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랑 둘이서 시작한 글쓰기 모임
한동안 아무 글도 쓰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살았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집안일 하는 삶의 쳇바퀴는 문제없이 잘도 굴러갔다. 트위터나 인스타에 글을 쓰는 것도 힘들었다. 무료하고 덧없는 시간을 공유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만 흘러갔다. 팬데믹의 후유증일까? 그럴 수도 있다. 사람들 만날 일도 적어지고 고립되어 사니 생활이 단출해졌다. 마스크로 무장한 채 최소한 대화만 나누고 살았다. 활동 공간이 한없이 줄어들었다. 돌아다니지도 않으니 새롭게 경험할 일도 줄어들었다. 뭐라도 쓰려면 생각의 재료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부족했었나.
쓰지 못하는 기나긴 방황의 시간
그렇다고 팬데믹 탓만 하며 계속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다시 써야 한다는 욕구가 밀려왔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쓰는 법을 완전히 잃어버린 거 같았다. 책상 앞에 앉아서 멍하니 컴퓨터 스크린만 쳐다본다고 해결되지 않았다. 아내나 나나 글 쓰는 게 중요한 사람이라서 이게 되지 않으니까 막막했다.
아침 산책을 마친 후에 모처럼 아내와 진지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대화한다고 다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우리는 그만큼 절박했다. 대학 교수인 아내도 학계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면 연구 논문을 계속 써야 한다. 논문 쓰는 일이 잘 안되어서 몇 달째 손을 놓고 있었던 아내가 먼저 고민을 진지하게 털어놓았다. 나도 시작만 해놓고 진전되지 않는 글이 넘쳤다. 거의 다 써놓고도 마무리하지 않은 글이 계속 늘어서 답답하던 차였다.
어떤 결단이라도 내리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심각한 시간이 우리를 찾아왔다. 아침의 대화는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았다. 어디부터 막히게 되었는지 서로 시작점을 찾아보는 방향으로 대화가 이어졌다. 막연하게 짐작만 하고 있던 상황의 원인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걸 인정하는 게 뼈아픈 과정이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는 의욕을 가지고 시작했던 새로운 글쓰기가 실패한 탓이었다. 새로운 독자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시작했던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내 글쓰기가 부족했을 수도 있고, 플랫폼 자체가 효과적이지 않을 수도 있고, 독자층과 궁합이 맞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유가 어떻게 되었든지 인정하기 싫지만, 실망감이 어지간히 컸었던 모양이다. 패배감이 너무 커서 글쓰기를 아예 닫아버렸다.
좌절해서 우울했던 시간이 지나치게 길었다. 멍하니 있지 않고 다른 일을 찾아서 빠져들었다. 독서 모임에도 가입하고 소설을 찾아서 열심히 읽었다. 소설 읽기가 장기적인 글쓰기에 도움이 되리라는 막연한 생각에 더 빠졌다. 독서가 글쓰기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내가 직접 쓰지 않는 한 오락거리에 불과했다.
내 소설을 구상하고 캐릭터를 만드는 일도 잠시 매진했다. 그 일도 오래가지 않았다. 어떤 캐릭터로 무슨 내용을 써야 할지 몰랐다. 소설 쓰기 프로젝트도 그렇게 흐지부지하게 사그라들었다. 명확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시작한 게 아니라 막막한 상태만 벗어나려고 했으니 그 목적은 충족된 셈이었다. 이리저리 도망만 치다가 시간이 자꾸 흘러갔다.
글쓰기에 관한 책을 찾아서 읽으면 도움이 될까 해서 소설 작법이나 글쓰기 책을 탐독했다. 흥미로운 독서였고 다양한 팁은 배웠다. 그뿐이었다. 다시 글을 왕성하게 쓰게 되진 않았다. 여전히 막혀있기 매한가지였다. 이렇게 오랜 시간 글을 쓰지 않은 적이 없었다.
나는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인간이었다. 표정마저 굳어가고 있는 걸 아이도 알아챘다. 뭐가 그렇게 심각하냐고 아이가 불평을 늘어놨다. 아이한테는 늘 자상하고 친절한 아빠가 되고 싶었는데 이제는 숨길 수도 없었다. 무슨 수라도 강구해야겠다는 고민만 늘어갔다. 심리 상담이라도 받아야 할까? 할 수만 있다면 마다하지 않겠다.
