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과 암으로 깊이를 더하다.
<기생충>은 이미 한국영화를 넘어 영화의 역사가 되었다. 칸에서의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의 쾌거로 한국영화 100주년을 화려하게 기념하면서 그 명성은 너무나 거대해져 버렸다. 그러나 크고 화려한 수식들을 잠시 뒤로 미뤄두고 오롯이 작품 더 깊은 곳으로 관객들을 초대하기 위해 <기생충:흑백판>으로 돌아왔다.
기존의 <기생충>이 연교 가족과 기택 가족, 그리고 더 깊은 지하에 존재하는 문광 부부의 모습을 상하로 이어지는 계단과 쏟아지는 폭우 등으로 표현해 우리의 감을 동하게 했다면, <기생충:흑백판>은 거기에 더하여 공평해 보이는 자연의 빛 또한 계급에 따라 다르게 분배되는 비극성을 한층 더 드러낸다. '색'이라는 개성이 사라진 자리에 남게 되는 것은 오로지 흑과 백의 농담뿐이다. 흑과 백은 직선으로 펼쳐지고 그 사이의 농담은 세로의 축으로 세워져 각각의 계급에 덧칠된다. 영화는 첫 장면부터 빛의 불공평한 분배를 드러난다. 반지하 창문을 사이에 두고 안팎의 빛의 불공평. 방 안으로 들어오는 햇살은 그 좁은 공간조차 전부 채우지 못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연교 집의 모습은 타버릴 것 같은 강렬한 햇살로 가득 차 있다. 빛이 도달하지 못하는 곳이 없는 높고 넓은 공간이다. 이 사회의 구조 속일 지라도 절대적으로 공평할 것이라고 사람들이 믿어온 자연의 빛 마저 공평하지 못하게 분배된다. 고로 이곳에서 평등한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이 영화는 모든 것을 계급화시켜 놓았다. 이 안에서 평등한 무언가를 찾는 것은 불가능 할까? 이런 발버둥으로 가득찬 <기생충:흑백판>은 흑백으로 꾸는 한 편의 악몽이다.
기택은 왜 박사장을 죽여야만 했을까? 영화의 클라이막스이자 감정이 가장 크게 흔들리는 장면이다. 흑백판에서는 피의 붉은색이 사라지기에 스펙타클의 강렬함 대신 인물의 감정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영화 속에서기택이 기생충이라면 박사장이 숙주일까? 숙주는 기생충에게 에너지를 제공한다는 면에서는 그렇게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기생충인 기택은 박사장이 이제 숙주의 역할을 더 이상 지속하지 못할 거라 판단하고 그를 죽인 것인가? 아니다. 박사장은 계속해서 기택에게 돈과 에너지를 제공할 수 있다. 선을 넘는 것에 예민한 박 사장이지만 그것이 사람을 죽일만한 충분한 근거는 되지 못한다. 다시 생각해보자. 박사장은 숙주인가?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박사장 또한 기생충이 아닐까. 숙주는 따로 있을 것이다. 그것이 자본주의일 수도 계급사회일 수도 있다. 다른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 파티 장면에서 기택은 평소에 받지 못했던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빛을 받으며 근세의 시체 앞에서 코를 틀어막는 박사장에게 생명을 뺏는 방식으로 심판을 내렸다. 그것은 자연조차 불공평한 세계 안에서 생명에 대한 공평함까지 놓칠 수 없었던 인간의 마지막 존엄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 아니었을까. 돈과 계급은 허상에 불과하고 결국은 다 같은 기생충들이라는 것. 그렇기에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남은 단 한 가지 선택이 바로 박사장의 가슴에 칼을 박아 넣는 것이 아니었을까. 명확히 잡을 수 없는 근거에도 불구하고 기택의 살인은 나쁘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과 지하실에 숨어들어 박사장의 사진에 사죄를 고하는 기택을 보면서, 그의 행동은 행위의 무게를 넘어 정당화된다. 그리고 그것을 보면서 인간의 마지막 조건에 동의하는 관객들의 마음 깊은 곳에 아름다운 슬픔을 남긴다. (이 장면의 강렬한 햇빛과 살인. 그리고 인간 실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은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 영향을 받았을 거라 추측해본다. 강렬한 햇빛에 자극을 받고 총을 쏜 뫼르소 또한 자신의 실존을 위해 마지막까지 투쟁했다.)
<기생충:흑백판>을 보고 나오니 세상이 흑백으로 보이는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걸으며 정확하게 대비되는 흑과 백에 씁쓸함을 느끼면서도 이 흑백으로 나눠진 세상 안에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본다. 단지 친절하고 착한 것만으로는 되지 않을 것이다. 기생충의 인물들도 전부 친절하고 착했으니까. 계속 되뇌어본다. 비관주의적인 앞날을 생각하게 되지만 우울에 빠져 무기력해지진 않아야겠지. 계단을 억지로 오르려 말고 평지를 꾸준히 걸어야지. 걸어야지. 계속 걸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