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그냥 하세요
외국계 회사에서 11년 정도 근무하다가 전업 번역가로 일을 시작한지, 이제 막 1년 정도 되었다.
하면 할수록 내 적성에 잘 맞고, 더 잘하고 싶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음에도, 기본적으로 일이란 것은 힘들고 괴로운 것이 디폴트 값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10으로 치면 7은 괴롭고 지루하고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이고, 3 정도의 재미와 즐거움이 있는 느낌이다. 연차가 좀더 쌓이면, 언젠가는 3:7로 뒤집어질 수 있으려나...?
예전에 회사 다닐 때는 어땠나 생각해보면, 그때 역시 7:3 정도로 괴로움과 즐거움이 오가는 생활을 했던 것 같다. 어째서 적성에 맞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지금과 비율이 비슷한가 생각해보니, 그 재미를 느끼는 '3'의 퀄리티가 좀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회사 다닐 때의 즐거움은 매달 따박 따박 들어오는 월급과 조직의 울타리 안에 있다는 안정감, 회사 동료들과 맛있는 점심 먹으러 가고 소소하게 수다 떨고 커피 마시는 재미, 직장에 존재하는 별별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관찰하며 느껴지는 희노애락... 뭐 이런 재미로 3을 채웠던 것 같다.
지금은 좀더 성취감에 가까운 재미가 있다. 내가 들인 노력과 시간만큼 내 실력도 차곡차곡 쌓여가겠지, 라는 기대감. 경험이라는 포인트를 쌓아가는 든든함이 있다.
딱 들어맞는 표현을 찾았을 때의 쾌감,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표현된 문장을 볼 때의 즐거움, 고객사로부터 좋은 피드백이 왔을 때의 뿌듯함, 그런 것들이 손목과 어깨 통증을 잊게 만들고 진짜 재미를 준다.
물론 이 재미의 비율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3 정도다. 대부분의 시간은, '아 마감이 코앞이네, 큰일이네, 이거 언제 다하지, 진짜 지루하다, 팔목 아프다, 날씨 좋은데 나가서 놀고 싶다, 왜 난 이거밖에 안되지, 좋아하는 책이나 읽었으면...' 뭐 이런 생각으로 가득하다. 그저 꾸역꾸역 오늘은 이만큼, 어제 멈춘 곳에서 다시 이만큼, 조금씩 버티며 해나갈 뿐이다.
일이 힘들다고 막상 쉬어버리면, 그거는 또 그거대로 괴롭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나도 노는걸 누구보다도 좋아하지만 경험상 일 없이 노는 건 불안하기만 하고 큰 재미가 없었다.
나도 좀더 어렸을 때는, '좋아하는 일'이란 것에 대한 환상이 많았던 것 같다. 내가 마주한 현실이 가혹하고 힘들수록 그 환상이 더 강해졌던 것 같다. 번역 일을 직업으로 택하기까지 망설이는 시간만 한 3-4년 정도였다.
마음을 딱 결심하게 해준 계기는 너무도 벗어나고 싶은 (그때 당시의) '현 상황'이었다. 너무 익숙해져 타성에 젖어버린 업무, 몇 년이 지나도 새롭게 바뀌거나 발전할 수 없는 업무 성격, 시키는 일만 해야 하는 답답함... 더 이상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고, 무얼 해도 이것보다는 낫겠다는 정도의 마음이 들 정도가 되고 나서야 회사를 떠날 수 있었다.
나는 의미부여가 매우 중요한 사람이라서, 이걸 통해 내가 무얼 배우고 얻는지 명확하지 않으면 잘 집중이 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게 나의 조급함이라는 사실을 어느 순간 깨달았다.
회사 생활도 해보고 프리랜서로도 일해보니, 때로는 의미같은거 하나 없어도 '그냥' 해내야만 하는 일도 있다. 아니, 그런 일들이 사실 더 많다.
모든 일들의 결과가 바로 바로 나타나는게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당장은 알지 못할 수 있다. 몇 년이 흐른 후에야 깨달을 수도 있고,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그 일을 했던 경험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때로는 그냥 기계처럼 해내는 실행력이 필요할 때가 많다.
일은 고맙게도 우리에게 이 '실행력'을 준다. 돈 주는 일이 아니었다면 절대 그만큼의 인내심을 발휘하지 못했을 일들. 일이니까 하는 수 없이 괴로움과 지루함을 참아가며 했던 일들. '일' 덕분에 절대 넘을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산도, 어느새 돌아보면 꽤 올라와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내가 꾸준히 해오고 있는 요가도 마찬가지였다. 근력이 너무 부족해서 기본 자세도 힘들게 겨우 하는 나에게, 선생님이 '머리 서기' 자세를 해보자는게 아닌가.
네? 저요? 제가 지금... 이걸요?... 하며 슬금슬금 피해 보았지만, 선생님은 망설임 없이 너무나 당연한 얼굴로 '네, 지금 해볼게요' 라며 이미 코앞에 와 계셨다.
선생님이 다리를 잡아 주셔도, 여전히 몇 달이 넘도록 머리 서기가 되질 않는다. 하지만 맨 처음 부들부들 떨면서 두려움에 경직되어 있을 때보다는 자세가 많이 자연스러워졌다. 머리를 땅에 대고 다리를 올릴 때, 점점 더 두려움이 없어지고, 어떻게 하면 몸의 중심을 잡을까 라는 생각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이 자세에 도전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도 큰 성취감이 느껴졌다. 선생님이 너무도 덤덤하게 '지금 해보세요'라며 시키지 않으셨다면 절대 못했을 자세였다. 그 무덤덤한 기세에 눌려 나도 모르게 그냥 해버린 거였다.
요즘엔 내 '일'이 바로 우리 요가 선생님 같다는 생각을 한다. 봄이 오고, 하늘은 파랗고, 괜히 일하기 싫으니까 밍기적 댈 때 '그냥 하라'고 떡 버티고 있는 일의 존재감이란.
평범한 하루에 새삼 감사를 느끼며, 다시 힘을 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