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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의 파도 Feb 21. 2020

"자유가 치료다" 제 1회 매드프라이드 서울 후기

[노란일상] 2019.10.26 세종로공원

일전에 학교 팀프로젝트를 하면서 알게 된 다람이, 고양이 님과 함께 10월 26일 제 1회 매드프라이드서울에 참가했다.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는 날 비건 빈달루카레를 먹고 드립 커피로 기력을 충전을 한 다음 세종로공원으로 향했다.


[ 축제날 풍경 ]

서울과 부산에서 퀴어퍼레이드를 4회 참가하면서 ‘퍼레이드’라고 하면 후덥지근한 여름날에 진행되는 화려하고 강렬한 색감의 퀴어퍼레이드가 어느새 가장 익숙해졌다. ‘행진’이라고 하면 무지개 깃발을 들고 아이돌 노래를 신나게 따라부르며 경쾌하고 시끄럽게 우리의 존재를 드러내는 행진이 가장 자연스러워졌고, 혹은 적어도 촛불 집회나 대학로의 여성 집회들처럼 강렬한 팻말을 들고 함께 웅장하게 구호를 외치는 그 일체성에 익숙해졌다.


“대체 어디서 하는 거지?”

“아, 이건가봐요”

시작한지 한 시간 후에 도착한 매드퍼레이드는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조촐하고, 평화롭고, 고요했다. 총 20개 부스가 있었는데, 알록달록한 네온색 천을 덮어 조그만 난쟁이 집들처럼 구성을 한 모습이 예뻤다. ‘한마음의 집’을 포함해 세 부스에서는 정신질환 당사자들이 찍은 사진으로 사진전을 열거나, 당사자 예술가들의 그림 작품들을 전시해두었고, 관련 굿즈를 팔았다. ‘마인드 포스트’ 부스에서는 이동수 작가가 연재하는 만평 중 정신질환과 미디어에 관련된 만평들이 한 데에 전시되어있었다. 원하는 노래를 부르면 에코백을 주는 노래방 부스도 있었다. 정신질환자들의 탈시설이나 고용 관련 규제에 반대해서 축제 참가자들에게 현 정책에 대해 설명해주고 서명만을 수집하는 부스도 있었다. 그 작은 축제에서도 법률지원팀 부스와 응급조치 부스는 갖추어져있었다.


‘청주 정신건강센터’ 부스에서는 ‘당사자 연구’의 개념에 대해 설명하며 네 당사자의 환청, 망상, 인간관계의 고통과 고생을 연구한 자료를 통해 당사자 개개인의 목소리를 찾는 과정을 담았다. 동료와 경험을 ‘공유’하고 전문가나 가족과 ‘연대’하는 것을 중요한 연구 조건이라고 생각한다고 적혀있었다. 당사자 연구를 통해 나만의 언어를 찾고, 그를 통해 나를 남에게 더욱 잘 설명하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이 의의가 인상깊고 공감갔다. 연구 예시에는 당사자들이 각자의 상태를 질병 명칭이나 장애의 명칭으로 말하지 않고 ‘나의 고생’을 자신의 언어로 두세 줄에 걸쳐 설명해놓았다. 그리고 연구 결과로도 이에 대한 ‘치료’ 방법 대신 (이 고생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방법’이나 ‘남과 소통할 방법’을 설명한 것이 인상깊었다. 정신장애인의 ‘주체적인’ 자기 내러티브 형성을 가능케 해 고통을 생산적인 동력으로 삼고, 동시에 삶에서 꾸준히 지니고 가는 동반자적 조건으로 인정하는 모습을 적절히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이런 부스들을 차근차근 둘러보면서 전체적으로 정신장애인, 정신질환자들을 무기력하고 비독립적인 존재로만 그려내는 법률과 미디어, 그리고 대화와 공존의 시도를 하기는커녕 정신질환자들의 공격성이나 소통 불가능성만을 강조하며 시설로 내몰고 범죄자로만 그려내는 사회 담론에 대한 비평이 읽혔다. 그림과 사진 전시에서는 소외의 외로움이 돋보이는 동시에 이 전시들과 당사자연구 부스에서도 전반적으로 정신질환 당사자들의 창작성과 창조성을 강조하는 내러티브가 감지되기도 했다.


