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미디어 환경이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코로나와 백신과 관련된 허위정보나 가짜뉴스가 활개를 치면서 놀라운 속도로 사회의 혼란을 가중하고 있다. 폰다지오네 브루노 케슬러(Fondazione Bruno Kessler) 연구소가 소셜미디어에 퍼진 1억1천2백만 개의 코로나 관련 글을 수집해 분석했더니 40% 이상이 신뢰할 수 없는 내용으로 드러났다. 모기나 파리가 코로나를 전파한다는 잘못된 정보의 글도 많았고, 코로나와 5G 네트워크가 연관이 있다는 음모론 등도 상당했다. 코로나 불안 속에서 만들어진 신뢰할 수 없는 정보는 뉴스매체가 미처 검증할 시간도 없이 재빠르게 소셜미디어로 퍼져나갔다. 잘못된 정보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면서 일반 대중이 정확한 정보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고, 이로 인해 적절한 의료 대처도 어려워졌다.
팩트체크에 대한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시점이 되었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는 팩트체크나 미디어 리터러시에 대한 전략적 대응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팬데믹을 계기로 미국 학교의 수업은 1년 정도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되었고, 격리된 환경 속에서 디지털 미디어가 주요 교육 수단으로 교실 수업을 대체하였다. 충분한 준비 단계도 없이 진행된 온라인 교육 전환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부족으로 이어졌고, 학생들이 허위정보에 무분별하게 노출되는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릇된 정보, 음모론이나 가짜뉴스를 가려내는 팩트체크 교육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허위정보에 대처하는 팩트체크
미국에서 팩트체크 교육은 뉴스 리터러시 혹은 미디어 리터러시의 중요한 요소로 다뤄진다. 따라서 미디어 리터러시 정책 안에서 팩트체크 교육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살펴보면 그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최근에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학교 정규 교과과정에 통합하려는 움직임이 크게 일어나고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수십 년간 그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었지만, 대중의 큰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미국에서 집중적인 조명을 받게 된 것은 바로 2016년부터라고 평가할 수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분수령이 된 2016년 미국 대선은 가짜 뉴스로 점철된 혼돈 그 자체였다. 허위정보를 믿고 실천에 옮긴 ‘피자게이트’(pizzagate)까지 등장한 것은 미국인을 충격으로 몰고 갔다. 이 사건은 2016년 12월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사는 한 남성이 워싱턴DC에 있는 피자 식당에서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민주당 후보가 연관된 아동 성매매 조직이 활동한다는 거짓 정보를 그대로 믿고 납치된 아이를 구하겠다고 총격전까지 벌인 것이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만연하게 퍼진 허위정보를 팩트체크 없이 믿으면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피자게이트가 충격적인 이유는 평범한 일반인도 얼마나 쉽게 허위정보에 빠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현재 미디어 생태계는 허위정보를 거르는 자정 능력을 상실한 수준으로 후퇴했다.
