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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다 Feb 16. 2023

내 머리는 반곱슬



  내 머리는 반곱슬이다. 반곱슬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매직 펌을 해도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부스스해지는 모발을. 장마철에는 귀신이라도 나올 듯이 부해지는 머리를 보며 고개를 저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을 것이다. 전날 밤에 머리를 감고 자면 아침에 다소 차분해질 때도 있지만, 잠을 잘못 자다 보면 머리가 한쪽만 뒤집어져서 물을 묻혀 다시 드라이해야 될 때도 있다. 예쁘게 양쪽으로 뒤집어지면 좀 좋으련만 보통은 좌우 비대칭으로 뒤집어져 버리니 난감하다.


  학창 시절에는 뻣뻣한 직모를 가진 아이들을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찰랑찰랑 거리는 머릿결을 가진 긴 머리 소녀를 보면 감탄사가 나오면서 선망의 눈길을 보냈다. 찰랑거리지는 않더라도 부스스한 머리만 피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전기 고데기가 대중화되지 않았던 학창 시절에는 일단 삐죽 튀어나오는 머리만 없도록 간단히 드라이를 하느라 아침이 바빴다. 어쩌다 한쪽만 뒤집힌 머리로 나갈 때면 하루 종일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어서는 파마를 할 수 있어서 머리에 신경이 덜 쓰였지만, 관리 소홀로 조금만 지나면 촌스러움과 부스스함을 피할 수가 없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왜 반곱슬에게 서툰 손을 함께 주셨을까. 도무지 멋 내는 기술이나 예쁘게 꾸미는 손재주가 없으니 이것을 설상가상이라 하는 것인가. 미용실에서는 그럭저럭 마음에 들었던 머리가 집에 와서 머리를 감고 나면 하루 만에 선녀에서 아줌마로 격하되어 버리다니. 미용실에서는 분명 이 머리는 그냥 잘 말려 주기만 하면 된다고 했었는데, 반곱슬이라서 드라이기로 잘 말려주면 파마 안 해도 되는 머리라고 했는데 왜 전문가의 말대로 되지 않는 것일까.



  외모를 잘 가꾸는 멋쟁이와는 거리가 먼 나이지만, 머리를 볶았다가 풀었다가 변화를 주는 것이 지루한 일상에서의 기분 전환에는 도움이 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모발은 점점 가늘어지고 머리숱은 적어지고 새치가 생기기 시작했다. 원래 머리를 길게 기르지는 못하는 성미였으나, 어깨에 닿을 정도의 기장을 유지하거나 조금 더 길러 머리를 묶고 다니기도 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단발병'이 생기는 것이었다. 누가 단발령을 내린 것도 아닌데 머리가 조금만 길어지면 단발로 자르고, 때로는 쇼트 커트도 심각하게 고려해 보는 것이었다. 목덜미가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길어지면 지저분하게 보여 안절부절못하다 결국 가족들의 '긴 머리 엄마'의 로망을 단숨에 짓밟으며 미용실로 뛰어간다. 단정한 단발머리로 자르고 나면 마음마저 상쾌해지지만, 머리를 자르기 전까지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기운이 없고 자존감마저 떨어진다.



  중년이 되고 나니 해가 갈수록 헤어스타일이나 외모에 신경을 쓰는 것도 인생의 낭비라 여겨질 때가 많다. 이제 부드러운 인상을 주는 갈색 염색도 그만하기로 했다. 최대한 손이 안 가는 스타일, 손질이 간편하고 단정한 스타일이 최고다. 여성스러움과 아름다움을 추구한다고 해도 이미 떠나버린 젊음을 되찾을 수는 없다. 의학적 시술을 받아도 한계가 있고 부자연스러움이 싫어서 그것조차 피하게 된다.

차라리 웃는 얼굴로 아름다운 주름을 만들고, 두피가 건강하도록 건강식을 섭취하고 규칙적인 운동을 하는 것, 내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자연적인 순리가 아닐까. 반곱슬이 직모가 될 수 없듯이, 중년은 청춘이 될 수 없다. 하지만, 마음은 청년보다 더 푸르를 수 있음을 기억하고 싶다.




#에세이쓰기   #단발병  #곱슬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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