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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래블 Jun 06. 2019

1. 산티아고로 가는 길, 루르드 여행(1)

'내가 여기 왜 왔지?!' 젠장, 산티아고 순례기


루르드?


한 달 안식휴가 동안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순례자들은 보통 프랑스 남부의 '생장'이라는 마을에서 순례를 시작했다. 그런데 순례길에 대해 알아보던 중 생장 근처에 '루르드'라는 가톨릭 성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루르드는 1858년 2월 11일부터 7월 16일까지 14살 소녀 베르나데트에게 18차례에 걸쳐 성모님이 나타난 기적이 있는 곳이다. 베르나데트가 파낸 샘물이 아직도 마르지 않고 솟아나고 있으며, 이 샘물로 몸을 씻으면 병이 치유된다고 알려져 기적의 샘물로 유명해졌다고 한다. 매년 약 5백만 명의 순례자와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는 나만 몰랐던 엄청난 곳이었다.

가톨릭 신자로서 생장까지 가는데 이렇게 유명한 성지를 안 가기엔 너무 섭섭했다. 그래서 순례길 걷는 일정을 조금 줄이고 대신 루르드를 넣었다.  


가톨릭 성지 루르드



루르드로 가는 길


인천공항에서 아침 9시 비행기를 탔다. 파리로 가는 비행기라 그런지 다들 트렌치코트를 입고 화려했다. 나만 보라색 등산 잠바에 등산배낭을 메고 있는... 파리에 간다기엔 정말 이상한 차림새였다. 상큼한 배낭여행룩도 아니고 그냥 북한산에 간다고 하면 딱일법한 복장이었다. (실제로 내가 입은 등산 잠바는 산지 10년도 넘은 엄마의 등산복이었다. 순례길 다녀와서 버릴 옷이라고 생각하고 입은 것이다.)


짐가방. 출발 전날까지 짐도 제대로 안 싸고 있었다..


파리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짐을 찾으러 나오는데 생각보다 나오는 길이 복잡했다. 올해만 벌서 5번째 출국이었다. 하지만 잘난 척하는 마음 같은 거 없이 그냥 한국인들만 졸졸 따라갔다.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한 번도 혼자 여행을 간 적이 없었다. 해외는 물론 국내도 말이다. 여행 중간에 잠깐 혼자가 된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인 여행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행동 하나하나 더 조심스러웠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언제나 조마조마한 입국심사까지 무사히 마치고 나오니 바로 le bus 표지판이 보였다. 출국하기 전날, 뭐 빠뜨린 것 없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파리 공항에 내려서 기차역까지 어떻게 가는지 미리 찾아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는 막연하게 공항 information에 가서 물어보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혹시 모르니 미리 알아놓는 게 좋을 것 같아 인터넷으로 부랴부랴 검색했다. 공항에서 몽타르나스 역까지 가는 데는 버스와 지하철이 있었다. 지하철이 조금 더 저렴했지만 버스가 한 번에 편하게 가는 것 같아 버스를 선택했다. 미리 알아본 대로 le bus 4번을 타고 몽타르나스 역으로 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엇이 그렇게 바빴기에 출발 전 여행 준비를 이리도 안 했을까 싶다. 여행 전 내가 준비한 것은 짐가방과 국제선 왕복 티켓, 파리에서 루르드로 가는 기차표, 루르드 숙소 예약(2박)이 전부였다. 뭐 이 정도면 충분한 건가?!)


버스 안에서 짧게 즐긴 파리의 가을


버스 안에서 아주 잠시 파리의 가을을 만끽했다. 해가 기울어 황금빛으로 빛나는 파리 시내는 아름다웠다. 나뭇잎이 듬성듬성 달린 키가 큰 가로수를 따라 햇살이 흔들렸다. 1시간 정도 타고 갔을까 어느새 몽타르나스 역에 도착했다. 기차 시간까지는 아주 넉넉했다. 역을 살펴보며 내가 탈 곳이 어딘지 확인하고 사람들이 어떻게 기차 플랫폼으로 들어가는지도 미리 봐 두었다. 모든 사항을 점검하고도 시간이 남아 paul에서 토마토 모짜렐라 샌드위치와 초코 마카롱을 사서 책을 읽으며 기차를 기다렸다.


