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된장찌개가 그립다..
엄마는 매일 새벽,
눈을 뜰 때마다 어떤 마음으로 몸을 일으켰을까.
엄마의 하루는 새벽 4~5시에 시작됐다.
기숙사 식당으로 출근해 아침일과를 마치면,
잠시 휴식시간.
다른 사람들이 자거나 쉬는 시간에
엄마는, 논으로 달려가 농사일을 해놓고,
다시 돌아가 식당일을 했다.
퇴근 후에도, 남은 농사일과 집안일을 했고,
자정이 넘어서야 쓰러지듯 잠드셨다.
고작 4시간.
잠 자는 시간만이 휴식시간이었던 엄마.
그 고된 하루하루가 엄마의 기억을 지운 걸까.
엄마는 많은 것들을 기억하지 못했고,
금방 잊었다.
엄마는,
늘 바쁘고 헌신적이었다.
내가 엄마가 되고 보니,
나는 그렇게까지 희생하며 살 수 없을 것 같다.
몸이 고될 텐데도 쉬지 않고
묵묵히 기계처럼 밀린 일들을 해치웠다.
그 많은 노동들을 감당하는데
모든 에너지를 써버려 마음을 돌볼 여유가 없었던 걸까.
자신의 마음도.
자식의 마음도.
흐르는 세월에 아프고 병들어갔다.
자식의 몸도.
자신의 몸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을 쉬지 않는다.
고된 노동을 견디게 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엄마를 쉬지 못하게 했던 걸까.
고된 노동이
엄마를 살아내게 하는 힘이었을까.
엄마는 60대부터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했고,
꼬부랑 할머니처럼 굽은 허리로도
일을 놓지 않았다.
어느 날 아침,
다리가 끊어질듯한 극심한 통증으로
일어날 수 없다던 엄마.
119를 불러 병원에 갔고,
무릎 연골이 다 닳아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고통을 말하는 사람.
수술 후,
재활을 하며 쉬어야 할 때도
기어코 시장 좌판에 나가 장사를 했고,
멀쩡한 세탁기는 장식용.
늘 하던 대로
도랑에서 손빨래를 했다.
허리 한 번
무릎 한 번
제대로 펴지도 못하며 살아낸 세월들.
그 노동은
엄마의 몸을 짓눌렀고
엄마는 말하지 않고 참으며,
그 노동에 기대어 살아가는 듯했다.
오랜 세월 반복된 노동에
세뇌당한 건가.
왜 고통도 마다하지 않고
쉬지 않고 일을 하는 걸까.
노동이
엄마를 고통에 무디고
무딘 사람으로 만든 걸까.
엄마는 무뎌 보였지만,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그 순간엔 또 큰소리치며,
입바른 소리를 했다.
그 모습은 어쩌면 내게
희망이었다.
내가 보내는 SOS.
그 상황을 해결해 줄 유일한 희망.
하지만,
엄마는 언니의 행동은 별일 아니라 여긴 걸까.
언니도 자식이기에,
언니의 문제를 알고도 눈 감은 걸까.
나는 수년간,
수백 번 수천번을 외쳤지만,
엄마는 듣지 못했고, 알지 못했다.
엄마의 기억에 나의 외침은 없었다.
그저
'언니니깐, 동생인 니가 양보해라.'
영혼 없는 그 말만이 살아있었다.
그 말은 나를 두 번 죽이는 말이었다.
엄마는,
그 긴 시간 동안
자식을 위해
자신을 갈아 넣는 노동을 해 온
가슴 아픈 사람.
그런데,
나의 증오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언니의 일을
알면서도 묵인하고, 방치했다.
나의 수많은 SOS에
어떠한 대응도,
어떠한 해결도 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더 분노케 하는 말들만 했다.
나는 엄마를 사랑하지도,
마음껏 증오하지도 못하고 있다.
엄마는..
자식이 가장 중요했을까...
엄마 삶을 돌아보면, 아무것도 없다.
자식밖에.
헌데,
해소되지 않은 감정을 안은채,
엄마에게조차 상처받아 무너진 나는..
이 자식은, 어찌해야 하나.
어찌 살아가야 하나..
엄마의 고된 시간들은,
대체 누구를 위함이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