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능의 삶.

by 류온


형제 사이의 갈등, 폭력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모두가 그것을 트라우마로 안고 살아가진 않는다.


그 차이는,

부모가 개입해서 감정을 풀어주고

뒤늦게라도 최소한의 보호자 역할을 해줬기 때문이다.


내 부모는 그러지 못했다.

나의 상처는 덧나고 덧나기를 거듭하며,

아물 겨를도 없었다.


지금까지도

그 묵직한 응어리를 오롯이 혼자 감당하며 살아내고 있다.

내 안에 크게 자리 잡은 트라우마.

그 누구도 알지 못했고, 치유하지 못했다.

나 자신조차도.


나의 뇌는 본능적으로 기억을 차단했다.

스스로 보호하기 위한 생존방식.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악의 최선책.


수십 년간 반복된 일인데

말하려고 하면,

흐릿한 기억때문에 구체적으로 말하지 못했다.

현실이 아닌 꿈이었나

내 기억이 왜곡된건가

의심까지 했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스스로 지우는 해리.

그 언저리에 나는 오래 머물러 있었다.


분명 치열하게 참고 버티며 살았는데,

그 치열한 걸음들이 시간을 멀리뛰기라도 한 듯,

커다란 공백만 남아있었다.

기억의 공백, 삶의 공백.

그래서

내 안에 아무것도 없는 듯한,

텅 빈 마음으로 멍하게 살아왔었다.


내 가슴속 커다란 구멍.

그 블랙홀로

시간과 감정, 존재까지 빨려 들어갔다.

나란 사람이..사라지고 있었다.


기억의 블랙홀

감정의 블랙홀

그래서 끝이 없다고 느꼈구나.


내가 자주 느끼던

바닥 없는,

끝없는,

깊은 절망

깊은 슬픔

깊은 외로움.


이 모든 것의 근원은

스스로 지운 기억에 있었다.


깊고 커다란 그 공백.

이제는 내가 채워야 한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기에.


나의 본능이 저지른 일,

응당 본능이 마무리해야 한다.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던 나를 일으켜 세워

여기가 끝임을,

끝이자 시작임을,

회피만으로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음을,

직면시켜야 한다.


텅 빈 마음으로 살아온 세월.

그것을 대물림할 순 없다.


텅 빈 채로

내 아이의 엄마가 될 수 없다.


내가 해야 한다.

나로서 끊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꺼내야만 하는 이야기.

수십 년 동안 내 안에서 곪고 곪아온,

생각만으로도

심장이.. 손이.. 떨리는

입 밖으로 뱉어내지 못했던 그 이야기.



그곳에

언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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