기차를 기다리며 읽었던 책은 10년 전 크리스마스 때 내가 엄마에게 선물했던 '산티아고의 두 여자'였다. 서점에 갔다가 엄마가 이 책을 보고는 산티아고에 가보고 싶다며 크리스마스 선물로 한 권 사달라고 했다. 그때는 산티아고가 한국인들에게 유명한 때도 아니었다. 책을 선물하고 나도 그 책을 읽으며 이런 곳도 있구나 싶었다. 그리고 언젠가 가보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만 했다. 그런데 10년 후 엄마를 대신해 내가 산티아고로 가게 되었다. 10년 전에 선물한 그 책을 다시 읽으며 산티아고로 향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책을 읽다 보니 기차 시간이 됐다. 무사히 테제베(TGV, 프랑스 고속열차)를 탔다. 테제베를 타고 루르드로 향하며 잘 다녀오라고 응원해준 주위 사람들을 떠올렸다. 출발 전날 잘 다녀오라고 연락해준 이모, 침대에 누워있는 나에게 발 마사지를 해준 엄마, 공항리무진 타는 곳까지 새벽부터 일어나 데려다준 아빠, 잘 다녀오라고 비행기 출발 시간에 맞춰 아침에 카톡 해준 제제 등 이렇게 날 생각해주는 사람이 많다. 떨리는 마음으로 한 달 동안 행복하고 가슴 충만한 여행이 되길 기도했다.


테제베 내부


해가 지고 기차 밖이 어두워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멀미가 나서 토할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한국의 새벽부터 프랑스 시각으로 밤이 될 때까지 거의 24시간 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잤던 것이다. 비행기 안에서는 '주토피아', '조선 명탐정' 등 내내 영화를 보고, 비행기에서 내려서는 혼자 다니니까 짐 걱정도 되고 내릴 역을 놓칠까 봐 졸려도 맘 놓고 잘 수가 없었다. 결국 화장실에 가서 토했다. 으~~~~ 토하고 자리로 다시 돌아왔는데 벌써부터 여행이 힘들다. 젠장...



루르드 도착


루르드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자정이 지난 한밤이었다. 구글 지도를 검색하며 예약한 숙소로 향했다. 역에서 걸어갈 수 있는 곳으로 멀지 않았지만 낯선 여행지에 밤늦게 도착하니 긴장됐다. 골목에 사람도 없고 괜히 무서웠다. 여기가 맞나?! 구글 지도가 여기라고 말해주지만 겉에서 봤을 때 호텔이라기보다는 일반 가정집 같았다. 영화에서나 볼법한 폭이 얇고 높은 대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문을 두드리고 벨을 눌렀다. 하지만 안에서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잉, 여기 맞는데?! 멘붕쓰... 나 어떡하지... 어디로 전화를 해야 하는 거지...


예약 사이트에서 호텔을 예약한 것이 아니고 루르드에 계신다는 한국인 수녀님께 메일을 드려 예약했기에 어디로 연락해야 할지도 몰랐다. 고민하며 벨을 또 누르고 문을 계속 두드렸다.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는데 다행히 안에서 잠옷 차림의 젊은 여자가 나왔다. 알고 보니 주인 할아버지가 나를 위해 역으로 마중을 나갔는데 길이 엇갈린 모양이었다. 문을 열어준 여자는 할아버지의 손녀딸이었다. 나는 3층의 노란 벽에 오래된 나무 가구가 채워진 방을 배정받았다. 조금 뒤 역에서 돌아온 할아버지는 시간이 늦었으니 간단히 씻고 자라고 했다. 안 그래도 너무 피곤해서 씻기는커녕 그냥 잘 생각이었다.


밤에는 무서웠지만 낮에는 이렇게 아기자기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plaisance hotel



루르드 여행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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