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맘도 워킹맘도, '맘'의 자리는 쉽지 않다.
이제 '워킹'맘이 된지 겨우 3개월 차에 불과하지만, 전업맘에서 워킹맘으로의 전환은 내 예상보다 훨씬 급작스럽고 많은 변화를 불러 일으켰다.
직장생활은 10년 넘게 했지만, 임신과 출산 후 5년 만에 다시 일을 시작한 것이니 '워킹맘'으로서는 완전 신입인 셈이다. 중간에 대학원도 다니면서 워킹맘의 생활을 어느 정도 '예행 연습'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 워킹맘의 생활은 또 다른 면들이 있는 것 같다.
워킹맘에 되어서 가장 힘든 점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해야할 일들이 많은 것도, 집안일과 회사일 사이의 균형을 잡는 것도, 다른 가족에게 육아 도움을 받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내 아이 곁에 엄마인 내가 없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그 부재의 시간이 참 힘들었다. 정작 아이는 유치원에 다니며 점차 적응(또는 포기?)해 가는 듯 보이는데, 나는 여전히 아이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가슴 아프다. 내가 모르는 내 아이의 시간, 생활, 친구, 습관들이 하나씩 늘어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에 늘 마음 한 구석이 아려온다.
태어나서 5살이 될 때까지, 애착이 형성될 때까진 차고 넘치게 사랑을 쏟았으니 이젠 사회에 복귀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아이의 성장이라는 것이 그렇게 딱 숫자에 맞춰 떨어지듯 계산이 되거나 예상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어쩔 때는 한참 엄마 품이 필요한 어린 아이처럼 느껴지다가도, 어쩔 때 보면 또 언제 저렇게 자랐나 싶을 정도로 의젓하고 기특한 모습을 보인다. 행복해 하거나 곤히 자는 모습을 봐도, 울거나 짜증 부리는 모습을 봐도 짠하다. 어떤 말로 표현이 될까. 내 아이의 모든 순간, 모든 시간을 놓치고 싶지 않은데, 어쩔 수 없이 많은 부분을 무심코 흘려보내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면 늘 아쉽고 가슴이 아프다.
육아는 양보다 질이라고, 함께 있는 시간 동안 더 충실하고 밀도 있는 시간을 아이에게 쏟으면 충분하다는 것을 머리 속으로는 잘 알지만, 그렇다고 괜찮아지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이 세상의 모든 워킹맘들이 이런 마음을 누르고, 참으며 지내는 거겠지, 라고 생각하니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참 신기한 건, 공감력이 높은 남편 조차 이런 나의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재택 근무 요일을 빼면 출근하는 날도 며칠 되지 않는데다, 아이도 아침 일찍 유치원 가서 오후에 오니 아이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실제로는 몇 시간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건데 뭘 그렇게 까지 힘들어 하냐는 것이다. ㅎㅎ
남편의 말도 맞다.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이성적(!)이고 색다른 시각의 의견이라 신선했다. 아이에 대해서 만큼은 지극히 감정적이며 비이성적이 되어버리는 나와는 달리, 어느 정도 객관성(?)을 유지하는 냉정한 남편의 의견은 꽤 위로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신선했던 경험은 직장생활에 임하는 내 마음가짐과 태도의 변화다. 흔히들 가정과 직장의 '균형'에 대해서 얘기하는데, 사실 나는 아이를 갖기 전엔 이 두 가지가 따로 따로 존재하는 영역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무게 중심이 가정으로 쏠리면 일에 지장을 받고, 너무 일에 쏠리면 가정이 소홀해질 거라고 이분법 적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워킹맘에게는 이 두 가지가 상호 의존적인 가치인 것 같다. 서로 의지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가정이 있기에 일의 소중함과 감사함을 더 절실하게 느끼고, 또 내 일이 있기에 가정에 더욱 충실하게 되는 면도 있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인생의 우선 순위가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다. 세상에서 나 자신보다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아이'라는 무게 중심이 이미 생겨버린 '맘'의 워킹 라이프는, 그래서 상당히 안정적일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예전에는 예민하고 날카롭게 반응하고 신경쓰던 일들에도, '뭐 그럴 수 있지' 라는 마인드로 대하게 된다. 죽고 사는 문제나 내 아이에 관련된 일이 아니라면, 크게 관심을 쓸 여력도, 체력도 없다.
인생에서 내가 무엇을 최우선의 가치로 둘 지 확실하게 정해지고 나면, 삶이 단순하고 행복해지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아이를 가진 이후에는, 아무리 돈이 많거나 유명한 사람을 봐도 별로 부럽지가 않다. 내가 이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이, 부모라는 사실이 세상에서 가장 자랑스럽고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과 강한 무게 중심이 사회 생활의 또 다른 원동력이 된다. 내 아이에게 멋지고 책임감 있고 늘 성장하는 엄마가 되고 싶기 때문에,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다. 일하다가 지치고 힘든 순간이 와도,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더 힘낼 수 있다.
워킹 '대디'라는 말이 없는데 왜 워킹 '맘'이라는 단어는 있을까, 이해하지 못했는데 내가 그 상황에 처해보니 알 것 같다. '워킹'이 아닌 '맘'에 방점이 찍힌 단어라는 것을. 전업맘이든 워킹맘이든, 일단 '맘'이 되고 나면 쉬운 자리는 없는 것 같다. '맘'이 취미든 일이든 무엇이든, 아이와 관련되지 않은 그 어떤 것을 한다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고, 힘든 여정인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모든 '맘'들이, 엄마로서 뿐만 아니라 한 여자로서, 개인으로서도 늘 행복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