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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다 Dec 25. 2022

양성평등의 이중 잣대

마초남과 페미녀






  얼마 전에 거리에서 여성가족부 폐지 반대 시위를 하는 것을 보았다. 20여 년 동안 유지되었던 여성가족부가 폐지되는 것은 그만큼 여성의 지위가 높아져서 더 이상 여가부가 필요 없어졌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여성가족부가 보건복지부에 통합된다면 뿌리 깊은 유교 사회의 잔재가 남아있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입지가 훨씬 더 좁아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우리나라 인구의 49.9%가 여성이며, 노령 여성 인구가 많은데 과연 여당은 뜻대로 여가부 폐지를 계속 추진할 것인가. 일단 내년 여가부의 예산이 7% 늘어났다는 뉴스는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다.



  한때 우리나라에는 '특수교육진흥법'이 있었다. 특수교육이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해서 진흥시켜야 한다는 의미였을까, 명칭의 부적절함을 지적하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다 2008년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이 시행되면서 특수교육진흥법은 폐지되었다. 특수교육법이 개정되었다고 해서 장애인의 인권이 신장되고 장애인에 대한 비장애인들의 인식이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런 법의 조항 때문에 많은 학령기 장애 아동이 특수학교가 아닌 집에서 가까운 일반학교에서 통합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었다.


이처럼 법규이든 정부 부처이든 간에 기존에 있었던 것이 폐지가 된다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권한, 법규와 부처에서 보장하고 지원하는 제도를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이 제한될 것은 분명하다. 한 부서에서 10가지 일을 처리하는 것과 두 부서에서 각각 5가지 일을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10가지 일을 한다는 점에서는 똑같을지 몰라도, 그 일의 완성도나 참여하는 부서원의 열성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전문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가. 



  아직 우리나라의 여성 인권은 OECD 국가들 중에서 하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남자만 여자를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 자신의 양성평등에 대한 인식도 그러하다. 얼마 전 직장에서 양성평등 실태 조사를 실시했다. 양성평등 인식에 대한 문항에 답하면서,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역차별적 생각과 행동을 하고 있었음을 확인하고 뜨끔해졌다.






  수업자료나 활동에서는 성차별적 요소가 예전만큼 많이 드러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무거운 물건을 나를 때는 주로 남학생을 부를 때가 많았고, '남자는 우는 것 아니야' 같은 말을 사용한 적이 있었다. 전에는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더 친절하다고 생각해 여학생에게 심부름을 시킨 적도 있다. 전에는 체육시간에 남자는 발야구나 축구, 여자는 피구같이 다른 활동을 시키기도 하였으나 갈수록 교육현장에서 남녀를 구별하는 일들은 줄어들고 있다고 본다. 요즘은 양성평등교육으로 학생들이나 교직원의 양성평등 의식이 많이 제고되어서 남녀를 차별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학생들이 가만히 참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1,2번 문항에 속으로 긍정하는 남자가 있다면, '의무는 다하지 않으면서 권리만을 내세우는' 여성을 페미니스트라고 부르며 그에 대해 반감을 품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겉으로는 여성을 존중하는 것처럼 말하면서 속으로는 그렇지 않은 남자들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은 나의 짐작일 뿐이라면 다행이겠다.


  3번과 4번은 마음속으로 찔렸던 문항인데, 무거운 것 들기, 컴퓨터 수리, 형광등 교체, 막힌 변기 뚫기 같은 일은 남편이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컴퓨터의 소프트웨어 오류가 나거나 할 때 남편이 나보다 더 모를 때는 '남자가 그것도 못하나'하며 은근히 남편을 무시했다. 남편은 신체적인 핸디캡이 있으니 무거운 것을 들지 못할 때가 많아 내가 무거운 것을 들고 늘 시장도 혼자 보는 일이 다반사여서 불만을 품고 있었다. 남편 또한 맞벌이임에도 불구하고 요리나 빨래는 아내에게 일임했으며 가끔 요리를 하고 생색을 내는 경우가 많았다. 분명 세탁기, 건조기를 다시 구입했을 때 설명을 같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세탁이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 세탁기나 건조기를 사용할 때는 나를 호출한다. 둘 다 출근 준비에 바쁜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남편은 한 번도 아이들 아침식사를 챙긴 적이 없다. 많은 아내들이 가사에서의 남녀평등을 위해 노력했지만 현실의 벽을 뚫지 못하고 지쳐서 '그냥 내가 하고 말지, 그게 더 깔끔하고 시간도 적게 들어'라며 스스로를 다독이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간과한 것은 나 또한 힘쓰는 일은 남편에게 기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가족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하니 남편에게 이런 기대를 하는 것이 공평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마음속으로 남편이 아내보다 경제적인 부양 책임을 많이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보통의 직장에서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월급을 많이 받는 경우가 일반적이고, 여성은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남편이 벌어주는 돈을 가지고 사는 것이 '좋은 팔자'라고 생각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아내가 더 경제적인 능력이 있으면 밖에서 돈을 벌고 남자가 아이를 키우고 살림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남편이 일을 그만두고 집에 있다면 못 견딜 것 같다. 

결국 남편이나 나나 양성평등 의식 수준은 비민주적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마초남과 페미녀 사이. 지금 우리 사회는 마초남과 페미녀 사이의 줄다리기로 양분화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여성이 자신의 권리를 부르짖지 않아도 존중받는 사회는 한 세대가 더 지나가야 올 것인가. 같은 스펙을 가진 남녀가 직장에 입사할 때부터 월급, 승진에 이르기까지 공평하게 경쟁하는 사회가 온다면 굳이 여자는 여성성을 포기하고 극단적인 페미니스트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기존의 독식하던 권리를 포기하고 자신의 남성성이 도전받는 것에 위태로움을 느낀 마초남도 상호 존중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것임을 학습하게 될 날이 언젠가는 오겠지?

  내 안의 양성 불평등 의식을 확인한 지금, 나의 의식이 조금씩 열려가는 것처럼 우리 사회가 천천히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 기대해 본다.



#양성평등의식  #여성가족부폐지  #남녀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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