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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 Mar 01. 2022

절대로 엄마처럼 살지 않을거라던 딸은...

두 번째 독립, 결혼 

요즘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라는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 겉으로는 멀쩡하고 성숙해보이는 성인들도, 가슴 속에는 여전히 상처 받은 어린 아이인 채로 자라지 않은 '금쪽이'를 품고 살아가는 여린 존재구나 싶어 뭉클했던 적이 많았다. 


나는 서른 살에 독립해서 6년을 혼자 살아봤고, 결혼 후 가정을 꾸려 현재 6년째 살아가고 있다. 첫 번째 독립도 너무 좋았고 의미있는 시간이었지만, 결혼이라는 두 번째 독립이야말로 진정한 독립이라는 느낌이 든다. 


우리는 부모를 선택할 수는 없지만 배우자는 선택할 수 있다. 내가 원하는 방식의 삶, 스타일, 가치관의 결이 어느 정도 비슷한 사람을 만나 서로 조율하며 살아가는 과정이 결혼 생활이다. 첫 2~3년은 서로의 문화 차이에서 오는 오해나 갈등도 당연히 있었지만, 한 3년 정도 넘어가는 시점부터는 거의 싸울 일이 없었던 것 같다. 자연스럽게 주파수를 맞추게 되고, 서로 싫어하는 행동은 조심하면서 대화로 잘 풀 수 있는 스킬이 생겼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식이라는 최우선 순위이자 공통분모가 있기 때문에, 나 이외에 내 자식을 나만큼 사랑해줄 사람은 당신 뿐이라는 서로에 대한 신뢰가, 어떤 구심점처럼 우리 가정에 단단히 무게 중심을 잡고 있다. 


이 세상에 많은 '금쪽이'들처럼, 나 역시 나름대로 가슴 속에 이러저러한 결핍과 채워지지 않은 갈증을 느끼며 자랐고, 여전히 내 일부를 이루며 마흔이 넘은 나에게도 많은 영향력을 주고 있다. 특히 내 자식을 통해 어렸을 때의 내 모습을 많이 본다. 마치 내가 나를 치유하듯이, 부모님이 어렸을 때 내게 해주길 바랬던 행동, 말들을 내 아이에게 많이 해주려고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더불어, 부모님에 대해 깊이 이해하게 되는 순간도 많았다. 우리가 당연히 누리고 받았던 것들이, 사실은 엄청난 희생과 노력과 사랑의 결과였다는 것도. 엄마 아빠는 여전히 그토록 예뻐하시는 '손주'보다도 '내 딸'의 안위를 더 걱정하신다는 것. 그 사랑의 깊이를 내 자식을 보며 새삼 감사하게 깨닫는다. 


여느 딸들처럼, 나도 엄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나에게 엄마는 집안에서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고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 가족이다. 자유로운 한량같았던 아빠와 선천적으로 몸이 약하고 손이 많이 갔던 오빠를 늘 홀로 써포트하고 내조하느라 바빴던 엄마. 그런 엄마의 힘듦과 마음 속 깊은 외로움을 유일하게 이해하고 동일시하며 안타까워 하느라 빨리 철들어버린 나. 


엄마는 뛰어난 미인인데다 총명하고 부지런하고 생활력이 강했으며, 살림의 여왕이었다. 엄마의 손길이 닿는 모든 곳에서 엄마의 야무진 손길과 센스를 느낄 수 있었다. 그냥 깨끗하고 실용적으로 유지하는 살림이 아니라, 타고난 센스와 머리가 좋은 분이 아름답고 세련되게 가꾸어가는 살림이었다.


게다가 엄마는 평생 신문을 정독하고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나의 독서 습관은 전부 엄마에게서 온 것이다. 엄마가 매일 알뜰하게 작성한 가계부 아래에는 조그맣게, 한 두줄씩 엄마의 일기가 들어가 있었다. 딱 엄마의 손재주와 깔끔한 성격만큼이나 정갈하고 단정한 엄마의 글씨체. 아빠가 건네주는 빠듯한 생활비를 어떻게든 아끼고 아껴 살아가려고 했던 흔적들. 초등학교 때 엿보았던 그 가계부의 글씨들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엄마가 너무나 아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그렇게 가부장적인 분이 아니었다면, 엄마가 조금만 더 반항적이고 욕심 많은 딸이었다면... 엄마의 인생은 정말 달라졌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엄마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에게 받은 교육 그대로, 가부장적인 사고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셨다. 나에게도 무심결에 엄마와 같은 모습을 기대하곤 했다. 다행히 나는 엄마와 완전히 반대되는 성격이라서, 엄마가 그런 '착하고 순종적이고 아버지와 오빠 밥도 잘 챙겨주는 막내딸' 역할을 요구할 때마다 불같이 화내고, 대판 싸우고 반항하고 그랬다. 


부모님께 순종적이고 순둥한 성격의 오빠와는 달리, 절대로 참지 않고 조금만 차별 받아도 악을 쓰며 똑같이 해달라고 화를 내던 내 성격에 엄마 아빠는 종종 적잖이 놀래셨던 것 같다. 


재미있는 것은 나를 대하는 아빠의 태도 변화이다. 아빠는 자기 주장 확실하고 당찬 딸을 버릇없게 보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랑스러워 하셨다. 엄마가 여자 혼자서 위험한 일이 아닐까 말릴 법한 일도, 아빠는 뭐든지 해보라며 응원해주셨고, 야무지고 믿음직한 딸이라며 든든해하셨다. 