한편 부스 중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곳은 역시나 굿즈가 있는 곳이었다. 퍼레이드 참가 연차가 쌓인 퀴어 굿즈 부스가 가장 예쁜 굿즈를 많이 가지고 있었고 방문객도 가장 많았다. 주최자인 <안티카> 부스에서는 “거리로 나가는 것이 망설여지는” 사람들을 위해서 나비, 아마데우스, 호박, 각시탈, 하회탈, 금도깨비, 토끼, 무사, 코알라, 여우 호랑이, 여왕, 사자 가면까지 다양한 백색 가면을 준비해놓았다. 참가자들은 자신의 마음에 드는 가면을 골라 온갖 색깔 크레파스로 마음껏 색칠할 수 있었다. 친구들과 10년이 넘는 시간 만에 크레파스를 손에 쥐고 15분 넘게 마스크를 칠했다. 오랜 시간 같은 자리에 서있으면서 보니 이 부스에는 유독 가면을 가지고 싶어서 온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색칠을 돕는 부모님이 많았다. 그 중에는 부모님들의 의지로 이 축제 전체에 참여한 사람도 있었지만, 절반이 조금 안 되는 가족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이 행사를 잘 모르는 채로 그저 마스크 칠하기 행사를 위해서 그 자리에 서있었다. 다양한 연령대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기획은 좋았으나 지나가던 사람들의 발길이 더 머무르게 하고, 큰 의지를 갖지 않고 짧게 머물러도 페스티벌의 중심 메시지를 느낄 수 있게끔 조금 더 포스터나 팻말 등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마스크를 착용하고 행진한 사람이 거의 우리 셋 뿐이었다. 축제에 참가한 당사자들이 요즘 흔히 보이는 시위 현장에서와는 달리 전혀 얼굴을 가려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선 그만큼이나 정신질환자들이 사회와 단절되어있음을 증명하는 모습은 아닌가하고 생각했다.


한편 이 모든 것보다도 이 축제의 세로토닌 존과 정신질환 당사자 연극이 가장 인상깊었다.

사각형 형태의 공원 정중앙과 입구 근처 이렇게 두 곳에 세로토닌 존이라는 쉼터 공간이 조성되어있었다. “병원, 집, 시설에 갇혀있던 당사자들이 동료들을 공원에서 만나 차와 다과를 함께 즐기는 자유의 공간”이라고 되어있었다. 부스 공간 약 3개를 모아놓은 크기인 이 쉼터에는 수많은 노란색, 베이지색 빈백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번갈아가며 누웠다. 실제로 시설에서 놀러오신 분들이나 장년층 노년층의 보호자들이 쉼터를 요긴하게 사용하는 모습이 보였고, 축제에 참여한지 한 시간 반쯤 지났을 때 다리가 아파진 나와 친구들도 한 빈백에 함께 앉았다. 다양한 정신과 몸의 건강과 공존에 대해 이야기하는 축제라서 이러한 ‘쉼’과 ‘편한’ 대화의 공간이 의식적으로 조성되어있다는 점이 다른 축제에 비해서 너무나 좋았다.


당사자 연극에서는 정신 질환 당사자들이 시설을 탈출하려고 하지만 정책과 병원 시스템에 의해서 자꾸만 다시 가두어지는 내용에 대한 절규를 담았다. ‘당사자’들이 연기가 어설프면 어설픈 대로 진솔하게 표현을 해서 깊이 와닿았다. 극의 마지막 시퀀스에서 ‘강제입원’ ‘무조건 보호자동반’ ‘편견’ ‘119’와 같은 거대한 흰 박스들을 ‘환자’역할 연기자들이 쌓으면서 불만을 제기하려고 하면 병원 관계자들이 그들을 때리고 밀치면서 박스를 치우고 숨기는 장면이 강렬하게 마음속에 박혔다. 아무리 박스를 다시 쌓으려고 해도 끊임없이 가려지고 지워지는 상황에 대한 절망을 담아, 환자들은 다 같이 모여 소리쳤다:

우리가 여기에 있다!


[ 당사자성과 다양성? ]

여태 가본 퍼레이드 중 가장 참가자 연령 및 젠더가 다양했다. 그것은 정신질환 당사자들의 나이가 다양하기 때문인 것도 같다. 가면을 만들기 위해 온 어린 아이들 외에 축제의 당사자들과 그 온 가족과 함께 놀러온 경우가 많아서, 이렇게까지 ‘온 가족의 동행’이 많이 보이는 축제도 처음이었다. 전국의 시설에서 단체로 오셨고 보호자들도 많이 동행하셔서 나들이의 설렘을 계속 이야기하시고 나와 친구들을 대견하거나 귀엽다는 눈으로 바라보시는 어른들도 있었다. 다른 축제에 비해 친밀하고 온화한 느낌이 큰 이유 중 하나였던 것 같다.


