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ina Apr 27. 2021

일은 '일'일 뿐이다

고통까지 즐기진 못해도 '존버'는 할 수 있다

10년동안 하던 직무를 떠나 새로운 커리어로 일을 시작한 지 한달...


직장생활 10년차 일지라도 새롭게 진입한 분야에서는 그저 신입일 뿐이고, 초보의 티를 벗기에는 아직 많~이 미숙하다는 것을,


나 자신도 느끼고 주변 사람들도 느낄 수 밖에 없는 좌충우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솔직히 번역일 자체는 재미있다. 하면 할수록 적성에 맞는 일이라고 느끼고, 평생동안 번역을 하고 싶다. 하지만 세상 일이 모두 그렇듯, 내가 좋아하는 일을 '좋아하는 방식'으로 하기까지는 시련과 고난의 트레이닝 기간이 필수적이다.


누구나 퀄리티 높은 일을 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런 종류의 일은 대체로, 그 분야에서 오랜 시간 '경력'을 쌓은 사람의 몫인 것이 당연하다.


확실히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실전에서 경험하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다. 학교는 되도록 얇고(?) 넓게, 포괄적으로 많은 분야를 '경험'하고 '맛'보게 해주는 동시에, 높은 건물을 쌓기 위한 기초 작업으로 땅을 파고 들어가면서 정밀하게 들여다보고 쪼개어보고 분석해보는 시간을 충분히 갖는 느낌이라면, 실전은 빨리 기둥 만들고 벽돌 쌓아 올려서 어떻게든 결과물을 내놓으라고 정신없이 채찍질을 맞는(?) 느낌이다.


학교에서는 이렇게 저렇게, 내 입맛에 맞게 디자인하며 정성껏 예쁘게 쌓아 올리는 건물을 꿈꿨지만, 사회에서는 너의 취향 따위, 취미로만 발휘하고 얼른 고객이 원하는 결과물을 지어 올려라~~ 하는 주문이 휘몰아친다.


현실과 이상의 갭이나, 일이 바쁘고 많은 것 정도로는 힘들지 않다. 내가 정말 마음이 힘들 때는, 정말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물이라는 것을 나 자신도 알고 고객도 알 것 같은데, 그걸 시간에 쫓겨서 어쨌든 내야할 때의 난감함이다.


아, 실전에서의 내 실력이 이거 밖에 안되는구나, 하고 고스란히 마주할 때의 그 자괴감이란.


속도도 실력이고, 집중력과 체력, 지구력도 실력이다. 돈 받고 하는 직업의 세계니까, '잘' 해야 하는건 그냥 당연한 것이고 오직 결과물이 전부다. 너무 오래 일했더니 집중력이 흐트러져서, 오늘 컨디션이 안 좋아서, 이 제품에 대해 잘 몰라서, 따위의 변명을 들어주며 날 고용해줄 회사는 없다.


결과물을 제출하면서, 스스로 돈 받고 하는 일인데 이거밖에 안 된다니... 라는 죄책감이 들 때가 가장 괴롭다. 대학원에서는 어떻게든 밤을 새며 과제의 완성도를 높였지만, 마감 시간이 타이트하게 정해진 회사일은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으니, 급하게 몰아치는 상태에서 나의 부족한 밑천을 고스란히 드러낼 때가 있다.


아직 신입(?)이니까 남들은 크게 상관하지 않을지라도, 나 스스로는 속일 수 없다.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어떤 부분의 실력을 더 쌓아야 하는지, 분명하게 파악해가는 중이다. 역시 실전만큼 확실한 공부는 없는 것 같다.


대학원 때 그 정도의 과제도 힘들다고 징징대던 나를, 과거로 돌아가서 마구 혼내주고 싶다. ㅎㅎ 실전에서는 그 열배쯤 하니까 군소리 말고 그냥 열심히 하라고, 다 도움이 될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물론 이 또한 시간이 자연스레 해결해주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모든 일은 익숙해지기 마련이고, 내가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이상, 실력과 속도도 점점 더 붙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너무 스스로 자책하지 않으려고 한다. 말 그대로 일은 '일'일 뿐이니까.


직장생활 10년동안 배운 것이 있다면, 일에 너무 감정을 개입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일을 너무 사랑해서 감정을 개입하고, 일의 결과에 따라 일희일비 하다보면 금새 지친다.


때로는 그냥 기계처럼 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잘 못하면 잘할 때까지 계속 노력하고, 실수하면 바로 잡고, 잘 모르겠으면 물어보고, 도움을 요청한다.


깊이 생각하지 말고, 그때 그때 필요한 일을 해치워나갈 뿐이다.


생각과 감정이 너무 개입되면, 행동이 느려지게 된다.

그리고 이내 '아, 내가 이런 일을 하려고 그렇게 공부한게 아닌데...' 라던지, '이건 내가 원하던 일이 아닌데...' 같은 부정적인 생각들이 스멀스멀 피어 오른다.


그냥 '일'이니까 닥치고 하는 것이다. 하기로 한 일이니까, 당분간은 어떻게든 해낸다. 힘들다 어떻다 그런 감정이나 변명이 개입할 시간 없이, 일단 내게 주어진 일은 해치운다는 기세가 중요하다.


그러고 나서, 조금씩 내게 맞는 길로 방향을 틀어가며 시도해보면 된다.


기회는 늘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오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좋아하는 방식으로' 즐길 수 있을 때까지는,

미련하게 실전 경험을 쌓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같은 말은 정말 싫다. 피할 수 없어서 괴로운데 어떻게 즐기기까지 하라고...?


다만 피할 수는 없지만 버틸 수는 있고, 일정 기간 버텨야 하는 시간은 인생에서 꼭 필요하며, 조금이라도 '덜' 고통스럽게 버티기 위해서는 최대한 감정을 덜어내고 바쁘게 몰입하기를 권해드린다.


실은 나도 오늘 회사일이 조금 힘들었어서, 나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글이기도 하다.


세상의 모든 '귀중한 밥벌이'를 하는 분들, 파이팅 하시길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5년 간의 경력 단절, 그리고 첫 출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