그랬던 아빠가 내가 결혼한 이후로는 미묘하게 바뀌셨다. 결혼 전에는 항상 진로 고민이나 앞으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진지하게 들어주시고 조언도 해주시던 아빠였다. 하지만 결혼 후에는 비슷한 고민을 의논해도 진지하게 듣지도 않으실 뿐더러, 항상 다음과 같은 말로 대화가 애매하게 끝나버린다. 


"음... oo(남편)이와 의논해 봐. oo이가 하자는 대로 해." 


실제로 남편에게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아빠 말씀을 그대로 전하자, 나의 캐릭터를 너무나 잘 아는 남편은 웃음만 빵 터뜨릴 뿐이었다. "이미 답은 마음 속에 있잖아? 니나 마음 가는대로 해~" 라고 덧붙이면서. 


남편은 예상한 대로였지만, 솔직히 아빠의 반응은 좀 실망스러웠다. 물론 결혼을 했으니 여자나 남자나 대부분의 문제를 배우자와 의논하는건 당연하다. 나도 당연히 내 진로와 관련하여 모든 문제를 남편과 의논한다. 하지만 아빠의 뉘앙스는 그게 아니었다. 


뭔가 남편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고, 눈치를 봐야 한다는 뉘앙스가 느껴졌다.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이 아빠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친오빠가 직장 문제, 인간관계 문제에 대해서 1시간씩 이야기 해도 한번도 가로막지 않고 진지하게 들어주며 조언을 제시해주던 아빠가, 나한테는 이렇게 다르다니...


물론 그 밑바탕에는 딸이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잘 살길 바라는 염려스러운 마음과 사랑이 짙게 깔려있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옛날 사람'인 아빠의 방식으로 날 걱정하는 것임을 안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다고 해도, 아무리 남편이 나를 잘 이해한다고 해도, 그래도 남자는 남자야... 모든 남자는 너의 엄마같은 여자를 원할거다... 아빠는 그런 메시지를 보내고 계셨다. 아빠의 모범답안 '아내'상은 바로 엄마 뿐이니까. 


누가 옳고 그르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아빠가 어떤 부분을 우려하시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빠 말씀 중에 옳은 부분도 분명 있다. 다만 나는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엄마같은 아내가 될 수 없고, 나의 남편도 아빠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기에, 그냥 침묵을 지켰다.


아빠는 엄마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면서도, 자식들 앞에서나 다른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엄마를 깎아내리는 듯한 농담을 하시곤 했다. 약간 그 시대에는 남자가 부인 칭찬을 하면 쪼다(?)같은 놈이고, 나 이 정도로 떵떵거리며 내 부인에게 대우 받고 산다는 자기 과시? 같은 느낌의 허풍섞인 농담조이긴 했지만, 난 정말 싫었다. 거기에 동조하듯이 웃는 사람들도 싫었고, 어색하게 따라웃는 엄마도 싫었고, 그걸 그대로 답습하며 엄마를 은근히 무시하는 오빠도 싫었다. 나는 절대로 엄마와 같은 전업 주부로 살지 않고 내 직업과 경제력을 가질 거라고 수없이 다짐했다. 그리고 아빠와 정 반대되는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대로 이루어지긴 했다 ㅎㅎ)


지금은 나도 가정이 있기에, 조금은 마음의 거리를 두고 부모님을 담담히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아니, 오히려 해방감 비슷한 감정조차 들 때가 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던, 어리고 무력했던 인생의 1막이 완전히 끝난 기분이랄까. 뭔가 답답하고 엄마를 보면 슬프고 이유 모를 죄책감 느끼던 시절에서 벗어나, 내가 지향하고 원하는 삶의 2막을 열 수 있어서, 오히려 결혼하면서 진짜 독립했다는 기분이 들었고 자유를 느꼈다. 


그런 해방감과 동시에, 나는 엄마에게 모녀관계를 넘어 같은 여자로서, 그리고 엄마로서 깊은 연대감을 느낀다. 어렸을 때는 그저 엄마 아빠였지만, 이제는 아빠를 엄마의 남편으로서의 모습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어렸을 때는 아빠와 대화가 잘 통한다고 생각했었다. 아빠의 철학적인 사고와 이야기들, 인생에 대한 성찰, 예술가적인 기질을 멋있고 남자답다고 생각했다. 살림만 하는 엄마는 그런걸 잘 모를 거라고 여겼다. 그런데 지금은, 아빠가 그렇게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뒤에서 판을 만들어준 엄마의 노동과 수고로움이 더 눈에 들어온다. 절대 엄마처럼 살지 않을거야, 라고 수없이 외쳤지만 왜 엄마가 엄마처럼 살아야만 했는가를, 어느새 나도 마음 깊이 이해하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엄마처럼 살지 않아서 다행이야' 라기 보다는, 주어진 상황과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오신 엄마의 삶이 결국 내가 지금 서 있는 자리의 본질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다. 


방식은 달라도 엄마의 마음이 곧 지금의 내 마음이었음을. 가족에 대한 사랑과 헌신이라는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었음을. 그리고 자식을 온전히 키워내고 매일 매일의 살림에 충실한 한 여자로서, 엄마로서, 그리고 인생 선배로서, 내가 엄마에게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실감하며 나이를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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