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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다 Feb 04. 2023

나는 답답할 때 도서관에 간다

도서관에서 의욕을 충전하세요





  책을 사는 것을 좋아하는 남편 때문에 집은 책으로 가득하다. 술을 즐기던 사람이 책에 빠진 지 5년. 거실 한 면을 차지하고 있는 두 개의 책장에는 책이 가득하고 일부는 이중으로 꽂힌 책들도 있다. 더욱 가관인 것은 남편 방이다. 오래된 책에 알레르기가 있어서 웬만해선 문을 열고 들어가지 않게 된 곳이다. 좁은 방의 두 면이 천장까지 닿은 책들로 넘쳐나고 심지어 책꽂이 없이 바닥에 줄지어 쌓인 책들로, 겨우 몸을 눕힐 정도의 공간이 허락될 뿐이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슴이 답답해서 현기증이 날 정도이다. 이것이 전부 다 아니고 시댁에 갖다 놓은 책들도 꽤 있다.


  정신적으로는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는 나이지만, 언제부터인가 정리는 반쯤 포기한 상태이다. 옷 세 벌을 사면 세 개를 내보내야 한다는 것이 미니멀의 기본자세인데, 들어오기만 하고 나갈 줄은 모르니 집의 공간은 포화 상태이다. 몇 년 동안은 방학마다, 혹은 1월마다 정리를 하는데 열심이었는데 상황이 이 정도가 되니 점점 포기하게 된다. 집에 있으면 가슴이 답답해 밖으로 나가고 싶고, 집에 있을 때는 그나마 공간이 여유로운 내 방에서 나가고 싶지 않을 때가 많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좋지 않다. 사춘기에 꿈꿨던, 책으로 가득한 서재는 잘 분류되고 정리되어야 멋진 것이다. 적당한 여백의 아름다움과 주변 인테리어와도 어울려야 한다. 남편 방의 작은 옷장에 다 수납되지 못한 옷과 책들이 점점 거실에까지 마수를 뻗고 있다. 갑자기 누군가 집에 올까 봐 걱정되는 집에 사는 주부의 마음은 그 비슷한 상황인 분들만 알 것이다. 하기야 우리 집에 사람들이 놀러 오지 않게 된 것이 몇 년 되었다.



  집에 있는 책과 많은 짐들이 나를 엎어누르듯 가슴이 답답해질 땐 밖으로 산책을 간다. 추위에 취약한 나는 겨울에는 잘 걷지 않고 카페 같은 곳에 오래 앉아 있는 것은 좀 불편하다. 딱히 갈 곳이 없을 땐 도서관에 놀러 간다. 책을 빌리러 가기도 하지만 책을 구경하고 바람을 쐬러 간다. 보통 공공도서관 주변은 어느 정도 조경이 잘 되어 있는 곳이 많고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나무가 꽤 있는 편이다. 어떤 도서관 근처에는 등산로가 있어 도서관에 갔다가 짧은 등산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얼마 전에도 퇴근하다가 괜히 가슴이 답답해서 가까운 도서관 말고 조금 떨어진 큰 도서관으로 책을 빌리러 갔다. 5권의 책을 빌려서 집으로 오니 남편이 집에 책이 많은데, 왜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가느냐고 물어보았다. 책을 빌려서 보면 대출 기간이 정해져 있으니 조금이라도 더 읽게 된다. 집에 어떤 책이 있어도 남편이 어디에 뒀는지 찾지 못해 도서관에 가서 빌리는 경우도 있다.


  도서관에 간 김에 앉아서 책을 보지 않고 왜 빌려만 오냐고 남편이 물어보는데, 순간 멍해졌다. 왜 나는 도서관에 앉아서 책을 읽는 것이 불편할까. 물론 집에서 가족들 식사를 챙기기 위함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도 도서관에 앉아서 책을 읽기보다는 내 방에서 편하게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어떨 때는 5권 중에 한 권만 읽고 반납할 때도 있다.


  어떻게 보면 나는 '도서관 코스프레'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누구한테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지적 허영 또는 자기만족을 위한 도서관 책 빌리기. 그렇게 읽고 싶어서 빌려온 책을 쌓아놓고 휴대폰과 PC만 들여다볼 때도 허다하다. 이것은 남편이 구입한 책의 반의반도 다 못 보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책을 주문하는 것과 비슷한 마음일까? 책을 읽다가 그 책에 언급된 책이 읽고 싶어 주문하는 경우가 많은 걸 보면. 책의 세계에 푹 빠져 있을 때면 그 책에 언급된 책이 읽고 싶어지는 건 당연지사. 다음에 읽어야지 하고 사놓고는 시간 부족으로 다 읽지 못하고 책은 쌓인다. 언젠가 퇴직하거나 시간이 생기면 꼭 읽을 거라며.



  젊은 시절에도 갈 곳이 없을 땐 도서관을 즐겨 찾았다. 주로 공부를 하러 갈 때가 많았지만, 일부러 버스를 타고 다른 도서관에 가서 책들을 살펴보는 것이 좋았다. 수많은 흥미로운 책들이 나를 손짓했고, 서가를 다니며 책의 제목과 목차를 살펴보고 있노라면 이상하게 마음이 풍요로워졌다. 현실의 지평을 넘어 진심으로 살아 있는 듯이 마음이 용솟음쳐 올랐다. 삶이 힘들고 우울해질 때 어떤 사람은 시장을 찾는다고 한다. 열심히 살려는 상인들의 활기찬 몸짓에 절로 생의 욕구가 솟는다고 말이다. 내 경우엔 시끄러운 시장보다는 도서관을 찾을 때,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고 몇 권의 책을 무겁게 지고 나올 때 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에 내가 가보지 못한 곳, 느껴보지 못한 세계, 만나보지 못한 삶들이 바로 여기 있었다.



  지금 사는 게 재미없는 당신, 마음이 답답해져 올 땐 저와 함께 도서관에 가보지 않으실래요? 동네 책방도 좋습니다. 꼭 책을 끝까지 읽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도서관 #도서관에서생의욕구를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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