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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다 Nov 27. 2022

약간의 우울엔 알코올을

엄마의 잔소리와 성적의 상관관계



휴대폰에 잠식되어 버린 십 대의 시간과 중년의 시간.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친구가 없어진 아이들은 휴대폰이 유일한 취미가 되어버렸고, 이제 '폰 압수'라는 게 통하지 않는 나이로 커 버렸다.

언젠가부터 우리 집 식탁에는 말이 거의 없어졌다. 오래전부터 남편은 식사를 하면서 휴대폰으로 고스톱 게임을 했고(게임만 하고 실제로 고스톱을 치지는 않는다), 본인도 심각성을 느끼는지 올해 초 새해부터는 밥을 먹으면서 휴대폰 하지 말고 대화를 하자고 먼저 청했다. 물론 나는 그 말이 현실성이 없는 것임을 바로 간파했고, 아이들도 전혀 호응하지 않았다. 남편은 그 제안을 이틀도 지키지 못했다.


휴대폰을 취미 정도로 하고, 학업이나 수면에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우리 가족들은 모두 시력이 나빠 안경을 쓴다. 휴대폰은 시력에만 악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티브이처럼 수동적으로 노출되니 전두엽 발달에도 저해가 된다. 우리 모두 그것을 알지만 마약처럼 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몸에 좋지 않은 것을 알지만 과자를 계속 먹는 것처럼 우리의 정신과 신체 건강에도 좋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휴대폰을 놓을 수가 없다.

출근할 때 깜빡하고 휴대폰을 집에 두고 가면 하루 종일 불안하고, 책을 읽지 않는 날은 있어도 네이버 블로그를 하지 않는 날은 거의 없다. 나 같은 경우엔 직장에서도 오후엔 거의 PC 앞에 앉아있고, 퇴근해서도 집안일을 하지 않을 때는 휴대폰을 하거나 노트북을 켜놓는다. 내가 하는 것은 글을 읽고 쓰기 위한 '의미 있는' 시간이고, 아이들이 휴대폰을 하는 것은 유튜브나 웹툰을 보는 시간 낭비일 뿐이라고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었다. 나만큼 공부하라는 잔소리 많이 안 하는 엄마가 어디 있냐고, 엄마는 '휴대폰 좀 그만해라'('나가지 않아도 좀 씻어라', '일찍 자라'는 부록)는 잔소리밖에 안하지 않냐고 큰 소리를 치기도 했다.


그런 나도 어느새 아이가 중학교 3학년이 되니 잔소리가 점점 많아지는 걸 스스로가 느끼고 있었다. 대책 없는 낙천주의자에 자유방임과 엇비슷한 아이들 아버지 대신 나라도 아이들 미래를 생각해서 고삐를 바짝 조여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중학교 3학년인 큰 아이는 영어, 수학은 성적이 좋은데, 학교 시험 기간에도 휴대폰을 오래 했고, 너무 공부를 안 하는 것 아니냐고 엄마가 걱정하면 '고등학교 가서 열심히 하면 된다'라고 천하태평이었다.


이제 곧 12월이 되면 고등학교 원서를 쓴다. 일반고를 지망하고 평준화 지역이라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지만, 가까운 사립고는 내신 잘 받기가 힘드니 조금 떨어진 공립고를 지망하는 친구들이 많다. 평소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때는 석차는 표시되지 않고 학년 평균과 자신의 점수만 나오니 심각성을 많이 못 느꼈고, 국어와 암기 과목에 신경을 좀 쓰라고 얘기하는 정도에 그쳤다. 국어 성적이 너무 떨어지길래 학원에 다니라고 해도 아이가 거부하니 어쩔 수가 없었다.

이번에 기말고사를 치고 교과 외 활동을 포함한 내신 성적표를 본 나는 깜짝 놀랐다. 처음으로 전교 석차와 백분율로 아이의 상대적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입꼬리가 아래로 축 처지며 한숨도 나오고 아이만 보면 자꾸 잔소리를 하게 되었다.


“딸, 너만은 엄마처럼 돌고 돌아서 제 길을 찾아가지 않고 편하게 자신의 길을 갔으면 좋겠다. 공부를 잘하면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넓어지지만 공부를 못하면 선택지가 별로 없단다. 우리 세대와는 달리 요즘은 대학을 졸업해도 취직하기가 너무 힘든데 아르바이트만 하다가 말래? 엄마, 아빠는 너희에게 물려줄 재산도 없다. 다른 특별한 재능도 없는 것 같으니 공부만이 너의 미래다. 공부가 너의 재능이고 보험이다. 그래 주면 안 되겠니. ”



이런 말을 그대로 다 하지는 않았다. 일부 거르고 얘기를 했지만 아이는 잔소리 몇 마디에도 토라져서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래, MZ 세대는 MZ 세대대로,  그 이후의 세대는 그 세대대로의 삶이 있겠지. 디지털 기기에 능숙하고 코로나도 겪은 너희들에게는 또 다른 삶의 방식과 생존법이 있겠지.

아이를 도서관에 데리고 가고 책을 사주고 부모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줘도 책을 읽지 않는 너희들에겐 너희 나름의 장점이 있고 언젠가는 꿈도 생기겠지. 부모가 안달복달한다고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내가 잔소리를 하고 공부하라고 들볶으며 학원 스케줄을 빈틈없이 빡빡하게 짜면 아이의 성적이 높아질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 대비해 아이의 반항심은 점점 높아지고, 가계 경제는 피폐해지며 가족 관계는 지금보다 더 소원해질 것이다. 무엇보다 아이가 학원을 가지 않으려고 하는데 문제가 있고 나도 억지로 시킬 자신이 없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아이의 학원을 고민하다가, 겨울방학에 12일간 동남아 여행을 예약한 대책 없는 엄마와 장기간 여행해도 좋다고 말하는 해맑은 딸. 큰 아이는 어릴 때부터 나와 여행을 많이 다녔다. 고등학생이 되면 해외여행 가기 어려울 테니 마지막으로 엄마와 여행을 하며 스트레스도 풀고 추억도 쌓는 거야. 제발 여행 가서는 아이에게 공부에 대해 스트레스 주거나 잔소리하지 말고 즐겁게 지내보자.


휴대폰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공부, 그러다 갑자기 여행?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생은 원래 논리 정연하지 않고 예상을 빗나가야 재미있는 거라며 변명을 해본다.


눈앞에서 오락가락하는 아이의 통지표에 질끈 눈을 감으며, 괜히 우울해지는 가을밤에는 맥주 한 캔을 찾는다.

딸깍.

'그래, 다 잘 될 거야. 넌 엄마 아빠의 딸이니까. '

남편 보고 비현실적 낙천주의자라고 해놓고 어느새 나에게도 그런 마음이 전염된 것일까.

아니면 알코올의 힘일까.

나도 모르게 빙긋 웃으며 태국의 산과 바다를 꿈꾼다.




# 원래 방향은 이게 아니었는데 글을 쓰다 보니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네요.

그래도 그냥 발행합니다.


#중3   #잔소리   #엄마의잔소리와성적의상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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