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이 넘어서 느끼는 나의 민낯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by 류다



반백 넘어 살면서도 인생살이가 유독 서툴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잎새에 스치는 작은 바람 하나에도 예민하게 부대끼는 나를 보며, '너도 참 고달프게 산다'라며 혀를 차기도 한다. 남들에게는 '야,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대범하게 살라고 조언을 하면서도 정작 나 자신은 전형적인 소심녀이다. 어쩌면 내가 그렇기 때문에 그대들에게 더 그렇게 말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향한 독백처럼.


한때 좋아했던 노래 중에 The Alan Parsons Project의 'Old and wise'라는 아름다운 곡이 있다. 이 팝송의 가사를 찾아보진 마시라. 노랫말과 상관없이 그냥 곡조와 분위기로 좋아하는 곡이니까.

나이가 들면 현명해진다고, 또는 현명해져야 한다고 보통 생각을 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어린아이처럼 유치해지거나 독불장군처럼 고집이 세져서 다른 사람의 말은 전혀 듣지 않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젊을 때는 나에 대해 잘 몰랐다. 현실의 나를 직시하기보다는 내가 추구하고 지향하는 것이 바로 나 자신이고, 스스로의 어리석거나 부족한 면에 대해서는 외면하려고 했다. 그래서 실제보다 스스로를 부풀려서 인식했던 것 같기도 하다. 누구나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볼 때는 실제보다 더 잘 생긴 것으로 인식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외모뿐만 아니라 행동이나 성격에 대해서도 실제보다 후한 점수를 자신에게 주는 경우가 많다. 타인은 외적으로 드러난 것만 보고 평가하는 경우가 많지만, 자신은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과정과 행동의 원인 등을 속속들이 알기에 객관적인 평가가 어렵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입지는 점점 좁아지면서 스스로의 한계와 단점을 깨닫고 작아지는 나를 발견한다. 꿈처럼 황홀하게 부풀었던 풍선껌이 터지고 원래 풍선껌의 부피를 되찾았다. 이것은 내가 사회적으로 부와 성공을 거머쥐지 못해서 그런 것일까. 혹자는 그렇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성공한 연예인이 모두 행복하고 자신에 대해 높이 평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보통 오십 이전에 승진할 사람과 평범하게 퇴직할 사람이 판가름 난다. 관리자가 되지 못할 평범한 직장인은 나이가 들수록 목소리가 낮아지고 주변부로 밀려나 소외된다. 질량 보존의 법칙에 충실하려고 하는지, 아니면 자신의 존재 가치를 드높이려는 시도인지 모르겠지만, 쪼그라든 자신을 좀 더 그럴싸하게 확장시키는데 무의식적인 노력을 하게 되기도 한다. 좀 더 똑똑한 척, 좀 더 있어 보이게, 좀 더 유능하고 친절한 것처럼.


도대체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무리하고 과장하는 것인지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다 고개를 가로저을 때가 있다. 내 실력은 미천한데 그렇게 친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자신의 대외적 이미지를 관리하는 것처럼 생각됐기 때문이다. 내 삶에 그렇게 중요한 사람도 아닌데 나는 왜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비본질적인 것에 세세하게 신경을 쓰는 것일까. 소심하고 자신감 없는 사람의 단점일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스스로의 행동과 감정 반응에 깜짝 놀랄 때가 있다. 평소엔 신중하며 배려심 있고 조용한 것처럼 보이나 공격이나 비판을 받으면 쉽게 흥분하고 차분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 일에 대한 지적이 자신의 인성에 대한 지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 입장에선 이해가 되지 않는 상사의 말에 흥분하여 감정적으로 대처했다. 무시당한다는 느낌,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억울하면 출세하라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출세라는 단어부터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다. 내 안에 자존심 강한 모습과 다혈질적인 성격이 사회화되면서 많이 감춰져 있다가 나이가 들면서 조직에서 연배도 있다 보니 점점 당당하게 할 말도 하고 따질 것은 따지면서, 그 표현 방식에 있어 다소 우아하지 못하고 거친 것이 스스로를 더 작아지게 했다. 얼마 전 읽은 어떤 책에서는 그럴 때 자신의 그릇이 드러난다고 하였다. 이렇게 스스로에 대해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평가하는 것은 인생을 사는 데 득일까 실일까.


오십이 넘어서도 성인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 가끔 만나는 나의 민낯이 낯설고 당혹스럽다. 이렇게 자신의 민낯을 성찰함으로써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성숙한 사람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소심녀의고백 #건드리면터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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