그런데 분명 이번 매드프라이드의 포스터도, 안내지도, 드레스코드도 네온 컬러였는데, 드레스코드가 검정이었던 마냥 당사자분들과 보호자 분들은 검정색 일상복을 입고 오셨다. 우리를 포함해 몇몇의 청년들만이 화려한 색깔이라도 갖추어입고 가려고 노력한 차림새였다. 적은 수의 청년을 보면서 여러 가지 마음이 교차했다. 이 공간을 차지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분명 이 운동의 ‘당사자’나 그 가족이었고, 그래서 매드 프라이드를 취재하러 온 여러 방송사에서는 ‘무난한 서울 시민’ 참가자를 찾기가 힘들었는지 자꾸만 나와 다른 연대생 참가자들의 주위를 배회하며 서너 번씩 반복해 인터뷰를 요청했다. 당사자가 주축이 된 운동이 당연하면서도 이렇게나 청년이 없는 운동이 낯설었다. 한국의 퀴어퍼레이드, 여성 운동의 강연이나 행진들, 비건페스티벌이 거의 20대를 주축으로 삼아 진행되고 있고, 그들의 ‘머릿수’로 채워지고 있는 것에 비교해서 현저히 20대가 적었기 때문이다. 다른 운동에 비해 장애나 빈곤 운동은 젊은 당사자의 비율이 높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고,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정신질환에 대한 무지함 때문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한편 그러해서 우리 세 명이 살짝 겉도는 느낌도 있었다. 우리는 모든 당사자 참가자 분들과 초면인 사이였고, 정신 질환 내러티브도 다른 약자 내러티브에 비해선 익숙하게 느끼지 못했다. ‘당사자’가 아닌 우리가 ‘비당사자’로서 어떻게 연대하고 앨라이임을 증명하며 이 운동에 힘을 실을 수 있을까? 이곳에 참여한 것만으로 과연 충분한 건지, 자꾸만 작은 의심이 속에서 맴돌았다. 지난 5월에 서울 혁신파크에서 비건 페스티벌에 참여했었는데, 비건 운동은 거의 완전한 ‘비당사자’ 운동임에도 그때의 나는 그 힘과 의의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었다. 당사자성에 대한 여러 고민을 얻었다.


이런 축제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연령, 계층, 혹은 당사자들이 모여서인지 이렇게 큰 규모로 조직되거나 운동을 해본 적이 없다는 티도 많이 났다.

전체적으로 어수선한 느낌이 강했다. 당사자 연극은 갑자기 공지도 없이 시작했고 어물쩡 끝이 났다. 연극이 끝나자마자 배우들이 내려와서 모이기에 그저 함께 이야기를 나누시는 줄 알았는데 그렇게 행진이 시작했다. 시끄럽고 울분 섞인 태극 집회와 기독 집회 사이에서 매드 프라이드 행진마저도 조용하고 평화롭게 이루어졌다. 이에 나와 친구들은 모두 당황스러워하기도 하고 계속 “지금 뭐하는거야?” “그냥 이렇게 가면 되는건가?” 라며 우리끼리 답 없는 질문을 거듭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1회차라서 이렇게 어수선하고 정리되지 않은 느낌이 강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점차 어쩌면 규범적 대화나 관계성에서 벗어나있는 정신질환자들의 운동이고 축제인만큼, 이 모임의 숨결 같은 어수선함이고 이 집단의 다채로움과 한쌍인 고유의 특질일 수 있겠다고도 생각했다. 아무래도 퀴어퍼레이드나 여성행진은 중산층 고학력자 당사자가 많아서 그런지 자신을 언어화하는 데에 상대적으로 익숙하고 비유나 상징을 삼는 데에 있어서도 능숙하다. 그런데 매드퍼레이드에서 만난 언어들은 내가 익숙한 그 어떠한 담론과도 다르고, 그렇게 일반화하고 정돈할 수 있는 언어도 아니었다. 하지만 정돈된 언어가 아니어도 충분히 진솔하고 중요했다. 거의 광화문 광장 한 바퀴를 돌고나서야 부산 시설에서 나오신 분들이 행진 구호를 함께 열창하기 시작했다:

자유가 치료다!

