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바람이 부는 겨울이면 따뜻한 것이 그리워진다. 따뜻한 차, 뜨거운 국물 요리, 핫팩, 전기장판, 목도리와 따뜻한 스웨터. '스웨터'란 말은 어릴 때부터 각별히 애정하는 단어였다. 그 말을 들으면 파스텔톤 또는 무채색의 털실이 온몸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것 같지 않은가. 마법의 약 같은 색색깔의 털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매혹적이다.
스웨터에 대한 나의 로망은 초등학교 시절 단정하게 갈래머리를 땋아내린 모범생 친구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친하지도 않았던 그 소녀의 얼굴과 지역 방송국 노래자랑 출신자라는 사실과 가터뜨기로 예쁘게 짠 회색의 반팔 풀오버까지 아직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6학년 때 서울에서 전학 온 걸스카우트 친구의 흰색이 섞인 연노랑 스웨터를 보며 부러워한 것을 보면 어렸을 때의 나는 옷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우리 집 근처에 살았던 고모가 손뜨개를 잘 하시고 간단한 재봉도 하셔서 사촌 언니의 옷을 직접 만들어 주셨다. 진분홍색에 작은 구멍이 뽕뽕 난 얇은 봄가을용 스웨터가 탐이 나서 몹시 부러워했던 생각이 난다. 나도 짜 달라고 엄마를 졸랐는데, 엄마가 짜 주신 조끼들은 색상이 촌스럽고 우아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고등학생 때 베이지색 스웨터를 한번 짜 주셨는데, 양쪽에 꽈배기 무늬가 하나씩 들어간 그 스웨터도 내 마음에는 들지 않았다. 나중에 고모가 나를 위해 아이보리색 스웨터를 짜 주셨는데 몇 번 입지도 않고 니스가 묻어 속상했던 기억이 난다. 니트와 나는 이루어질 수 없는 애달픈 인연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스웨터에 대한 애착이 있는 내가 손뜨개를 시작한 것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나서였다. 그전에는 목도리를 한두 번 떠본 것이 전부였다. 중고등학교 가정 시간에 기본적인 대바늘, 코바늘뜨기에 대해 배웠지만 마무리하는 방법도 몰랐고 유튜브도 없던 때라 인터넷이나 책을 보며 간단한 소품을 떴다. 이것저것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반면 손끝은 야무지지 않아서, 소품을 뜨다가 코를 빠뜨리거나 어느 코에 꿰어야 되는지 헷갈리기도 하고 느슨해졌다가 타이트했다가 마음대로였다.
옛날 영화 '레이스 뜨는 여자'를 본 후, 레이스에 대한 로망이 생겨 구정 뜨개실로 도일리를 뜨기도 했다. 레이스 커튼이나 거미줄 같은 테이블 보를 뜬 것을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왔지만, 큰 작품을 할 여유와 실력은 없었다. 손뜨개가 적성에 맞는 편이 아니라는 것은 금방 알 수가 있었다. 뜨개를 하는 데는 차분함과 인내심이 필요했고, 무엇보다 시간이 많이 들었다. 겨울이 오면 털실의 매력에 빠져 뜨개를 하다가 몇 년이 지나자 그마저도 시들해졌다. 블로그에서 예쁜 작품을 볼 때마다 저장해두고 시간이 나면 만들어야지 생각하지만, 이래저래 분주한 나에게 그런 시간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올겨울에 어떤 계기로 몇 년 만에 다시 바늘을 잡게 되었다. 사랑과 정성을 담은 목도리 선물을 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목도리쯤이야 꼬박 하루면 다 뜨지 않을까?' 하고 시작했는데, 워낙 오랜만에 바늘을 잡았더니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블로그와 영상으로 예습을 하고 털실도 다시 구입하여 목도리를 뜨기 시작하였다. 퇴근 후 음악이나 오디오북을 들으며 짬짬이 뜨개에 몰입하는 그 시간은 무념무상,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반복되는 동작에 중간에 졸았던 지 몇 번 '푸르시오'를 하여 중간부터 다시 떠서 그런지 결과물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소품을 한두 개 더 떠서 선물로 보낼까 고민을 하고 유튜브를 보며 공부도 했다. 없는 솜씨에 능력 이상의 재주를 부리려 하니 핸드메이드 선물이 오히려 부담으로 다가와서 결국 목도리에 핸드크림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뜨개를 한다는 것은 우리네 인생과 비슷한 점이 많다. 그래서 그리스 신화에서 운명의 세 여신과 아라크네가 베를 짜는 사람으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우리나라에서도 돌잡이할 때 실은 수명을 상징한다.
뜨개를 시작할 때는 누가 봐도 경탄할 멋진 작품을 완성시키고 싶고, 여러 가지 우아한 작품을 구상하며 꿈에 부푼다. 이처럼 어릴 적에는 멋들어지게 잘 살고 싶은 욕심에 자신의 능력과 노력 이상의 것을 탐하며 미래의 찬란한 시나리오를 쓰지만, 모든 사람의 인생이 각본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세상과 맞부딪쳐 꿈이 깨어지면서 조금씩 조금씩 작아져가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뜨다 보면 실이 엉켜 살살 당겨 풀어보지만, 풀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더 엉켜 버리기도 한다. 애초의 도안과는 달리, 꿈의 실타래를 풀어 자신이 만들 수 있는 소박한 작품을 완성하는 사람도 있고, 성급하게 좌절하여 자신의 실을 끊는 사람도 있다. 처음에는 소박한 꿈을 꾸었으나 대기만성형으로 그 이상의 성취를 하는 사람도 어딘가에는 있을지도 모르겠다.
멋진 작품은 시간과 노력, 많은 연습을 통해 얻어지며 타고난 재능과 우연적인 요소도 개입한다. 우리의 삶에서 외부적인 요소를 제외하고 많은 노력과 배움으로 꿈을 이루는 사람도 있다. 노력과 투지만으로 되지 않는 일들도 있지만, 그것은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의 영역.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그림을 그리며 눈앞의 씨줄과 날줄을 엮어 오늘을 채워나가는 것뿐이지 않을까. 손뜨개를 풀면서 정직하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던 생각이 조금 거창하게 운명까지 들먹였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인상 쓰지 말고, 콧노래를 부르며 무늬를 짜고 힘들면 수다를 떨며 쉬어가기도 하는 것, 남과 비교해서 조금 부족해 보여도 정성스레 나만의 스웨터를 짜는 것, 그것이 나의 노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