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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다 Jan 26. 2023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시간




4시 48분.

좀 있으면 저녁을 차려야 한다. 불규칙한 아이들의 기상 시간과 학원 시간에 맞춰 식사와 간식을 챙기는 것도 들쑥날쑥이다. 그나마 최근에는 애들이나 나나 늦잠을 자버려서 아침 겸 점심을 먹으니 조금은 편해지긴 했지만, 아점을 먹으면 출출할까 봐 꼭 간식을 챙겨줘야 된다. 때로는 늦은 아침을 간단히 차린 지 한두 시간 만에 또 점심 상을 차려야 되는 돌밥의 시간.


개학을 앞두고 흐린 날씨만큼이나 기분이 착 가라앉았다. 서울에는 눈이 온다지.

방학이 없는 직장인에게 쓴소리 들을 말이지만. 사람들은 원래 주어진 것은 당연하게 여기는 습성이니까.

방학이 있는 교수님들에게는 딴죽을 걸지 않지만, 방학 때 놀면서 월급 받는 학교 선생들에 대해서는 비뚤어진 시선들이 간혹 보인다. 그래서 어떤 관리자들은 방학 때라도 근무시간에 쇼핑하면서 돌아다니지 말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이 어떤 시선으로 교사를 보던지 그건 나에게 직접적으로 피부에 와닿지 않으니 상관없다.

막상 출근을 하면 활기도 생기고 학생을 만나는 것이 반갑기도 한데, 문제는 출근하기 전이다. 출근을 앞둔 일요일 저녁처럼 우울하다. 이럴 땐 햇빛이라도 쨍하니 비추면 좋으련만, 곧 비라도 내릴 것 같이 하루 종일 흐리다.



남은 하루를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 고민을 했다. 고민을 하면서 이것저것 검색하다 보니 벌써 저녁이 되어버렸다.

원래는 부산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올까 생각했다. 부산 시립미술관의 이건희 컬렉션이 이번 주까지인데 가야 되나. 그 외에도 부산에 가고 싶은 곳이 몇 군데 있어서 겸사겸사 계획을 세워보았다. 그런데 날씨가 너무 춥다. 여러 블로그에서 전시된 그림 사진도 많이 보아서 '가면 좋고 못 가도 그만'인 상태. 미술과 그렇게 친한 사람도 아니면서 유행에 편승하기 위한 몸짓 같아 부산행은 포기했다. 조금 더 날씨가 따뜻해지면 바다 보러 가보자고 마음을 다독이면서.


그럼 뭐 하지. 책 읽고 영어 공부도 하고 집안 정리도 하고 할 일은 찾아보면 많은데, 딱히 손에 안 잡힌다.

수영 다시 시작하기로 했으니 몸도 풀 겸 수영장에 가볼까. 특히 한 번도 안 가본 새 수영장에 가보고 싶어졌다. 래시가드 말고 수영복 입은 지 몇 년 지났는데 수영복이 맞으려나. 무슨 수영복 입고 가지? 수모는? 낯선 동네인데 주차는 어떡하지, 조금 귀찮은데 주말에 갈까. 이러다 결국 흐지부지.

필라테스를 시작해 볼까 검색 좀 하다가, 전에 요가 조금 하다 포기한 게 생각나 찾아만 보다 말았다.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북 카페 생각이 났다. 지방 소도시라 북 카페가 많지 않다. 한 곳은 5시까지이고 주말에도 여는데, 정말 가고 싶었던 곳은 조금 먼 데다 4시 반에 문을 닫고 주말에는 안 한다고. 사장님이 취미로 하시는 곳인가. 이래 저래 궁리만 하다 4시가 넘은 시각이라 이것도 물 건너 갔네.


오늘 하루 종일 한 거라곤 인터넷 서핑과 밀리의 서재 1년 구독 결정, 운동화 주문, 그리고 블로그와 브런치 글 좀 읽은 것. 청소도 로봇이 대신하고, 아이들 밥 차려준 것밖에 없다. 뭔가 마음은 분주했는데 시간은 쏜살같이 가버리고 한 게 없다. 나 방학 동안 뭘 한 거지? 방학이 끝날 무렵이면 늘 이런 생각에 우울해질 때가 많다.


오늘 저녁엔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서 배부르게 먹고 헬스도 좀 하고 책도 읽고 데일리 루틴이라도 완료하면 기분이 좀 나아지지 않으려나. 감동적인 영화를 한 편 만나도 좋다.

브런치에 글을 한 편 올렸으니 이것으로 자기 위안을 삼아본다.

인생은 70부터라는데, 하루도 퇴근 후 저녁 7시부터 시작하는 거야. 그래도 아직 많은 것이 가능하다. 그렇겠지?


#나를위로하는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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