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레코드 안에서 어린 시절의 가장 오래된 장면을 떠올릴 수 있는가. 누구에게 들었던 것이 아니라 내 기억 너머에서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첫 기억. 캄캄한 밤에 울고 있는 어린 나를 포대기로 업고 조용히 달래던 엄마의 모습이었다. 무엇 때문인지 아버지가 화가 나서 속풀이를 하고 엄마와 나는 아버지를 피해 어둠이 내린 밖에서 마음을 달래고 있었던 것 같은 장면이 한동안 흑백사진처럼 첫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사람의 기억이란 건 너무나 쉽게 사실을 주관적으로 왜곡할 수 있다는 걸 알기에, 이것이 정말 나의 첫 기억인지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다. 가정의 불화가 기억에 투영되어 그렇게 된 것인지 실제인지는 모르겠으나 아기였을 때 나의 첫 기억은 그렇게 유쾌한 것이 아니었다.
시골의 중학교 선생님이신 아버지는 지나치게 술을 좋아하셨다. 술을 즐기는 만큼 가정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많았으며, 집에 있으면 신경통으로 몸이 아프다며 버럭 화를 내시거나 우리가 움직일 때마다 시시콜콜 잔소리를 해서 우리 사 남매를 괴롭혔다. 엄마라도 다정다감하고 우리에게 너그러웠다면 나의 유년이 좀 더 행복했을 터이나, 엄마의 세계는 늘 외아들인 오빠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나는 늘 외로웠고 혼날까 봐 두려웠다. 때로는 빨강머리 앤처럼 나의 진짜 부모님은 다른 곳에 계실 거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했다.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나를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고 놀렸기 때문에, 눈물이 날 정도로 약이 올라 더욱 그런 상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초등학생 때는 멋진 장미 정원이 있는 집에 사는 단발머리 친구나 넓은 맨션에 사는, 수원에서 전학 온 친구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소수의 친구들과 삼총사니 사총사니 하며 무리를 지어 다녔고 지금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친구들과 어울렸다. 매일같이 친구 집에 놀러 가고 어두워지기 전까지 골목에서 땅따먹기도 하고 역할극도 하면서 즐겁게 놀았다. 그러면서도 마음속에선 지독한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으니, 4학년 때 일기장에 쓴 시의 제목이 '나는 외톨이'였다.
이 외톨이의 마음을 어루만져 준 것은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셨다. 교직에 몸담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처녀 선생님이었는데, 간혹 칠판에 순정만화 그림을 그리거나 주말에 극장에서 본 영화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시기도 했다. 그 선생님이 아직까지 내 기억에 또렷이 남아있는 것은 나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여주셨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은 나의 글짓기 솜씨가 이채롭다고 칭찬하셨기에 처음으로 인정받은 즐거움에 마음이 들떠 심심찮게 선생님께 편지를 써 보냈다. 선생님은 내 편지를 귀찮다고 생각하시지 않고 좋아하시는 것 같았다. 6학년이 되어서도 선생님은 우리 반에 찾아오셔서 담임선생님께 나를 부탁하시고 직접 쓴 손편지와 책도 선물로 주셨다. '마음에 든 학교'(후에 '창가의 토토'로 재발간되었다)라는 책이었는데, 얼마나 여러 번 읽었는지 아직도 그 책의 삽화가 눈에 선하다. 부모님께 사랑받는다고 느끼지 못한 나는 친구들과 선생님한테 애착을 느끼며 자랐다. 불행히도 그전이나 후에도 나에게 특별히 관심을 갖고 친절하게 대해주었던 선생님은 아무도 없었다.
언젠가 다른 도시에 살던 고모가 제자를 데리고 우리 집에서 하룻밤 자고 간 적이 있었다. 그 언니는 단 하루 우리 집에서 잠깐 머물다 갔는데 집으로 돌아가서 나에게 카드를 보냈다.
'단발머리를 나풀거리는 너의 상냥함이 잊혀지지 않는다.'
카드에 적힌 이 글귀가 몇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마음에 남아있다. 그만큼 소중하게 존중받지 못하고 다정함에 목말라 있었기 때문에 친절한 말 한마디가 잊히지 않고 마음속 깊이 남아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이의 자존감을 키우는 데는 부모의 양육 태도가 중요하고, 충분한 관심과 사랑을 받고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따뜻한 인성을 가진 어른으로 자라게 될 가능성이 높다. 나의 불안정한 자아존중감이나 쉽게 우울해지는 감정 패턴을 전부 부모님의 탓으로 돌리고 '나는 이런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라고 자신을 합리화시키려는 이야기는 아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의지대로 선택하고 행동하며 그에 따라 자아효능감을 획득하기도 하며 새로운 자화상을 만들 수도 있다. 이제 '상처 입은 내면의 우는 아이'를 달래줘야 한다는 식의 심리 이론에는 이상하게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 너무 많이 들어 식상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어쩌면 내가 외면하고 싶은, 어릴 적 상처 입은 아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훌쩍훌쩍 울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 Bgm. 단발머리/ 조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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