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 입학 후 6년, 그리고 +a 의 시간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의과대학에 입학하면 어떤 일들이 기다리는가 (3)
: 기초의학부터 임상의학까지
1편과 2편의 내용은 의예과 전반, 그리고 가장 힘든 시절 중 하나인 해부학과 해부 실습에 대한 내용을 다루었다. 해부학의 힘든 시간 이후, 의학과에 진급하게 된다. 아무리 의예과 2학년 2학기부터 해부학을 비롯한 기초 의학을 공부했다 하더라도, 의학과는 의예과와 다른 취급이다. 선배들, 교수님들은 의학과부터는 진정한 의학도, 후배로 취급하기 시작한다. 의학과는 본격적인 의학 공부가 시작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해부학을 공부하지 않았다면, 의학과 1학년 1학기부터 해부학을 공부하고, 의예과에서 해부학을 공부했다면, 의학과 1학년부터 기초 의학과 임상 의학을 같이 공부하기 시작한다. 의과대학에서 가장 지겹고, 기나긴 공부 생활의 시작이다.
일반 대학생들에게는 친숙하지 않은 블록제 생활의 시작이다. (현재 대부분의 의과대학에서는 블록제를 채택하고 있고, 일반 학기제를 채택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따라서 블록제 의과대학에 대해서 서술하고자 한다.)
블록제는 학기를 블록처럼 쪼개, 각 블록마다 한 두 과목을 배정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한 학기를 16주라면, 소화기학 4주, 소아과학 4주, 산과 2주, 부인과 2주, 피부과학 1주, 이비인후과학 1주, 근골격학 2주, 이런 식으로 과목마다 주차를 배정하여 한 과목을 빨리 끝내고, 다음 과목으로 넘어가는 방식을 반복하는 방법이다. 블록제는 의학 과목 과목을 빨리 간결하게 끝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학생들에게는 다양한 과목을 한 번에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장점이 있다. 집중해야 할 과목에 집중하여 공부를 하고, 한두가지 과목에 전념할 수 있다. 또한 학사 일정을 짜고, 의학 교육 커리큘럼을 구상할 때 과목 배치를 간단히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의학 교육에 선후나 상하 관계는 거의 없고, 과목마다 그러한 관계도 없지만, 특정 과목을 먼저 해서 다른 과목의 이해도를 높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예를 들어 산부인과와 소아과를 연계하여 출산과 신생아 관리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
블록제는 단점도 명확하다. 특정 과목을 공부하고, 복습하거나 깊게 생각해볼 수 없다는 것이 큰 단점이다. 의학 공부는 양이 정말 많다. 해부학만 교과서가 천 페이지가 넘는다. 해리슨 내과학은 수천 페이지가 넘어간다. 산과 부인과학 교과서 또한 천 페이지는 가볍게 넘긴다. 블록제를 시행하면 의대생들은 해당 주차에는 그 과목을 정말 열정적으로 공부한다. 학생들에 따라서 수업 자료를 모두 외우기도 하고, 원서 교과서까지 찾아가며 공부하기도 한다. (필자 또한 몇 과목은 원서 교과서까지 찾아가며 수업 자료와 대조하며 공부한 경험이 있는데, 그러한 과목들은 모두 성적이 잘 나왔다.) 하지만 블록 주차가 끝난 이후에, 공부했던 내용을 복습할 시간은 전혀 없다. 우스개소리로, 의대생들이 한 과목을 끝내면 술을 마시면서 머리를 비우고, 다음 과목을 공부할 머리 속 공간을 만들어낸다는 농담을 하기도 한다. 슬프지만 이는 농담이 아니다. 블록제는 장기적인 의학 공부에는 좋다고 이야기하기 어렵다.
의학과 진입 후에는 기초 의학을 시작으로, 임상 의학까지 많은 과목을 대부분 블록제로 공부한다. 기초 의학은 임상 과목이 아닌, 예방 의학, 미생물학, 면역학, 약리학 등의 과목이다. 이공계의 자연과학을 생각하면 편하다. 의학의 근본, 기초, 원리 등을 공부하는 학문이다.
임상 의학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병원의 세부 분과를 생각하면 쉽다. 내과, 소아과, 정형외과, 산부인과, 안과 등으로, 이공계로 비유하면 컴퓨터 공학, 전자 공학과 같은 기초를 활용하고 응용하는 분야이다. 이 기간은 보통 의학과 1학년과 2학년, 2년에 걸쳐 진행된다. 의학은 통합적인 학문이다.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마이너 (내외산소를 제외한 대부분의 소수과)를 2년에서 3년에 걸쳐 공부해야 일반의가 될 수 있는 기초 바탕이 마련된다. (가끔 부족한 흉부외과 의사, 소아과 의사만을 키워내는 의과대학을 만들면 되지 않냐는 의견들이 인터넷에 있다. 이는 위와 같은 이유로 불가하다.)
수많은 과목을 1주, 2주, 길게는 3,4주에 걸쳐 공부하고, 그 기간이 끝나면 시험을 본다. 본과 1학년과 2학년은 고독하고도 힘든 시기이다. 머리를 가득 채울 듯 공부하고, 시험을 보고, 시험 결과에 절망하고, 주말 동안 잠시 빡세게 노는 것을 수없이 반복해야 지나간다. 주말 동안 노는 것도 모든 의과 대학 학생들에게 허락되는 것은 아니다. 시험이 금요일에 있는 학교들은 블록이 끝난 주말은 휴식이다. 새로운 블록이 시작하지 않아 공부할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수님들의 ‘배려’로 월요일에 시험이 있는 학교들은 그마저도 없다. 교수님들은 주말 동안 열심히 공부하고 시험을 보라는 의미로 월요일에 시험을 잡아놓으셨겠지만, 학생들은 쉴 수 있는 휴일이 없어진다. 월요일에 시험을 보고 바로 다음 블록을 그 날 오후, 혹은 그 다음 날부터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블록제의 수 많은 과목을 공부하며, 의대생들은 항상 열심히 임할 수 없다.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매일 매일 하루 종일 공부하며 2년을 보낸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집안 사정이 생길 수도 있고, 연인과 이별할 수도 있고, 몸이 아플 수도 있다. 하지만 과락, 낙제는 피해야 한다. 의대는 한 학기에 한 과목이라도 F 등급을 받으면 1년을 다시 보내야 하는 유급 시스템이 있다. 본과 기간 내내 유급의 공포는 학생들을 따라다닌다. 수석 혹은 차석 학생들도 유급의 공포로부터 자유롭지는 않다.
치밀하고, 치열한 2년의 시간 이후에, 조금이나마 숨을 돌릴 수 있는 PK 실습 기간이 찾아온다.