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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래블 Jun 08. 2019

2. 치유의 성지, 루르드여행(2)

'내가 여기 왜 왔지?!' 젠장, 산티아고 순례기  


루르드의 아침 


호텔 객실에서 바라본 루르드의 아침 풍경


어제 너무 피곤했는지 아침 7시 알람을 듣고서야 눈을 떴다. 그렇게 하루 만에 시차 적응을 완료했다. 샤워를 하고 조식을 먹으러 1층으로 내려갔다. 빵과 과일, 따뜻한 포트에 가득 담긴 커피와 우유. 어제 기차에서 멀미할 때까지만 해도 한국음식이 너무 먹고 싶었는데 잘 자고 일어났는지 엄청 맛있게 조식을 먹었다. 특히 작은 유리병에 담긴 요거트가 맛있었다. 그리고 신기한 게 유럽만 오면 커피가 잘 먹힌다. 한국에서는 커피를 마시면 밤에 잠이 안 와서 잘 안 마시는데 유럽에서는 그런 거 상관없이 잘 먹는다. 


여행 중 빼놓을 수 없는 호텔 조식을 즐기는 기쁨 


아침부터 엄청 많이 먹고 9시쯤 루르드 성지로 향했다. 호텔 주인 할아버지가 친히 호텔 밖까지 나오셔서 어떻게 가면 되는지 성지 방향을 알려주셨다. 



오전 : 미사 참여, 루르드 둘러보기 


루르드 성지

9월 말. 아침 공기는 생각보다 쌀쌀했다. 촛불, 성모상 등을 파는 기념품 가게가 줄지어 선 골목을 따라 내려가니 금방 성지가 보였다.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우선 인포메이션 센터에 들어가 루르드 지도를 받고, 눈 앞에 보이는 성당에 들어가 보았다. 성당 안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곧 미사가 시작하려는 눈치다. 미사는 불어로 진행되었다. 성당 안은 성지순례를 온 사람들로 정말 빽빽했다. 단체로 소풍을 온듯한 청소년들도 많이 보였다.  


아름다운 루르드


미사를 마치고는 점심 전까지 루르드를 둘러보기로 했다. 성당도 예쁘지만 그 옆으로 흐르는 강과 햇살에 흔들리는 플라타너스 나뭇잎이 참 아름다웠다. 루르드에 오는 순례자들이 꼭 하는 것이 성수에 침수, 즉 몸을 담그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줄 서고, 옷을 벗고, 그러는 것이 번거로워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침수하지 않은 것이 조금 아쉽기도 하지만 꼭 침수하지 않더라도 그냥 루르드에 머무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힐링이었다. 








점심 : 호텔에서 식사


점심을 먹으러 다시 호텔로 왔다. 성지에서 호텔까지는 걸어서 5~10분 정도였다. 내가 머문 호텔은 하루 세끼가 모두 제공되는 곳이었다. 루르드는 완전 관광지이기 때문에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퀄리티가 다소 떨어지는 식당이 주로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호텔에서는 그런 레스토랑에 가기보다는 차라리 자신들의 호텔에서 식사를 할 것을 추천했다. 그리고 처음 안내받은 호텔값에 식사 비용도 포함되어 있는 것 같았다.



호텔 점심은 4코스에 와인까지 마실 수 있었다. 처음에는 호박 수프에 빵, 그다음은 샐러드, 그리고 닭고기와 감자, 마지막은 아이스크림이 디저트로 나왔다. 나는 코스가 이렇게 진행되는 줄 모르고 처음에 빵이랑 수프를 너무 많이 먹었다. 일하면서 유럽에서 미슐랭 스타까지는 아니어도 미슐랭 가이드에서 추천하는 레스토랑에서 식사할 일이 꽤 있었다. 개인적으로 그에 못지않은 식사였다고 생각한다. 메뉴 자체는 평범했지만 호텔 주인 할아버지(미카엘)의 친절함과 정성이 들어가 더욱 특별하다고 느껴졌다. 혼자 먹는 날 위해 항상 뭐 더 필요한 건 없는지, 내가 조금 먹는 것 같으면 많이 먹어야 한다고 말해주곤 했다. 화려하고 세련된 시설은 아니었지만 오래된 프랑스 주택의 다이닝룸에서 식사하는 것 역시 특별한 경험이었다. 




오후 2시 : 수녀님과 박물관 견학


점심을 먹고 오후 2시에 밀리안 수녀님을 만났다. 루르드에 계시는 한국인 수녀님이시다. 산티아고를 준비하며 네이버 카페(까친영)에서 우연히 수녀님의 이메일 주소를 알게 되었고, 수녀님께 메일을 드렸더니 직접 호텔 예약을 도와주셨다. 그리고 내가 오는 날 루르드를 안내해주시겠다고 하셨다. 처음에는 수녀님을 안 만나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그냥 혼자 돌아봐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런데 수녀님을 만나 루르드에 있는 박물관을 함께 돌며 루르드의 기적과 성인 베르나데트와 성모님의 이야기를 아주 자세히 들으니 루르드가 다르게 보였다. 원래는 침수도 안 할 생각이었고, 샘물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었는데 설명을 듣자 여기까지 왔는데 내가 마신 물 페트병에라도 샘물을 담아가서 이따 저녁에 숙소 가서 씻을 때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ㅋㅋ) 실제로 루르드에는 약수터에 들고 갈 법한 큰 물통을 들고 와 샘물을 떠가는 사람들을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다. 수녀님과 얘기를 나누며 앞으로 걸을 산티아고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었다. 이곳까지 올 수 있도록 도와준 하느님과 주변 사람들을 생각하며 내가 그들을 위해 한걸음, 한걸음 봉헌한다는 마음으로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que soy era immaculada councepciou" - "나는 원죄없이 잉태된 자"라는 뜻.
한적한 박물관

