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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다 Jan 08. 2024

남편이 집을 나갔다

응, 잘 가, 쿨하게 말하고 싶지만



작년 12월 말에 남편이 집을 나갔다. 나는 그렇게 혼자 남겨졌다. 그리고 알았다. 그토록 귀찮았던 남편이지만, 혼자이고 싶진 않았던 내 마음을.


겉으로 보기엔 타 지역에 발령이 나서 나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집에서 1시간쯤 걸리는 곳이고, 여기서 출퇴근하는 사람이 많은 지역이다. 그런데 남편은 계속 독립을 꿈꿨다. 처음에는 자신만의 서재를, 그다음엔 작은 도서관을, 별장 같은 전원주택으로 꿈은 점점 구체화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한 마디 상의도 언급도 없이 덜컥 촌 집을 계약하고 나중에 통보했다. 나에게 자금을 부탁했으나 거절당했고 어찌어찌 영끌하여 마련했으니, 앞으로 집은 자신이 죽어도 사회에 환원할 것이니 절대 욕심내지 말라고 했다. 


일주일에 한 번 또는 두 번, 그것도 평일에 집에 올 것이라 했다. 주말에 오면 긴 시간을 함께 있어야 하니까 평일에 오싶은 것이겠지. 한 번의 큰 이사를 했는데 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수천 권의 책이었다. 그 후 집에 올 때마다 못 가지고 간 짐을 차에 싣고 갔다. 나도 이참에 집에 필요 없는 것을 정리해서 날랐다. 약속과는 달리 대부분의 짐을 빼고 난 다음에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집에 오지 않았다. 집에 왔을 때도 마치 남의 집에 놀러 온 사람처럼 잠시 있다가 가버렸다.

며칠 전에는 "내일 갈게." 하고선 다음날 오지 않았고 연락도 없었다. 전화하니 피곤해서 깜빡했다고 "내일 갈게." 했다. 그 무신경함에 화가 나서 나도 집을 비웠다. 저녁에 집에 온 나는 그야말로 양말과 속옷만 남기고 싹 없어진 그의 자취에 황당함과 분노를 느꼈다. 이제 우리 별거하는 건가. '별거'가 뭐 별 거 있나. 따로 살면 이혼 안 해도 별거지.


정작 남편은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모른다. 남편은 자기 합리화의 대가이다. 독립해서 나갈 때는 마치 작은 아이의 방을 만들어 주기 위해 나가는 것처럼 생색을 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에도 아이들에게 전화 한 통 하지 않았고, 새해 해맞이도 자신의 집에서 본가 가족들과 함께 했다. 나는 집에서 홀로 술을 마셨다. 아이들이 있었지만 각자의 방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집은 절간 같이 조용했다. 저녁만 되면 내 우울을 삭이기 위해 약간의 알코올이 필요했다. 누군가 나를 손가락질하며 비웃는 것 같았다. '네 결혼은 실패야. 넌 인생의 패배자야. 너의 잔소리와 불만이 가족을 이렇게 해체한 거지.'

그러다 자기 연민과 자기애가 폭발하며 스스로를 두둔했다. '열심히 살았고 잘 살고 있어.'


몇 주간 감정이 널뛰기를 하고 있다.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럴 수 있지.' 하면서 평온을 되찾은 것 같다가도 며칠 지나서 또 곤두박질친다. 일상생활을 하고 아이들 밥을 차리다가도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처럼 혼자 눈시울을 붉히는 것이다.


친구는 말했다. 지금 나갔다가 나중에 늙고 병들면 집으로 기어들어오지 말라고, 그렇게 못 박으라고 한다. 병수발 들어줄 마음도 체력도 없다. 부모라도 병수발은 힘든 것을 미운 남편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누군가는 어쩌면 그럴 수 있냐면서 무책임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또 다른 사람은 꿈이 원대한 사람이라고 박수를 친다. 어떤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죽일 놈이 되었다가 박애주의자가 되기도 한다. 그들의 말에서 내 편, 남의 편으로 인식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꿈을 찾아 나간 남편은 혼자 행복한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에 질투가 나고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인가, 이렇게 점점 멀어지는 것일까. 있을 땐 귀찮고 싫었던 남편이 나가니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겠다. 나 하긴 싫고 남 주긴 아까운 심정인 건가. 놓친 떡이 커 보이는 것처럼 내 옆에 있을 때보다 그의 존재가 더 크게 느껴졌다.

빨래도 줄고 가스레인지도 깨끗해지고 술 마시고 밤늦게 들어와서 속을 썩이는 남편이 없으니 홀가분할 만도 한데 이 허전함은 뭐지. 왜 버림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걸까.

이제 난 자유, 너도 자유.

자유로우면서 자유롭지 않은 나를 위해 치어스!




고름을 짜내듯 글을 쓴다. 다 짜내고 나면 온전히 평화가 남기를. 시간은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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