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셋이 단양여행
집에서는 10시가 넘어서야 겨우 일어나는데 이곳은 해가 밝아 7-8시만 돼도 저절로 눈이 떠졌다.
아침도 덩덩이 준비해줬다. 오늘도 설거지는 내가 하기로 했다. 메뉴는 토스트에 드립 커피. 커피를 잘 못 마시는 탓에 나는 물을 많이 넣어 보리차처럼 마신다. 그래도 좋다. 계란 풀은 물을 식빵에 발라 토스트를 만들었다. 촉촉해진 빵에 딸기잼을 발라 먹으니 더욱 달콤했다. 산을 바라보며 아침을 먹으니 베트남 사파 리조트에서 호텔 조식을 먹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사파엔 가보지 않았지만ㅋㅋ)
여유롭게 아침을 준비하고 빨리 점심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메뉴는 산채비빔밥. 11시 식당 오픈 시간에 맞춰 갔다. 그래도 꽤 사람이 있었다. 맛집인가 보다. 맛도 있었고 가격도 저렴하고 식당도 깔끔해 만족스러웠다. 원산지 표시판에는 모두 국내산이라고 적혀있을 뿐 아니라 옆에 가로하고 우리집 아니면 이웃집이라고 적혀있어 더욱 믿음이 갔다.
점심을 먹고는 어젯밤 인스타그램으로 찾아놓은 뷰맛집, '카페 산'에 가기로 했다. 높은 곳에 있어서 덩덩카가 잘 올라갈 수 있을지 걱정이었으나 전혀 문제없었다. 우리 모두 기특하다고 자동차에게 칭찬해주었다 ㅋㅋ
일찍 카페에 왔다고 생각했는데 카페는 이미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밀폐된 공간이 아니라 야외 자리에 사람이 많다는 것이었다.
우선 사진 명당에서 사진을 찍었다. 우리 앞에 커플이 있었는데 내가 먼저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말을 건넸다. 여러 가지 포즈를 요구하며 예쁜 사진을 여러 장 찍어주었다. 모르는 사람인데도 사진을 잘 찍어준 것 같아서 뿌듯했다. 여행 다니면서 모르는 사람들 사진을 많이 찍어줬는데 성의 없이 한두 장 대충 찍어주기보다는 최대한 여러 장, 여러 포즈로 찍어주려고 한다. 사진이 잘 나오면 나도 기분 좋고 그 사람들도 좋은 추억으로 남지 않을까 한다. 또, 그 사람도 내 사진을 잘 찍어주려고 하니 나도 멋진 사진을 얻을 확률이 높아진다.
덩덩, 제제, 나 차례대로 사진을 찍었다. 사진 잘 찍어주는 사람과 여행을 오면 참 좋다.
음료를 시키고 어디에 앉을까 둘러보는데 좋은 자리에 바로 자리가 났다. 테이블에 앉았는데 바로 옆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한다. 다른 사람들이 패러글라이딩하는 것을 보니 각자 패러글라이딩 했던 이야기를 한다. 나는 터키 욀류데니즈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해봤고, 덩덩과 제제는 스위스 인터라켄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해봤다. 진짜 다들 한 여행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세계 3대 패러글라이딩 명소라고 하는 곳과 단양을 비교해봤을 때 단양이 절대 뒤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시작 높이가 꽤 많이 차이 나긴 하지만 말이다. 그만큼 카페산에서 바라본 우리나라의 산과 강이 아름다웠다.
해발 600m라 그런지 제법 쌀쌀했다. 나는 긴팔이었지만 구멍이 송송 뚫린 옷을 입었기에 추웠다. 내가 먼저 그만 일어나자고 말을 꺼냈다. 마침 연세가 많은 할머니와 돌도 안 지난 애기가 자리를 찾고 있었기에 우리 자리를 얼른 양보해드렸다.
내려가는 길을 수월했다. 오히려 겁 많은 나는 속도를 좀 줄여야 하는 거 아니냐고 걱정할 정도였다. 덩덩카는 대단하다.
다음은 계획에 없던 단양 구경시장에 들렀다. 저녁으로 떡볶이를 만들려고 하는데 물엿이 집에 없었기 때문에 시장에서 사기로 했다. 단양이 마늘로 유명한가 보다. 시장에서 마늘을 많이 팔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마늘과 관련된 음식도 많이 팔고 있었다.
