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
‘어, 이게 무슨 편지지?’
아이의 방을 정리하러 들어갔다가 방바닥에 떨어져 있는 쪽지 편지가 눈에 띄었다.
「 OO아, 너 나랑 사귀자. 나 1년 전부터 너 좋아했어. 너무 좋아서 미칠 것 같아. 」
생각하면 할수록 이 편지를 읽는 내 마음이 걱정으로 부풀려져서 미칠 것 같았다. 교복도 줄여 입지 않고 화장도 할 줄 모르는 아이라서 내가 너무 방심했던 것일까. 사연이 몹시 궁금하고 걱정도 되었지만, 짐짓 쿨한 엄마가 되고 싶어 모른 척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후, 아이에게 남자 친구가 있냐고 넌지시 물어보았다. 아이는 친구들이 장난친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 진위에 관계없이 이제 사춘기를 맞은 딸들에게 뭔가 충고를 하고 싶은 엄마의 꼰대 근성이 발동되었다.
연애도 제대로 못해본 짝사랑 전문가요, 늦게 진로를 결정하고 삼십 대 중반의 나이에 쫓기듯 결혼하여 후회도 많이 했기에 더 아이에게 말하고 싶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어릴 땐 성교육이란 것도 거의 없었고, 엄마는 한 번도 이성 교제에 관한 것이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시지 않았다.
요즘 아이들은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또 가르쳐주지 않아도 인터넷으로 많은 것을 알게 되지만, 과장되거나 왜곡된 정보도 많으니만큼 아이들과 보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비단 이성 교제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엄마의 살아온 이야기를. 특히 입시와 진로 탐색, 청춘 시절의 고민, 결혼의 과정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를 한참 떠들고 나니 큰애가 말하더라. 재미있다고.
어쩌면 그 말이 이 글을 쓰게 된 직접적인 이유가 될 수도 있겠다. 꼭 재미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런 인생도 있다고, 인생에 정도(正道)는 없다는 것을 부끄럼 없이 말하고 싶다.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를 넘겨도 '하늘의 뜻'을 명확히 깨닫지는 못하였으나, 지난 삶을 한 번쯤 되짚어 보아야만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기에 용기를 내어본다.
이 세상을 떠돈 지 벌써 오십 년이 넘었다. 평범한 특수교사이자 두 아이의 엄마, 특별할 것도 없고 매일 비슷한 일상을 살아가지만 지나온 삶의 자취는 그렇게 평범하지만은 않다. 일반적인 궤적에서 조금 벗어나 내 길을 찾기 위해 방황하는 기간이 무척 길었고 결혼 과정도 남달랐다. 한 때는 나의 지난 시절의 어리석음에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했지만, 이제는 그런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고 느낀다.
어쩌면 오늘도 자신의 길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인생’도 있다는 것을 얘기해주고 싶다. 남들과 조금 다르게 살아도 괜찮다고.
# Bgm. 나에게로의 초대/ 정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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