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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동협 Sep 23. 2022

팽이버섯 하나가 8300원... 지금 미국이 이렇습니다

고물가 때문에 달라진 미국 한인 가족의 살림살이

우리 부부는 한인 슈퍼마켓을 나서며 영수증을 꺼내 몇 번이나 확인해야만 했다. 평소에 내던 가격보다 너무 높게 나와서 믿을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계산이 잘못되어서 부당하게 청구된 식품이 있는지 꼼꼼히 살펴봤다. 아무리 확인해도 사지 않은 물건이나 수량이 잘못 들어가 있는 식료품은 없었다. 가격이 전반적으로 조금씩 올랐기 때문이었다. 항상 사던 식품이라고 가격을 일일이 확인하지 않은 우리의 잘못이었다.


“팽이버섯이 5.99달러(약 8360원)나 하네.”

“뭐야, 원래 1.99달러였잖아. 2배도 넘게 올랐네.”

“이제 버섯도 마음대로 못 사 먹겠다.”


미국 생활이 길어지니 식생활도 서구식으로 변해서, 어지간한 식료품 쇼핑은 미국 슈퍼마켓에서 해결했다. 한식 재료가 떨어져 오랜만에 한인 마트로 쇼핑하러 왔더니 물가가 뛴 걸 확연히 느껴졌다. 팬데믹 때문에 한국에서 오는 물류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서 가격이 더 오른 탓도 있을 거다. 하지만 미국 슈퍼마켓이라고 해서 상황이 나은 편도 아니다.


물가는 치솟는데… 임금은 제자리네


미국에 산 지가 20년 정도 되었지만 이렇게 물가가 오른 적은 없었다. 미국 노동통계국(U.S Bureau of Labor Statistics)이 밝힌 지난 8월 물가 인상률은 8.3%를 기록했다. 그나마 물가가 안정권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하지만, 여전히 고공비행 중이다. 식료품 물가 상승률은 11.4%로 43년 만에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미국인의 생필품이라 할 수 있는 계란(39.8%), 버터(24.6%), 밀가루(23.3%), 우유(17.7%)의 인상률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물가 때문이라도 강제로 다이어트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  2022년 6월 기준 지난 1년간 음식 물가 상승률이 무섭게 올랐다. (자료: 미국 노동통계국/ 그림: 류정화)  ⓒ 류정화


가격 인상에 대한 부담 때문에 식음료 기업이 중량을 살짝 줄여서 팔거나 값싼 원료로 대체하는 방법으로 소비자를 기만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이는 소비자 물가지수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마치 물가가 오르지 않은 것처럼 느끼게 해서 소비자를 속이는 효과가 있다. 식품기업만의 문제가 아니고, 다른 기업들도 비슷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소비자 관점에서 과거 제품과 하나씩 비교해서 살펴보지 않으면 언제 어떻게 속을지 모르는 무서운 상황이 되었다.


특정 기업 탓만 할 수도 없을 정도로 불과 1년 사이에 물가가 지나치게 올라버렸다. 물가가 진정된 기미는 눈곱만치도 보이지 않았다. 쇼핑할 때마다 물건 판매대에 붙어 있는 올라간 가격표를 확인해봐도 요지부동이다. 이제는 우리가 달라진 물가에 맞춰 살 수밖에 없다.


아내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가격을 확인하고 물건 사는 습관부터 다시 몸에 익혔다. 잠시라도 방심하다가 비싼 가격에 놀라 장바구니를 허둥지둥 챙기게 되는 건 과히 즐거운 경험은 아니다. 우리는 카트에 물건을 담기 전부터 가격을 일일이 확인하고 비교하고 알뜰하게 챙겼다.


치솟는 물가에 맞춰서 월급도 인상이 되었다면 문제 될 게 없다. 임금은 오르지 않고 물가만 올라가니 가정 경제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아내 직장도 팬데믹 타격 때문에 월급이 동결되었다. 깎이지 않는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 지경이다. 


코로나 이후 직장에서 행복을 찾을 수 없어 ‘대퇴사(the Great Resignation)’의 행렬에 동참하는 사람이 급증했다. 아내의 직장에서도 퇴사한 사람은 늘어났는데 새로 사람을 뽑지 않으니까 일이 몇 배로 늘어나서 사는 게 더 피곤해졌다고 한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일만 늘고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았다. 자동차 기름값, 월세, 공과금, 식비 부담까지 커져서 가정 경제가 적자로 돌아섰다.


