들인다. 그래서 일상이 단순해지고, 집중력이 생긴다. 솔직히 마음은 예전보다 훨씬 더, 편안하고 행복하다. 


가끔은, 예전의 무모하고 순수했던 도전 정신과 열정이 그립기도 하다. 멀어지는 친구와의 관계에 가슴아파서 눈물 흘리던 시절의 순수함.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될 때까지 해보자고 나 자신을 몰아붙이던 그 때의 뜨거운 열정. 


하지만 지금은 안다. 가늘고 길게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그래야 오래 오래,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을 테니까. 내 방식으로 묵묵히 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은 아닐지라도, 나에겐 가장 의미있고, 즐거운 여정이 될 수는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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