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결혼할 때 어떤 사람들은 머릿속으로 '쟤들 오래 못 가'라고 생각했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우리는 18년 동안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지는 잘 모르겠지만.
'혼자만의 방'을 사랑하는 건 나인데, 남편은 아내보다 스케일 크게도 '혼자만의 집'을 외치며 덜컥 집을 사서 시골로 떠났다. 남편이 속 썩일 땐 눈앞에 없으면 속이 시원할 것 같았는데, 막상 가고 나니 어딘가 허전했다. 그만큼 함께 한 세월이 있으니.
나도 모르게 나미의 '슬픈 인연'이라는 옛 노래를 자꾸 흥얼거리고 있었다. 노래 가사 중에 이 부분을 특히 힘주어 불렀다.
'아, 다시 올 거야 너는 외로움을 견딜 수 없어
아, 나의 곁으로 다시 돌아올 거야'
어떤 친구는 '아직도 남편을 사랑하는구나'라고 했지만 사랑보다는 미련과 애증일지도 모르겠다. 밤 12시가 되도록 술 마시고 안 들어오는 남편 때문에 애태우지 않아도 된다. 언니는 남편 밥도 빨래도 안 해도 되니 얼마나 편하고 좋냐고 위로의 말을 던진다. 솔직히 아이들이 생기면서 내가 따로 남편 밥상을 챙긴 적이 잘 없는 것 같다. 남편은 퇴근하면 바로 밥을 먹어야 되는 사람이라 혼자 밥을 잘 차려 먹었고, 나이가 들어서는 요리도 곧잘 했다. 나는 주로 아이들 반찬을 만들었고 때가 맞으면 남편도 같이 먹었다. 연하인 남편은 내가 남편을 떠받들지 않고 무시한다고 했다. 어느 정도는 진실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독립해서 나간 남편을 옹호하고 자책감에 괴로워하지는 않는다. 남편은 자기 합리화의 대가(大家)라 마치 가족을 위해서 나간 것처럼 말하기 때문이다.
입으로는 가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고 하면서, 일주일에 1~2번 집에 오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힘들어 핑계를 댄다. 손님처럼 일주일 만에 집에 오고도 한두 시간 만에 후다닥 가버리기 일쑤다. 참고로 30~40분 밖에 안 걸리는 거리다. 그를 이해하려는 마음을 버리고 괘씸하다고 생각했다.
부부가 살아가는 모습은 다 다르다. 은퇴하고 제2의 신혼처럼 알콩달콩 사는 부부가 있는가 하면, 서로의 취향과 성격이 너무 달라 떨어져서 사는 부부도 있다. 자주 싸우면서도 마지못해 함께 사는 부부가 있고, 거의 말도 섞지 않고 무관심하게 사는 부부도 있다. 표면적으로는 화목해 보이지만 한쪽이 외도하는 부부도 있고, 이혼한 부부도 있다. 아마 우리처럼 사는 부부도 어딘가 있을 것이다.
떠나려는 배를 억지로 묶어둔다고 해도 언젠가는 떠날 것임을 알기에 붙잡지 않는다. 언젠가 다시 돌아올 거라 미련을 가지고 기다리지 않겠다. 서로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되, 최소한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부모로서의 역할을 하고 경제적인 부담을 함께 진다. 따로 떨어져서 사니 서로가 조심하며 존중하려고 노력한다. 지금 여기가 우리의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이 거리가 계속 유지될지는 알 수 없다.
잠깐 왔다가 휙 가버리는 남편을 보니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남편이 가족에게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우리가 계속 가족으로 있지는 못할 것이다. 서로가 각자의 배를 타고 지향점을 향해떠날지, 떨어져 살지만 가족이라는 끈으로 함께 묶여 있을지는 시간의 신만이 답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