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셋이 단양여행
1년간의 수험생활을 마치고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이 제제였다. 구름이 낀 여름이었다. 망원에서 만나서 한강까지 걸어갔다. 설마 비가 오겠어라는 생각에 한강에 왔는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나무 아래서 비를 피하다가 비가 살짝 잦아들었을 때 다리 아래로 대피했다. 평일 낮인데도 한강엔 사람이 많았다. 다리 아래 벤치에 앉아 한강을 보면서 제제는 갠지스강이 얼마나 더러웠는지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나는 그 얘기에 금세 빠져들었다. 여행을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지금, 지난 여행 이야기로 시간을 채운다.
여행이 가고 싶었다. 그런데 마땅히 같이 갈 사람도 없었고 가고 싶은 곳도 없었고 코로나 때문에 어디로 떠나기가 두려웠다. 수험 때문인지, 코로나 때문인지, 나이가 먹어서인지 나는 자꾸 소극적으로 변해간다.
제제가 이런 나의 마음을 알아차렸나 보다. 9월 말에 단양에 있는 시골집으로 덩덩이 놀러 오기로 했으니 그때 같이 오라고 초대를 해주었다. ‘우와~~!! 드디어 나에게도 스케줄이 생겼다.’ 그렇게 단양여행이 결정됐다.
옷장에서 오랜만에 작은 사이즈의 캐리어를 꺼냈다. 일산과 서울을 벗어나 다른 도시로 떠나는 것은 1년 만이었다. 엄마는 그래서 한국에 언제 돌아오냐고 물어봤다. “엄마 딸 계속 한국에 있어 ㅋㅋ” 외국을 하도 돌아다닌 탓에 내가 가방만 싸면 한국에 언제 오냐고 묻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국내여행 떠나기도 어색하다.
제천 버스정류장까지는 시외버스로 약 3시간이 걸렸다. 버스 정류장 앞에서 덩덩과 제제를 만났다. 덩덩은 여행일을 그만두고 안 봤으니 2-3년 만에 보는 것이다. 덩덩카를 타고 제제네 집으로 향했다. 이런데 집이 있고 마을이 생기다니 싶을 산 사이에 집이 있었다.
점심 먹기도 저녁 먹기도 애매하여 송편과 차를 마셨다. 덩덩이 차와 주전자, 찻잔까지 세트로 준비해왔다. 차가 있으면 여행에 짐이 많아져도 전혀 부담이 없구나.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운전연습을 해야 할 이유가 또 하나 생겼다.
구름이 많았지만 시야는 맑아서 산은 잘 보였다. 차라리 비가 와도 좋을 것 같다고 얘기하는데 비가 내렸다. 숲 냄새가 더 잘 났다. 다른 거 안 하고 야외 벤치에 앉아 차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렇게 앉아서 오래도록 수다를 떨다가 이른 저녁을 준비했다. 메뉴는 삼겹살과 김치찌개. 덩덩이 주도적으로 요리를 준비했다. 제제는 집주인인 만큼 상차리는 준비를 맡았다. 나는 여기저기 도와주다가 그냥 설거지를 맡겠다고 했다.
구름이 여전히 많지만 비는 어느새 그쳤다. 확실히 서울보다 찬바람이 불었다. 물을 머금은 풀냄새와 함께 고기 굽는 냄새가 퍼졌다. 내가 좋아하는 꼬들밥에 삼겹살 한 줄이 들어간 진한 국물이 일품인 김치찌개를 곁들여 먹었다. 밖에서 구워 먹는 삼겹살은 추가 설명이 필요 없는 꿀맛이었다. 거기에 와인까지. 와인이 맛있다고 누가 골랐냐고 물어보니 덩덩이 골랐단다. 디아블로 피노누아. 음식과 가볍게 즐기기 딱 좋은 와인이었다. 하나 배워간다.
날이 맑으면 별도 많이 보인다고 하는데 오늘은 별보기가 그른 것 같았다. 포기하고 집 안으로 들어와 씻고 전기장판 위에 누워 갯마을 차차차가 시작하길 기다렸다. 확실히 시골은 겨울이 일찍 찾아오는 것 같다. 뜨듯한 전기장판 위가 너무너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