높아진 물가… 내 집 마련의 꿈도 ‘일시 보류’


고물가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 가족은 예산을 맞추며 살 수 있었다. 고물가 이후에 적자 경제로 허덕이게 됐다. 무슨 대책이라도 세워보기로 했다. 아내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며 예산을 조정해나가기 시작했다. 주거비나 의료비는 쉽게 줄일 수 없었다. 그 외의 다른 비용을 줄일 방법을 찾아야 했다.


우선 패션 지출부터 줄여보기로 했다. 팬데믹 여파로 어차피 외출도 자주 하지 않으니까 새 옷을 살 필요가 없었다. 한참 크는 아이의 옷만 필요한 때마다 조금씩 샀다. 돈이 있어야지 멋도 부릴 수 있다. 계절에 맞게 입을 옷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영화나 공연도 별로 없으니 엔터테인먼트 비용을 줄이는 건 쉬웠다. 보고 싶은 책이나 영화는 도서관에서 빌려보기로 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보드게임이나 콘솔게임도 도서관에서 빌릴 수 있었다. 도서관 나들이는 우리 가족의 주말 외출로 새로 자리 잡았다. 사지 않고 빌리니까 더 많은 책과 다른 콘텐츠를 대출 기간에 맞춰서 더욱 알차게 즐길 수 있었다.


▲  아이가 보려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입니다.


이제 식비와 생필품 비용을 줄일 일만 남았다. 외식은 거의 안 하게 되었다. 팬데믹 때문에 나갈 일도 없었고, 막상 식당에 가더라도 예전처럼 만족스럽게 음식을 즐길 수 없었다. 외식비가 줄였으니 집에서 만들어 먹는 식비는 당연히 늘어났다. 따라서 슈퍼마켓을 선택하는 데도 신중해졌다. 가격 비싼 유기농 슈퍼마켓은 출입을 끊었다. 값싼 슈퍼마켓 자체 브랜드를 많이 파는 트레이더조 같은 가게를 더 선호하게 되었다.


환경이나 건강을 위해 구매하던 유기농 제품도 사치처럼 느껴져 일반 농산물로 바꿨다. 농약 잔류물은 잘 씻으면 안전하게 먹을 수 있으니까. 같은 상품도 몇 번씩 들었다 놨다 하며 원료를 비교하고 가격도 또박또박 따졌다. 우리는 어느새 깐깐한 소비자가 됐다. 맛이나 품질이 비슷하면 무조건 싼 걸로 골랐다. 브랜드가 아닌 슈퍼마켓 자체 식료품으로 눈길을 돌렸다. 시식해보니 맛은 큰 차이가 없는데 가격은 더 쌌기 때문이다.


냉동식품보다 신선 재료를 더욱 많이 구매했다. 편리하게 조리된 냉동식품을 사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채소도 손질돼 있지 않은 걸로 마련했다. 손질하는 인건비도 아까울 만큼 절박했다. 고물가 시대에는 지출을 줄이려면 내 몸을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물가 때문에 생활의 편리함도 하나둘 포기해야만 했다.


비누, 휴지, 세제, 세면용품 등 생필품을 사는 것도 가격이 제일 중요한 척도가 되었다. 평소에 선호하던 브랜드 제품도 과감히 버렸다. 물가와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가격 대비 성능이 좋은 제품을 가능하면 많이 찾아야 했다. 우리는 브랜드 이미지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게으른 소비자였다.


고물가 때문에 우리 소비 생활을 되돌아본 계기가 된 건 긍정적인 변화였다. 요리, 바느질, 도서관의 즐거움을 다시 찾은 것도 의외의 수확이었다. 하지만 모든 걸 줄여야 하는 건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급격하게 오른 집값 때문에 우리 가족이 차근차근 준비했던 내 집 마련의 꿈도 당분간 접어야 했다. 근사한 집을 사느라 빚더미에 깔리고 싶진 않았다.


인플레이션은 우리 가족만이 겪는 고충이 아니었다. 한국도 2022년 7월에 소비자 물가가 6.3%나 오르면서 24년 만에 최고점을 찍었다. 인플레이션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우리가 얼마나 이렇게 더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오마이뉴스에 기고 / 그림: 류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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