허위정보의 위험성을 뒤늦게 깨달은 정부, 언론, 소셜미디어는 팩트체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듀크대 기자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에 44개뿐이었던 팩트체크 단체가 2019년에는 195개로 늘어났다. 스놉스(snopes), 팩트체크(FactCheck.org), 폴리티팩트(PolitiFact), 워싱턴포스트 팩트체커 등이 대표적인 선두주자로 팩트체크 활성화에 기여했다. 초기에는 기존 언론사의 한 부서가 인터넷 정보를 강조하면서 팩트체크의 중요성을 알렸지만, 팩트체크가 점차 독립된 기관으로 만들어져 허위정보에 전담하는 방향으로 발전하였다. 사람들의 뉴스 소비가 언론사에서 소셜미디어로 넘어가면서 허위정보 유포의 책임 소재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의 소셜미디어도 팩트체크 단체와 협력해서 허위정보 필터링하고 팩트체크 태그를 다는 방법으로 자정 활동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무엇이 진실인지 결정하기”(Deciding What’s True)의 저자 루카스 그레이브스(Lucas Graves) 위스콘신대 교수는 모든 종류의 허위정보를 팩트체크 단체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페이스북 같은 공개적 소셜 미디어는 팩트체크 단체가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지만, 폐쇄적인 메신저는 접근하기 어렵고 복잡하다. 결국, 일반 대중의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을 높이는 교육이 뒤따르지 않으면 허위정보의 홍수에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계를 깜짝 놀라게 한 보고서가 2016년에 발표되었다. 스탠퍼드대 역사교육연구소가 발간한 보고서는 미국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7천 804명을 대상으로 디지털 미디어 이해와 활용 능력을 측정하는 연구였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디지털 미디어가 발달한 시기부터 태어나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미디어를 능숙하게 다루는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s) 세대조차도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이 형편없는 수준인 것으로 밝혀졌다. 중학생의 80%는 일반 기사와 광고성 기사도 구별하지 못했다. 고등학생의 30%는 가짜 계정의 뉴스를 더욱 신뢰하고 믿는 것으로 드러났다. 스탠퍼드 보고서를 쓴 샘 와인버그(Sam Wineburg) 교수는 "젊은 층이 소셜 미디어를 능숙하게 다루기 때문에 허위정보를 가려내고 팩트체크를 잘할 거라고 믿는 건 오산”이라고 말했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역량 강화
2016년 이후 미국 교육계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정규 교과과정에 포함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비영리 옹호 단체 “미디어 리터러시 나우”(Media Literacy Now)가 미국 미디어 리터러시 정책 보고서를 2020년에 발표했는데, 이에 따르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법안으로 마련한 주가 14개나 되었다. 플로리다와 오하이오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정책에서 가장 뛰어난 주로 선정되었다. 2008년에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처음으로 도입한 플로리다주는 2013년에 초중고교 모든 과목에 미디어 리터러시 내용을 반영하도록 법안을 강화했다. 오하이오주 교육 위원회도 2013년에 정보 기술과 미디어 리터러시를 필수적으로 배워야 할 학업 능력으로 포함하는 통합 교과과정으로 전환했다.
미디어 리터러시 정책 보고서에서 두 번째 높은 단계로 선정된 텍사스주는 2019년에 미디어 리터러시의 하위 개념으로 평가되는 디지털 시민권(digital citizenship)을 교과과정에 추가했다. 세 번째 단계에 평가된 뉴멕시코주는 미디어 리터러시를 선택 교과과정으로 채택했고, 워싱턴주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사 양성을 위한 재정을 마련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마지막 단계로 캘리포니아주, 콜로라도주, 코네티컷주, 일리노이주, 매사추세츠주, 미네소타주, 뉴저지주, 로드아일랜드주와 유타주가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14개 주에 속하지 못한 다른 주들도 공청회를 개최하는 등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법안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에린 맥닐(Erin McNeil) 미디어 리터러시 나우 회장은 지금의 법안은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며 더욱 강력한 실천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법안이 마련되었지만, 학교 교실에서 충분한 교육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구체적 실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현장 학습으로 완벽히 정착되기 위해서는 더욱 큰 노력과 시간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비영리 교육단체인 뉴스 리터러시 프로젝트(News Literacy Project)의 등장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공백을 메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 단체는 2016년에 체콜로지(Checkology)라는 가상 수업 사이트를 개설해서 가짜 뉴스를 판별하는 비판적 뉴스 수용자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현재까지 2만 명의 교사와 14만 명의 학생이 체콜로지를 통해 뉴스 리터러시에 관해 학습했다. 구글이 후원하는 포인터 미디어연구소의 미디어 와이즈(Media Wise) 프로젝트는 중고등 학생을 대상으로 사실과 허위정보를 구별하는 능력을 갖추도록 현장 학습하는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미 500만 명 이상이 참여했다. 미디어 와이즈의 한 프로그램인 십 대 팩트체크 네트워크는 소셜 미디어에 퍼진 250개 이상의 주장을 팩트체크해서 허위정보를 밝혀냈다. 스탠퍼드, 스토니브룩 뉴욕 주립대 등 수많은 대학도 나서서 지역 중고등학생과 교사를 상대로 무료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하고 있다.
