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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동협 Jul 01. 2021

코로나 때문에 등교도 무섭다는 아이 달래기

[아빠가 쓰고 고모가 그린 육아일기 2] 동물원 피크닉

밤에 잘 때도 야간등을 꼭 켜줘야 하고 화장실에 갈 때도 괴물이 공격하지 않게 지켜줘야 하는, 쉽게 겁내는 아이를 키우고 있다. 코로나가 터지면서 아이의 겁은 더 많아졌다. 반 격리 상태의 집안 생활이 1년 반이 다 되어가다 보니 아이의 몸과 마음이 더욱더 움츠러든 것 같다.


팬데믹 때문에 집안에 갇혀 지내는 동안 아이랑 같이 할 수 있는 요가, 줌바, 댄스, 에어로빅에 차례로 도전했다. 처음 몇 개월은 아이도 재밌어하고 운동 효과도 꽤 있어서 스트레스도 풀렸다.


그렇지만 실내생활이 길어지면서 초반의 반짝 흥미는 이내 사라졌다. 아이를 재밌게 해줄 멋진 아이디어도 이제 바닥났다. 장난감, 보드게임도 싫증이 난 아이는 틈만 나면 텔레비전을 켜서 넷플릭스 쇼를 보거나 닌텐도 게임을 하려고 들었다.


코로나 직후 운동 비디오를 열심히 따라하는 아이 © 류정화


신중히 계획한 피크닉


하루 확진자 30만 명에 육박하던 미국의 코로나19 절정기에는 정말 무시무시해서 나갈 엄두도 못 냈다. 하지만 백신 접종률이 올라가고 치료제도 개발되고 있어서 미국의 상황은 비교적 안정권에 접어들었다. 그렇게 나아진 상황을 아무리 자세히 설명해줘도 아이는 아예 밖으로 나가려고 하지 않는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더라도 아이가 정상적인 활동에 적응하려면 한참 애먹을 거 같아 걱정이다. 공원이나 놀이터에서 축구나 야구를 하자고 해도 아이는 무조건 싫다고 한다. 가을에 2학년으로 올라가면 학교를 정상적으로 나가야 하는데, 아이는 그것마저도 안 하겠다고 버티고 있다.


무슨 수라도 써야겠다 싶었다. 아내와 동물원에 갈 것을 상의하면서 녀석의 격렬한 저항이 예상되었다. “어디 가고 싶은 곳 없어?” 내가 먼저 아이의 의향을 슬쩍 떠보았다.


“코로나 때문에 아무 데도 못 가잖아요.”

“아니야, 이제 코로나도 많이 약해졌고, 조심해서 다녀오면 괜찮아.”

“집에서 게임이나 할래요!”


아내까지 나서서 피크닉 음식을 먹으며 놀자고 아이를 설득했더니 겨우 넘어왔다.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동물인 기린을 볼 수 있는 ‘오리건(Oregon) 동물원’을 피크닉 장소로 결정했다. 몇 차례 다녀와서 익숙하고 넓은 잔디 광장이 있어서 피크닉 장소로도 적합했다. 티켓은 인터넷으로 예매하고 음식 준비도 하고 일사천리로 계획을 추진했다. 오리건주 백신 접종률이 50%를 넘어섰지만, 여전히 안심하긴 일렀기 때문에 마스크와 방역용품을 빠짐없이 챙기고 외출을 철저히 대비했다.


우리는 불안한 마음 반, 기대하는 마음 반으로 집을 나서 예약된 시간에 맞춰 동물원에 도착했다. 입구부터 마스크를 단단히 쓴 직원들이 돌아다니며 안내하고 있었다. 예약도 없이 왔다가 허탕 치고 돌아가는 가족도 상당수 있었다.


코비드 대유행 이후에 동물원이 운영 정책을 바꿔서 관람객 인원을 제한하고 있었기 때문에 예약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었다. 복잡한 절차를 인터넷으로 전부 처리하고 현장에서는 바코드만 찍고 입장하니까 간편해서 좋았다.


아이와 함께 마스크를 쓰고 정해진 방향을 따라서 펭귄, 침팬지, 수달의 우리를 찬찬히 돌아보았다. 아이는 오랜만에 만나는 동물을 보며 감탄했다. 아이가 통제된 공간이나마 마음대로 뛰어다니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실내에서는 아슬아슬한 순간도 몇 차례 닥쳐왔다. 출입구 문을 활짝 열어놓아 공기 순환이 잘되도록 해놓았지만,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사회적 거리 유지도 안 되는 좁은 공간에 너무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몰려드는 바람에 몸이 서로 뒤엉켰다.


아내가 재빨리 아이의 손을 잡고 한적한 곳으로 이끌었다. 아무리 마스크를 쓰고 있더라도 신체 접촉이 생기면 좋을 리가 없다.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었던 우리 가족은 그렇게 보는 둥 마는 둥 하면서 관람을 재촉했다.


