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번기는 꼭, 시험 기간과 겹쳤다.
우리 형제들은 시험공부대신 논에 가서 일손을 도왔다.
새벽이슬을 맞으며 나가선, 땡볕에서, 노을이 질 때까지. 하루 종일.
몸이 너무 고돼서 공부할 기력조차 없었다.
그런데, 우리 모두 성적은 상위권이었다.
참, 아이러니한 성적표였다.
나는 중1때 학교가 폐교되면서,
다른 중학교로 배치되어 전학을 갔다.
거기서 나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이젠 시험공부를 하지 않으면,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없는 시기였던가.
내가 공부의 흥미를 잃고, 끈을 놓은 시기이기도 했다.
새로운 학교, 새로운 친구들, 점점 어려워지던 수학과 영어.
내 삶이 피곤해서 그냥 놓아버렸던 걸까..
진도를 쫓아가기 버거웠다.
그리고,
아빠가 정해놓은 나의 진로.
돈 버는 기계.
나는 무의식 중에 내 삶을 놓고 있었던 것이다.
폐교된 나의 첫 중학교.
그곳에 첫 발령받아 오셨던 국어선생님.
설명 한 번이면 다 이해할 만큼 인상적인 수업을 하셨던,
내가 국어를 좋아하게 된 계기의
예쁘고 친절하신, 내가 가장 좋아했던 선생님.
전학 간 학교에
그 선생님이 계셨다.
낯선 이곳에서, 우리 국어선생님이라니..
나와 처음을 함께 했던 그분.
이 낯선 곳에서도,
다시 처음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다.
새 학교에서의 첫 시험.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아 들었지만,
내겐 큰 타격감은 없었다.
이미 예상했었고,
내 성적에 관심 있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그런데
복도에서 우연히 만난 국어선생님.
보자마자. 서러움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그렇게 선생님 옆에 앉아 한참을 울었던 것 같다.
평균 40점 이상 떨어진 성적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내가 기대어 울 수 있는 사람, 그런 어른이 선생님밖에 없었다.
옆에 앉은 선생님의 온기가 좋았다.
어깨를 토닥여주는 손길이.. 너무도 따듯했다.
내겐 왜 그런 어른이 없었을까..
내가 가장 의지해야 할 사람, 부모님.
정작, 엄마아빤 일을 해야 할 때만 나를 애타게 찾고,
새로운 학교생활은 어떤지, 성적은 어떤지,
힘든 건 없는지, 왜 한 번도 물어봐주지 않았을까.
마음은 챙겨주지 않고,
왜 어린 내가 농사일과 집안일까지 챙기길 바랬던 걸까..
나는 그렇게
수십 년을
책상 앞 연필 대신,
흙발로 논에 쪼그려 앉아
양파,마늘을 쥐고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