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짜증이 많은 사람이다.
유독 가족에게 짜증을 많이 내고,
큰소리치며 화를 자주 낸다.
하지만 정작 화를 내야 하는 상황,
교육을 해야 하는 상황은 회피했다.
그리고, 돈.
돈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어릴 때 6·25 피난길에도 올라본 아빠는
삼시세끼 제대로 먹는 게 힘들었다고 했다.
산에 들어가 칡뿌리를 캐 먹는 게 다반사였다고.
고생을 많이 해서 돈 돈 거린다곤 하지만
어찌 자식의 미래보다,
자식보다 돈이 더 중요할 수 있단 말인가.
이해되지 않았다.
실업고를 졸업해 돈을 벌어오는
친구의 자식과 우리를 늘 비교했다.
너희도 실업고 가서 돈이나 벌라고.
대학이 밥을 먹여주냐, 돈을 주냐며.
그렇게 꿈을 짓밟았다.
나는 그래야만 하는 줄 알았다.
아빠 말대로 그래야만 하는 줄 알고 살았다.
주변에서도 다 그렇다니까..
나도 실업고 가서 돈이나 벌어야 되는 사람인 줄 알았다.
세뇌 교육을 언니 때부터 받은 나는,
꿈이 없었다.
학교에서 꿈이나 진로를 적으라고 하면
내 현실과는 너무 먼 진로와 꿈.
무얼 적어야 할지 몰랐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평범한 직업 아무거나 적어냈다.
영혼 없는 단어에 불과했다.
정말로 내겐
진로 희망사항이 없었다.
꿈이 없었다.
나는.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왜 여기 있는지,
왜 살아가고 있는지 몰랐다.
그저, 실업고 가서 돈을 벌어야 되는 사람.
그게 나였다.
먹먹하다.
열 살 즈음부터 시작된 꿈 없는. 아이의 삶.
그저 살아 있기에 살았을 뿐이었고,
공부고 뭐고, 농사일이 먼저였다.
양파 심고, 마늘 심고, 모내기하고,
농약 칠 때 줄 당겨주고,
볏단 묶고, 옮기고, 타작하고, 이삭 줍고.
이른 새벽부터
그늘하나 없는 땡볕에 6~7시간 일하고,
점심 먹고, 또 6~7시간.
해가 떨어져 앞이 잘 보이지 않아도 일을 했다.
어리다고 예외는 없었다.
5~6살부터 시작된 농사일.
나는 농사일이 너무 싫었다.
하루 12~14시간 동안 그 뜨거운 논에 있었구나.
그래서 그게 너무 고되고 힘들었구나.
지금 글을 쓰면서야 알았다.
12시간 이상 일했다는 사실을.
매년 돌아오는 그 농사일이
끔찍하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너무 버거웠다.
농번기의 주말이 가장 싫었다.
차라리 학교 가는 평일이 나았다.
학교 가는 날은 저녁에만 몇 시간 일하면 되니까.
고되도 참을 수 있을 정도였다.
엄마아빤, 어린 우리를 왜 그리도 부려댔을까.
우리가 힘든지 단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고,
오늘은 이 논부터 시작해서,
저기 저 논까지 해야 한다며. 그냥 밀어붙였다.
저기 저 논.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마치 나의 절망스러운 마음처럼.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고,
정말 몸이 부서져라 했다.
나는 요령 피울 줄 모르는 아이였다.
작은 몸에 볏단을 어깨 한가득 얹어서
타작하는 기계까지 나르고, 또 나르고.
하루 종일 볏단을 나르고 타작을 하면
온몸이 까끌거렸다. 콧속까지.
까끌거리는 게 너무 싫었다.
살을 다 도려내고 싶었다.
시험 기간이라 공부해야 한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 집구석이었다.
원래부터, 우리를 낳은 목적이
부족한 일손 채우기였을 테니.
나는, 그렇게 논과 밭에서 내 힘만 보태고
일만 끝내면 그만이었다.
재워주고, 밥 주니까.
꿈같은 거.
양파 심을 때, 마늘 심을 때 쪼그리고 앉아
내 손으로 다 심었지.
그 오랜 시간,
입을 꼭 다문 채.
양파 심고, 마늘 심을 때
산산조각 난 내 꿈도
조각조각 땅에 구멍 내서 심었지. 툭.툭.
양파 뽑을 때, 마늘 뽑을 때
내 꿈도 같이 뽑혀
흙먼지 되어 날아갔지. 어디론가.
내 콧구멍 속 시커먼 흙먼지.
흥~ 한번 풀어내 버려지는
그런 하찮은 흙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