마스크를 쓰고 동물원 구경 © 류정화


인파를 벗어나 탁 트인 잔디밭 광장에서 다다라서야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점심시간이 되기 전부터 광장을 메우고 있는 가족 몇 팀을 지나서 빈자리를 찾았다. 벌레를 무서워하는 아이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돗자리를 펼쳤더니 아이가 귀퉁이에 슬며시 걸터앉았다. 아내와 나도 돗자리에 앉아서 마스크를 벗고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과 따스한 햇볕에 몸을 맡겼다.


"아, 이게 얼마 만에 느껴보는 일상의 즐거움인가?"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코로나 공포가 빼앗아간 소중한 보물을 가까스로 되찾은 것 같아 감격스러웠다. "이대로 즐겨도 될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불쑥 밀려오는 걸 애써 밀어내고 모처럼 나온 피크닉을 마음껏 즐기기로 했다.


돗자리에 비스듬하게 누워서 주위를 둘러보는데 어디선가 비명이 들려왔다. 놀라서 돌아보니 여자아이 서너 명이 광장 근처 까마귀를 쫓아다니며 소리치고 있었다. 음식 부스러기를 먹으려고 날아드는 까마귀와 소녀들의 추격전은 아주 실감 났다. 우리 아이도 저 소녀들처럼 긴장을 확 풀고 뛰어놀았으면 좋으련만.


겁먹은 아이 달래주기


엄마 곁에 딱 붙어서, 아이는 무릎을 끌어안고 근심에 가득 찬 표정으로 하늘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도 어릴 때 무서워서 바깥에 못 나갔던 적이 있었다. 엄마는 겁 많고 내성적인 나를 심부름이라도 자주 밖에 내보내면 성격도 활달하게 바뀔 거라고 믿었었다. 그날도 내키지 않았지만, 엄마의 뜻대로 나갔다가 순간 두려움이 엄습했고 나는 어두운 공터에 꼭꼭 숨고 말았다. 결국, 온 동네 사람들이 나를 찾느라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억지로 밖으로만 끌고 나온다고 아이의 겁이 저절로 사라질 리 없다. 준비가 덜 된 아이한테 변화를 강요하면 역효과를 가져올 거라는 걸 나는 스스로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의 간절한 희망과 달리 그 사건 이후에도 나는 두려움을 쉽게 극복하지 못했다.


재작년에 동물원에 왔을 때만 해도 저 아이들처럼 소리치며 뛰어다니던 아이가 지금은 너무 얌전해서 안타까웠다. 웅크린 아이를 꾀어서 조금만 걷자고 했다. 기지개도 한 번 켜고 마스크도 고쳐 쓰고 잔디 광장에서 술래잡기했더니 녀석은 금세 신났다. 아이가 한동안 뛰어놀다가 멈춰서 어디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뭣 때문이냐고 물어봐도 아무것도 아니라고만 했다.


아이가 흘깃 쳐다보는 방향을 유심히 살폈다. 광장 주변으로 사람들이 줄 서서 기다리는 천막 하나가 보였다. 아이스크림 가게였다! 아이스크림 먹고 싶냐고 물어봤더니 아이는 이번에도 아니라고 딱 잡아뗐다. 밖에서 사 먹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쿠키 아이스크림을 사주자 아이는 뛸 듯이 기뻐했다. 이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돌아오는 길에 아이한테 물었다.


“동물원에 오니까 좋아?”

“응, 좋아”

“다음에 또 올까?”

“아니”

“왜?”

“너무 덥고 땀나서 싫어. 에어컨이 빵빵한 수족관에 갈래요.”

“하하하......”


두려움과 불안함에 떠느라 제대로 즐기지 못한 피크닉이었지만 예상했던 거보다 나쁘지 않았다. 일단 바깥으로 아이를 데리고 나오는 데는 성공했으니까. 코비드 이전의 정상 생활로 돌아가려면 아직 멀었다. 그렇다고 코로나의 공포에 질려 아무것도 안 하며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달라진 현실에 맞게 아이가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게 부모의 도리다.


어른한테도 힘든 코로나 격변기의 현실 적응 훈련을 아이한테 무리하게 강요할 생각은 없다. 불안에 떠는 아이의 마음부터 달래주면서 아이가 스스로 극복할 때까지 곁에서 기다려줄 생각이다. 방학을 맞아 이런 바깥출입 연습이라도 자주 해보려고 한다. 피크닉이 그 시작이었다. 안전한 환경 속에서 할 수 있는 걸 하나씩 찾아서 도전해봐야겠다. 함께 공원도 가고, 식물원도 가고, 다른 장소도 찾아 가봐야겠다.


- 그림: 류정화 일러스트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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