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경단녀와 워킹맘을 오가며
지난 주에 드디어 첫 출근을 했다. 약 5년 만의 출근이다.
출산과 육아, 그리고 직무 변경을 위한 대학원 공부로 5년을 쉬었지만, 그래도 결혼 전 10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했던 나였다.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지만 어쨌든 잘 적응할 거라고, 스스로를 격려했다.
다행히(?) 회사는 일이 정말 많고 정신없이 바빠서,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막상 출근하니 예전에 회사 다녔던 그 느낌이 다시 되살아나면서, 온몸과 정신이 '업무 모드'로 금새 전환되기 시작했다. 물론 예전 페이스만큼 풀 가동되기 까지는 여전히 삐걱대며 고군분투 중이지만, 그래도 조금씩 적응해나가고 있다.
바로 전 직장을 약 6년 정도 다녔으니, 나도 구직 활동이란 것 자체를 거의 11년 만에 해본 것이었다. 그동안 세상이 많이 바뀌었구나, 라고 느꼈다. 대부분의 회사들이 내가 나이가 많은지, 결혼은 했는지, 애가 있는지, 그런 것 따위는 묻지 않았다. 10년 전만 해도 면접 때 당연하게 이런 질문들을 받고 대답도 했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오로지 나의 경력, 대학원에서 공부한 내용, 실무에 투입될 실력 등에만 관심을 보였다. 내 예상과는 달리 '40대의 애엄마' 라는 타이틀이 별로 놀라움(?)을 주는 것 같지 않았다. 워딩은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아 네, 열심히 사셨군요, 그런데 실무는 어느 정도 하실 수 있나요?' 라고 묻는 느낌이었다.
39살에 처음 대학원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우와 그 나이에 대단하네, 라는 말을 많이 들었고 학교 다니는 내내 마흔이 훌쩍 넘어 졸업해도 일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아무리 주변에서 아니라고 해도, 불안과 의심은 마음 한 구석에 계속 도사리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나이를 완전히 안 본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게 그 정도로 크리티컬(!) 하지는 않다는 것이 솔직한 내 느낌이었다. 완전히 신입을 뽑지 않는 이상, 경력자의 취업 활동에서 중요한 것은 경력과 실무 능력이 거의 전부인 것 같다.
사실 바로 취업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었다. 일단 대학원을 졸업하고 온전히 아이와 붙어서 함께 지내는 시간이 참 행복했고, 그동안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덜을 수 있어서 정신적으로 힐링이 되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아이가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유치원에 나가게 되면서, 나만의 자유시간이 갑자기 많아진 까닭도 있었다. 남편과 아이가 각각 출근과 등원을 한 후의 조용한 시간이 얼마나 달콤하고 꿀같은지... 엄마들은 아마 모두 알 것이다. 이 시간은 나에게 너무 귀하고 행복해서, 점심도 건너뛸 정도로 원없이 내가 하고싶은 공부나 독서에 몰두하곤 했다.
그러다 운 좋게 여러 가지 조건이 잘 맞는 회사와 연이 닿았고 이 평화로운 행복은 끝나버렸지만, 이 생활도 또 다른 행복감과 만족감이 있는 것 같다.
첫 번째는 내 커리어를 시작했다는 만족감이다. 이제는 곁눈질할 필요없이 차곡차곡 쌓아가기만 하면 된다는 확신.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할 수 있다는 행운. 더할 수 없이 감사한 일이다. 집에서 혼자 공부할 때, 그리고 학교에서 과제할 때와는 전혀 다른 긴장감이 있다. '일'로 접하는 세계는, 당연한 말이지만 정말 다른 차원이다. 더욱 밀도있게 일하고 끊임없이 공부하며 실력을 쌓아가고 싶다.
두 번째는 역시 '돈'이다. 고상하게 말하자면 경제력. 설명할 필요가 뭐가 있을까. 나도 알고 당신도 아는, 세상이 모두 아는 돈의 힘이란. 현대 사회에서 돈은 곧 자신감이자 힘이고 권력이니까. 돈을 많이 벌고 적게 벌고는 부차적인 문제다. 처음부터 온전히 내 능력으로 경제력을 갖는다는 것이 내겐 중요했다.
세 번째는 가족이다. 가족이 소중하기 때문에 일에 더 몰두할 수 있고, 내가 일을 하기 때문에 가족의 존재가 더 소중해진다.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관계처럼, 개인으로서도 온전한 '나'일 수 있어야, 엄마로서의 나도 행복하다. 비로소 그 균형을 맞출 수 있게 되면서, 가족끼리도 더욱 끈끈해진 느낌이다. 으쌰으쌰 서로 힘을 합치자, 라는 팀워크가 발휘된달까. ㅎㅎ
이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상황(등원도우미 구하는 과정부터, 엄마의 부재를 아이에게 적응시키고, 부모님의 도움을 받는 과정, 산더미 같은 가사일 분담과 처리까지...등등)을 세팅하는 과정은 결코 무탈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다시 회사원이 되었다. 돈을 벌고,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이, 참 신기하고 이상한 기분이 든다. 20대와 30대 내내 숨쉬듯 당연하게 해왔던 일상이, 이렇게 소중해질 줄이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역시 아줌마의 힘은 남다르다는 것이다. 예전보다 조금 더 뻔뻔해지고, 부끄러움이 없어졌다. 돈을 좀 더 사랑하게 되고 ㅎㅎ 직접 차리지 않고 회사에서 사먹는 점심이 새삼스럽고 즐겁다.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듣는 음악과, 독서하는 시간들이 너무나 소중하다. 아이와 헤어지는 아침 시간엔 아직도 마음이 좀 힘들지만, 그만큼 퇴근해서 애틋하게 품에 껴안는 아이의 달큰한 냄새가 더 소중하다.
이 시간들이 또 어떤 미래로 이끌어 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단 한 가지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다면 - 아이가 엄마의 빈자리를 되도록 느끼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엄마는 어디에 있든, 변함없이 널 사랑한다는 걸,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엄마 마음의 0순위는 너라는 걸 알아줬으면. 그리고 부디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공부는 못해도 좋으니, 건강하고 행복하게만 지내주길. 그리고 언젠간, 엄마를 조금은 자랑스럽게 여겨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