[ 그 외 감상 ]

다른 아쉬운 점이라고 하면, ‘자본’의 사용 문제였다. 앞서 말했듯, 퀴어퍼레이드나 많은 여성 운동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득권인 중산층 고학력자를 위주로 진행되어서인지, 자본이 있어야 굴러갈 수 있는 운동의 시스템을 강하게 내제화하고 있다. 나는 퀴어퍼레이드에서 “정신적지지”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에 걸맞는 금전적 지지와 교류가 중심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 다른 약자 축제와 구별되는 중요한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연대나 시민권 쟁취를 다들 너무 거룩하고 고상하고 비금전적으로 생각하는데 퀴퍼는 그에서 벗어나 무엇을 소비하기로 하는지가 이념을 표출하는 창구이자 연대체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한 20세기 첫 운동 현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런 자본과 머릿수의 정치에 있어 확고한 ‘색깔’과 가시적 심벌이 있는 것의 장점 또한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이번 제 1회 매드 프라이드에서 공식 굿즈로 노란 담요, 네온 텀블러, 스티커, 뱃지를 제작 판매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뱃지와 텀블러에 관심을 가졌지만 뱃지와 텀블러는 만오천원짜리 노란 담요를 사야만 추가적으로 만원, 이 만원을 내고서야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아무도 그 담요는 가지고 싶지 않아서, 공식 굿즈의 후원 진입 장벽이 너무 높아져버렸다. 전체적으로 굿즈의 미비함이나 판매 전략이 아쉬웠고, 수익을 내서 장기적으로 다른 사업에 쓸 수 있게끔 하는 부스가 아니라 일회성으로 정신질환에 대해 보여주기만 하는 부스 구성이 아쉬웠다. 그리고 확고한 ‘색’에 대해서는, 첫 퍼레이드의 컬러를 하필 ‘네온’으로 지정한 게 많이 아쉬웠다. 2019 트렌드컬러인 네온색 옷이나 물건을 준비할 수 있으려면 그것도 시간과 돈이 필요하지 않나. ‘파란 말’과 ‘하얀 침대’를 정신질환의 심벌로 삼고 그 두 개를 밀면서 행진을 한 만큼, 아예 그 말과 같은 쨍한 블루 컬러를 드레스코드로 삼았다면, 조금 더 무난할 지언정 참가자들이 맞춰입기도 더 편했을 것이고 훨씬 시각적으로 일관성있고 끈끈해보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수선하고 아쉬울 지언정 이렇게 길거리와 공간을 채울  있어 고마운 자리였다. 여러 기자분들이 인터뷰를 요청하며 나에게  퍼레이드의 의의가 무엇일지 물으셨다.  수많은 당사자들을 앞에두고 대체 내가 무슨 말을   있을지 고민이 되었다. 대부분의 인터뷰를 거절하고, 절박해보이는  젊은 여기자  분에게만 응했다. 결국 내가   있는 것은 다만 가장 뻔하고 당연한  뿐이라 생각하여 짧게 대답했다: “우리나라 언론매체에서는 현재 정신장애인이나 정신질환자들이 완전히 지워지다가 범죄, 불미스런 사건과 연관해서만 소환되기 때문에, 이렇게   없이 평화롭게 서울 중앙의  시공간을 차지하는 것을 일반 사회에게 보여주고 소통하는 것만으로도 의의가 있다고 생각해요. 여러 사람이 단절된 시설 바깥에 나와서 함께 살아가고 살을 부대끼는 경험 자체도 중요하고요.”


자리가 마련해주는 마음가짐이 분명 있다. 1, 4년 간 이름과 얼굴은 알았지만 삶의 면면은 잘 몰랐던 친구들과 함께 갔던 것이었다. 이런 자리에 함께 간 김에 툭툭 마음 이야기들을 했다. 작년보다 편안해진 삶, 각자의 어떠한 우울과 정신적 버거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요즘 좋아보여요. 사실은요, 작년에 죽음을 생각했어요. 지금은 괜찮아요. 사실은요, 그때 벼랑 끝에 내몰린 기분이었어요. 사실은요, 얼마 전에 그 일을 보니까 온 몸에 힘이 쏙 빠지고 도무지 기력 회복이 되지가 않더라고요.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해서 말 못했던, 사실을 별 것 맞는 일들을 진짜로 티끌처럼 말해버릴 수 있는 짧고 긴 시공간이었다. 나도 모르는 새에 내 삶 안에 갇혀있었던 무게들을 조금은 내려놓고 돌아왔다. 매드프라이드가 서울의 광화문에 매해 돌아오는 행사가 되었으면 한다.



20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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