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부당함을 참지 못하는가.
복리후생 좋은 중견기업 다니다가,
입사하게 된 사회복지기관.
칼퇴는 찾아볼 수 없고, 수시로 야근.
그렇다고 야근수당을 다 받는 것도 아니었다.
정해진 예산 범위 내에서 아주 일부만 지급되었다.
더 놀라웠던 건, 인건비 및 운영비 가이드라인 기준표.
4년 전 기준표로 지급되고 있었다.
매년 시급도 오르고,
모든 인건비와 물가가 상승하고 있는데,
4년 전의 기준표로
현재의 시급도 안 되는 급여가 지급되고 있었다.
지방분권화 되고, 시 예산이 없다는 이유였다.
과연, 시 예산이 없는 게 맞는 걸까?
다른 예산으로 허비되고,
정작 쓰여야 하는 곳에 쓰이지 못하는 건 아닐까.
지방분권이니,
중앙정부는 다른 복지종사자들에 비해
4년이나 뒤처진 급여를 받고 있는 여기,
이 종사자들을 나 몰라라 해도 되는 것인가.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는 직원들,
알바시급도 안 되는 급여라니..
시작부터 불합리와 마주한 나는,
이미 달궈지고 있었다.
부족한 예산이 낳은 또 다른 불합리.
직원들에게 배정되던 후원자 모집.
그 할당량을 채워야 했다.
회식은 아예 없었고,
1년 동안 개인의 성장을 위한 미션이 주어졌다.
후원자모집 포함, 자신이 정한 목표를 달성해야 했다.
달성하지 못할 경우, 그 사람이. 1년에 한번하는 워크숍이나 회식 비용을 부담해야 했다.
입사한 첫 해.
그런 관행을 몰랐던 나와 다른 직원.
두 명이서 40만원 상당의 비용을 나눠서 자비로 부담했다.
내게 그것은 징벌이었다.
회사에서 징벌제도라니..
명절이 다가오면, 기관 운영위원들의 선물을 준비했다.
그 비용을 직원들이 1/n로 부담했다.
그런 우리가 받는 명절선물은 겨우 1만원 남짓.
쥐꼬리 월급에, 자비로 부담해야 하는것 투성이.
부당하게 강요되는 것들을, 직원들은 왜 순순히 따르고 있는 걸까?
나는 점점 더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월 2회 열리는 전체 회의는, 퇴근시간 이후에 시작됐다.
저녁 7시쯤 시작해, 밤 11시~12시 무렵에야 끝이 났다.
기관 평가 시즌이 되면,
새벽 2~3시까지 야근. 잠깐 눈을 붙인 뒤,
다시 출근하는 날들이 한 달 이상 지속됐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높은 성과를 내고 있는데,
그 노동의 대가는 왜 지급받지 못하는가.
끝나지 않는 부당함,
계속되는 불합리를 그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나는 1년간 지켜보며,
뜨거워지는 나를 억누르고 있었다.
더 이상은 묵인, 묵과할 수 없었다.
이 모든 상황들이 화가 나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내 가슴이 뜨거워 폭발하기 일보직전이었다.
직원들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보통의 회사에 대해,
보편적인 제도에 대해.
그리고,
전체회의시간에 소장님께 정식으로 건의를 했다.
소장님은 단번에 거절표명.
"사회복지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거다"
맞다. 그래서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사회복지계의 큰 나무 같은 소장님 의견에
그 누구도 반대의사를 표하지 못했지만,
나는 그런 큰 그늘, 그 위압감에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이다.
소장님의 대답은, 나의 확신이 되었다.
더욱 객관적인 시선으로,
이 상황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내가 해야 했다.
나의 저항, 맞서야 하는 이유는
더욱 명료하고, 분명해졌다.
나는 전체회의 시간에 또다시 말했다.
지속적으로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소장님은 전국적으로도 영향력 크고,
카리스마로 유명한 분이다.
그런데 일개 신입직원, 전공자도 아닌 사람이
자신을 대적하는 말을 했을 때,
당황하셨을 것이다.
나는 소장님을 대적하려던 게 아니다.
내가 서있는 이곳,
이 부당함과 불합리로부터 나와 직원들을 지키려 했을 뿐이다.
그 앞에, 가장 가까운 곳에 소장님이 서 계셨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 앞에 서서 우리의 목소리를 더욱 키워줄 분이란 걸
무의식 중에 알고 있었다.
다른 직원들도 이런저런 불만을 나에게 말하기 시작했고,
내가 앞장서서 말해주길 기대했다.
당연한 직장문화로 받아들여왔던, 다른 직원들이.
바꿔야 하는 부당한 것이라는, 나의 반복된 외침에.
같이 변하기 시작했다.
몇 번의 외침이었던가,
몇 번의 저항을 했던가.
소장님은,
우리들이 용인할 수 있는 선, 그 조정 방안을 내주셨다.
몇 년에 걸친 변화의 시작이었고,
우리는 느리지만 조금씩 변해갔다.
다른 직원들도 점차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우리의 목소리를
소장님도 더욱 유연한 마인드로 들어주셨다.
그리고, 시 예산 담당자와 시의원 앞에 서서 큰 목소리를 내주시던 소장님.
내가 수년간 만든 자료.
수십 개의 기관, 수백 명의 직원 급여표를 토대로
과거 기준에 머물렀던 인건비도
현행 기준에 맞추어 지급될 수 있도록 점진적으로 변화되어 갔다.
나의 저항, 투쟁은
그 무엇도 한 번에, 단번에 되진 않았다.
하지만,
나는 굴복하거나 멈추지 않았다.
나는,
왜 이토록 부당, 불합리를 참지 못할까.
왜 눈감고 그냥 넘어가지 못할까.
온 몸을 던져서라도 총대를 메고 나아가는가.
아마도,
그런 환경 속에서 살아왔기에.
누구도 구해주지 않았던 그 고된 시간.
내가 그곳을 벗어나는 방법은.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내가 서 있는 그 땅에서
나를 찌르는 것들에 맞서 저항하고, 투쟁해야 했다.
내가 그곳에서 온전한 나로 서 있기 위해.
그것이 내가 살아남는 방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