우리는 원래 떡볶이와 짜파구리를 저녁으로 먹으려고 했는데 짜파구리를 빼고 대신 흑마늘닭강정을 시장에서 사 먹기로 했다. 그런데 흑마늘닭강정을 받으려면 대기가 많아 40분이나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시간을 채우기 위해 시장 구경을 매우 꼼꼼하게 했다. 작은 시장이었는데 활기가 돌고 생각보다 구경거리가 많았다. 제주 동문 시장은 관광객을 위한 초콜릿, 과자만 파는 느낌이라서 재래시장 느낌이 안 들었는데 이곳은 다양한 음식과 식재료를 팔고 있어서 현지 주민들도 더 많은 느낌이고 물건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또, 구경시장 안에 우리가 가려고 하는 새한서점의 2호점인 단양노트라고 하여 단양과 관련된 기념품과 독립출판물 등을 파는 가게가 있어서 가봤다. 독립출판물과 엽서, 자석 등을 팔았다. 나는 여행지에서 기념 피규어를 사거나 일기장으로 쓸 노트를 종종 사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단양의 풍경이 표지인 노트를 한 권 샀다. 국내여행에서는 기념품을 잘 안 사는데 이곳에는 예쁜 소품들이 많아서 우리 셋다 저마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하나씩 샀다.
세한서점도 인스타그램으로 찾은 곳이다. 사진으로 봤을 때 너무 분위기가 좋아서 방문하기로 했다. 나는 여행지에서 이색적인 서점이나 도서관, 북카페 등을 방문하는 것을 좋아한다. 사실 여행지에서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서점이나 도서관 가는 것을 좋아한다. 책이 있고,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꾸며진 곳은 편안함과 동시에 절대 녹슬지 않는 클래식한 멋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세한 서점은 정말 깊숙한 곳에 있었다. 차 없이는 절대 갈 수 없고 굽이굽이 시골길을 지나고 나서도 차에서 내려 5분은 더 내려가야 했다. 와 이런 곳에 서점이 있나 싶은 곳에 서점이 있었다. 서점은 크게 두 공간으로 나눠져 있었다. 앞서 갔던 '단양노트'에서 팔던 문구류 기념품과 독립출판물을 파는 곳과 오래된 헌책을 파는 곳으로 말이다. 인스타에서 봤던 사진은 오래된 헌책을 파는 곳에서 찍은 것이었다. 법학과를 졸업한 나는 시골 서점에 법학도서들이 많아 의아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1979년 고대 앞에서 시작하여 대학교재, 전문서적을 많이 취급했다고 한다.
사실 나는 책 먼지 때문인지, 바닥의 흙먼지 때문인지 서점 안에 오랫동안 머무르는 것이 조금 힘들었다. 그래서 책 구경은 제대로 하지 못하고 몇 장의 사진만 찍고 밖에 나와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깊은 산속에 서점이 있고, 깊은 산속까지 사람들이 찾아온다는 것을 바라보며 책이 가진 매력, 책이 있는 공간이 주는 매력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사인암을 한 번 구경하고 숙소로 돌아가 저녁을 먹기로 했다. 오 과연 단양 8경 중 한 곳인 만큼 돌 모양이 아주 독특했다. 계곡에 앉아서 구경을 하다가 더 어두워지기 전에 숙소로 돌아왔다.
메뉴는 떡볶이, 그리고 국물을 먹고 싶다는 내 요청이 받아들여져 어묵탕과 아까 구경시장에서 사 온 닭강정이다. 오늘도 바깥 테이블에서 저녁을 먹었다. 와 닭강정이 제대로 식어서 진짜 맛있었다. 완전 후루룩 음식을 흡입하고 싶었는데 요즘 턱 통증, 목 통증, 두통 등이 있어서 많이 먹지 못했다 ㅠㅠ 아 진짜 30이 넘어서 아픈 건지, 내가 뭘 잘못한 건지, 마음이 안 좋았다. 아픈 게 사람을 참 우울하게 만드는 거구나. 그동안 건강했기에 쾌활했고 그렇게 많은 여행을 다닐 수 있었던 것이구나 하는 감사함과 동시에 앞으로 나을 수 있을지, 더 안 좋아지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불안함 마음이 들었다. 이때 많이 못 먹은게 속상해서 집에 오자마자 한의원 가서 침맞고, 치과 예약도 잡았다. 괜찮아질 것이다. 그냥 요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더 예민하게 받아드리는 것 같다.
다 먹고 설거지를 뚝딱 하고 씻고 나왔다. 바깥이 어두워서 별이 보일까 하고 나가봤다. 안 보이나 싶었는데 집안 불을 끄고 나서 다시 나와 보니 별이 많이 보였다. 와 더블유 모양의 카시오페아는 딱 보였다. 은하수도 어렴풋이 보였다. 벤치에 누워서 하늘을 보니 별이 더 많이 보였다. 누워서 별을 구경하다 잠이 든다고 하던데 그 말이 어떤 뜻인지 알 것 같았다.
밤바람이 차가워 별구경을 끝내고 집으로 들어와 전기장판 위에 누웠다. 그리고 갯마을 차차차를 기다렸다. 오마이갓. 갯마을 차차차 완전 ... 제대로인 날이었다. 지pd가 치과에게 고백하고 치과는 홍반장에게 고백하고 홍반장이 거절할 줄 알았는데 키스로 답하다니 미쳤다...!! ㅋㅋㅋㅋㅋ 셋이서 드라마에 푹 빠진 상태로 짧은 여행의 마지막 밤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