오후 3시 : 십자가의 길 산책


수녀님과 작별인사를 하니 3시쯤이었다. 수녀님께서 남은 시간 동안 어디를 가면 좋을지 몇 군데를 알려주셨다. 우선 십자가의 길을 걸었다. 산책코스라고 생각해도 좋을 만큼 길 자체가 매우 아름다웠다. 키가 큰 도토리나무가 심어져 있고, 살짝 물이든 나뭇잎 사이로 오후의 햇살이 흔들렸다. 각 처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동굴의 묻히는 등의 예수님의 이야기가 아주 사실적이고 멋지게 표현되어 있었다. 맨 마지막에 있는 동굴은 정말 예수님을 만날 것 같은 동굴의 모습이었다. 






오후 4시 이후 : 성체조배실 방문, 성체강복 참석


십자가의 길을 쭉 걷고 나서는 성체조배실을 잠깐 구경했다. 기다랗고 얇은 창을 통해 편안한 햇살이 들어오는 공간이었다. 매우 조용한 곳으로 사람들이 숨죽여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나도 잠시 앉아 묵상을 하다가 5시에 맞춰 성체강복에 갔다. 솔직히 이때는 성체강복이 뭔지 몰랐다. 성체강복은 미사랑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성당에 앉아있고 신부님이 나와서 무언가를 하는데 미사랑은 조금 달랐다. 지금 검색해보니 성체강복은 '사제가 성체로서 강복하여 주는 일'이라고 한다. 그럼 강복은 또 무엇인가? 강복도 검색해보니 '하느님이 인간에게 복을 내리는 일'이라고 한다. 그럼 성체는? '성스럽게 된 빵과 포도주를 예수님의 몸과 피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허허~ 몇십 년간 성당에 다녔는데 이렇게 기본적인 것도 모른다. 이제야 대충 알겠다. 성체강복은 신부님이 성체를 통해 하느님의 복을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인가 보다. 그때는 성체강복이 뭔지 몰라서 그냥 신부님의 행동을 쳐다보다가 사람들을 따라서 기도했다. 처음엔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그냥 감사한 사람들을 떠올렸다. 한번 떠올리자 많은 사람들이 생각났다. 엄마, 아빠. 언니, 건빵이, 이모네 가족 등. 앞으로 이 길을 걸으며 더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고 기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굉장히 큰 성당. 루르드 안에는 몇 개의 성당이 있다.
성체강복이 끝나고 들을 수 있었던 아름다운 파이프 오르간 연주. 음악을 다 듣고 성당을 나왔다.

저녁: 호텔에서 식사. 촛불행렬엔 졸려서... 못 감.


저녁도 마찬가지로 호텔에서 먹었다. 원래는 저녁을 먹고 루르드 성지에서 열리는 촛불 행렬에 가려고 했다. 촛불을 들고 행진을 하면서 기도를 드린다고 했다. 근데 너~~무 졸리고 피곤해서 못 갔다. 시차 적응 다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다음날 루르드 촛불행렬에 참여했다는 한국인을 만났는데 정말 좋은 경험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진짜 너무 피곤해서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호텔 객실에서 바라본 루르드의 모습


자기 전 침대에 누워 이곳에 초대해주신 성모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렸다. 성모님을 눈으로 본 것은 아니지만 내가 이곳에 온 것만으로도 성모님을 만난 게 아닌가 싶었다. 한국에 사는 내가 이 좋은 계절에 프랑스 남부 루르드라는 작은 마을까지 오다니. 이것이야말로 기적이다. 



P.S. 루르드의 기적


샘물을 마시거나 담는 사람들


루르드의 샘물은 병자를 고쳐준다는 이야기가 있다.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데 샘물로 인해 기적적으로 병이 고쳐진 사례가 많아 지금까지도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성지다. 실제로 루르드에서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수녀님께 기적에 관한 스토리를 자세히 듣고 루르드 성지에서 목마를 때마다 물도 좀 떠다 마시고, 마시던 500ml 페트병에 샘물을 담아와 샤워할 때 사용도 했다. ㅋㅋ 나의 바람은 제발 여드름 좀 안 나는 것.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 여드름이 안 난다. 잉?



루르드에 관한 설명이 자세히 적혀있는 기사 

http://www.kg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03468



루르드 여행 TIP


루르드 호텔 이름 : Plaisance Hotel 

- 객실 내 화장실 없고, 공용 화장실을 써야 함.

- 식사 3끼 제공

- 호텔이라기보다는 민박이나 게스트하우스 같은 곳이다. 호텔에서 제공할 법한 서비스와 시설을 바라고 가면 실망하겠지만, 따뜻한 미카엘 아빠의 환대는 그보다 값어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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