닥치고 쓰기 프로젝트
아내랑 대화를 나누다가 우연히 방법을 찾았다. 만나서 입을 닥치고 무조건 쓰는 프로젝트(Shut Up and Write)가 포틀랜드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거라도 해보자! 자세히 알아보니까 최근에 팬데믹 때문에 모임이 무기한 연기되었다고 한다. 팬데믹 영향으로 아직도 못하는 일이 많지만, 그냥 포기하기에는 우리는 너무 간절했다. 아내가 둘이라도 같이 해보자고 제안했다. 두 명이라고 못 할 것도 없다. 이 프로젝트는 말 그대로 말하지 않고 묵묵히 쓰기만 하면 되는 거다. 아무 카페나 가서 노트북을 꺼내서 쓰기 시작하면 된다.
이렇게 아내랑 의기투합해서 닥치고 쓰기 프로젝트를 시작해보기로 했다. 쇠뿔도 단김에 뽑는다고 프로젝트를 다음날부터 당장 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카페에 와서 이 글을 쓰고 있다. 힘들게 왔는데 노트북에서 예전에 쓰던 글을 뒤적거리며 망설이는 나를 발견했다. 못 쓰고 있던 경험이 순간 해일처럼 밀려왔다. 중대한 결심까지 하고 어렵게 나왔는데, 또 못 쓰고 있는 나를 보는 것은 더는 못 참겠다.
내 경험이라도 정리해보자는 심정으로 새 파일을 열어서 쓰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줄줄 써 내려가고 있는 게 신기했다. 일단 독자도 비평도 생각하지 말자. 내 생각만 정리하기로 하니까 막힘없이 쓸 수 있었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생각을 떨쳐버리니까 홀가분했다. 그동안 못 쓰고 있었던 게 맞았나? 어차피 남들한테 보여주기 전까지는 온전히 나의 글이다. 맞춤법이나 문법이 틀릴까 신경 쓰지 않고 내 생각만 꺼내서 털어보자는 마음으로 임했다.
주변을 돌아보니까 혼자서 노트북을 가지고 나와 쓰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카페 전체가 닥치고 쓰기 프로젝트의 공동체처럼 보였다.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고 있을 뿐이지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이 여기로 몰려온 게 아닐까. 아내도 옆에서 무슨 글을 쓰는지 키보드를 열정적으로 치고 있다.
막혀 있던 시냇물이 다시 흐른다. 고인 물이 풍기던 악취도 어느 틈에 사라지고 시원한 바람까지 어디선가 불어오고 있다. 에어컨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카페를 활기차게 휘젓고 돌아다닌다. 여기까지 나와서 대단한 글을 쓴 건 아니지만 무슨 글이든지 시작할 수 있었다. 이게 얼마 만에 느껴보는 감정인가. 다시 예전처럼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이라도 닥치고 쓰기 위해 이렇게 나와야겠다. 집에 있는 오피스는 쓰지 못한 경험이 너무 켜켜이 쌓여 있어서 책상만 봐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오로지 쓰기 위해, 나한테 쌓인 스트레스가 보이지 않는 카페로 나왔다. 오늘은 소셜 미디어도 확인하지 않았고 뉴스 사이트도 찾아보지 않았다. 세상일보다 내 글쓰기가 최우선 순위였다. 문서 프로그램만 띄워서 바로 글쓰기에 들어갔다. 이것도 처음 해보는 경험이다. 아내랑 커피를 마시며 대화하는 시간도 거의 없었다. 노트북 코드도 가져오지 않아서 배터리가 떨어질 때까지만 쓰려고 왔다. 마치 마감 시간이 정해진 글을 쓰는 것처럼 쫓기듯이 달렸다. 2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닥치고 쓰기 프로젝트가 예상했던 것보다 잘 진행되었다. 매일 이렇게 잘되지는 않겠지만 경험이 쌓이면 나만의 노하우가 생기겠지. 예전의 글 못 쓰던 나를 벗어나기 위해 필명도 새로 만들었다. 며칠 전에 봤던 탑건 영화의 캐릭터가 문득 떠올라서 ‘매버릭’으로 결정했다. 비행하는 게 너무 좋아서 승진도 거부하고 자유롭게 사는 매버릭처럼 살아보고 싶었다.
머릿속에 돌아다니며 나를 괴롭히는 생각들을 잠재우고 마음껏 쓰니까 날아갈 것 같다. 나를 꾹꾹 눌러서 땅속으로 파묻는 무거운 짐을 모조리 덜어내고 쓰는 게 이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오늘의 작은 성공이 모이면 어두운 터널을 벗어나 멋지게 비행하는 날이 찾아오겠지. 아내도 나도 집을 박차고 나와서 글 하나씩 완성해서 돌아가니 마음이 뿌듯하다. 작은 날갯짓이 큰 비행으로 이어지길 믿고 일단 닥치고 쓰기 프로젝트에 도전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