스탠퍼드대 연구팀은 2017년에 팩트체커, 대학생, 역사학자의 팩트체킹 과정의 온라인 추론을 분석했다. 팩트체커가 허위정보와 사실을 구별하는 데 역사학자보다 2배, 대학생보다는 5배나 높은 효율을 보였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연구진이 주목한 팩트체커의 특징은 수평적 읽기(lateral reading)이었다. 보통 학생들은 온라인에서 찾은 정보 사이트를 떠나지 않고 내용을 위에서 아래로 스크롤 하면서 읽기만 했다. 하지만 팩트체커는 그 사이트를 떠나서 다른 정보와 원문과 비교하는 방법으로 정보의 신뢰도를 평가했다. 의심되는 정보와 그걸 비판하는 정보를 동시에 창을 열어놓고 비교하는 수평적 읽기 능력이 허위정보를 찾아내는 데 효과적이었다. 이 연구에 참여한 새라 맥그루(Sarah McGrew) 매릴랜드대 교육학 교수는 “학생들이 신뢰도 높은 정보를 찾고 허위정보를 가려내는 데 수평적 읽기가 도움을 준다”라고 말했다. 이 연구가 밝혀낸 수평적 읽기 방법은 각종 수업 시간에 활용되어 학생들을 팩트체커로 교육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
미국의 학교에서는 실험적인 미디어 리터러시 수업이 교사의 지도하에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네브래스카주 링컨의 고등학교 교사 로버트 화이트(Robert White)는 “대다수 학생은 뉴스 사이트에서 본 내용을 그대로 믿었지만, 미디어 리터러시 수업을 들은 학생들은 뉴스의 출처를 확인하고 팩트체크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미디어 리터러시를 가르치면서 ‘뉴스를 작성한 사람은 누구인가,’ ‘뉴스의 증거는 무언인가,’ ‘다른 의견은 없는가’ 등의 질문을 학생들과 수업 시간에 논의했다. 뉴욕의 조지 잭슨 아카데미 중학교 교사 데이비드 홍(David Hong)은 뉴스 풍자 사이트 어니언(Onion)의 기사를 수업 자료로 쓰면서 뉴스와 의견이 복잡하게 얽힌 뉴스 생태계를 분석했다. 그는 학생들이 사실과 허구가 미묘하게 섞인 정보까지도 분석할 수 있는 비판적 뉴스 수용자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단체 네임리(NAMLE)는 초등학교 고학년(3-5학년)을 대상으로 미디어 몬스터 캐릭터가 등장하는 교육 자료를 만들어 배포했다.
미국 팩트체크 교육의 시사점
미국 팩트체크 교육은 2016년을 분기점으로 긴급한 당면 과제로 인식되고 있다. 관련 교육 법안이 주마다 마련되고 재정 예산도 확보되면서 상당히 진전되고 있다. 하지만 팩트체크를 비롯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정규 교과과정으로 정착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팬데믹으로 발생한 교육 공백과 격차로 인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정착에 난항을 겪고 있지만, 허위정보에 재빨리 대응해야 한다는 요구의 목소리 또한 높다. 팬데믹 때문에 디지털 미디어 전환이 빨라지고 있어 팩트체크 교육이 더욱 시급한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팩트체크 교육은 선구적 실험과 실습으로 디지털 시대에 맞는 새로운 방법을 찾고 있다.
한국도 팩트체크 교육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다. 서울대 언론연구소 팩트체크센터는 2020년에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청소년 팩트체크 스쿨을 진행했다. 학생들이 허위정보와 팩트체크를 실습으로 배워볼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런 교육이 이뤄지는 것은 좋은 기회지만,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더 많은 학생이 팩트체크에 대해 배울 수 있도록 정규 교과과정으로 편성하여 다루는 방법이 더욱 근본적인 해결 방안일 것이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미국만의 흐름이 아니라 유럽, 캐다나 등 전 세계의 공통된 화두가 되었다. 한국도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기대한다.
시청자미디어재단 미디어리에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